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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Nov 22. 2024

영덕 블루로드 완주메달이 꽤 소중하다

등산으로 시작해 비와 함께하는 트레킹은 매운맛을 선사합니다

5시 기상. 드디어 4일 만에 기상 시간이 1시간 늦춰졌다.

사실 2시에 눈을 떴지만, 오늘 일정에 대비해 택도 없는 수면량이다.

그래도 금방 잠에 들어서 참 다행인 하루의 시작이다.

혼자라면 마냥 쉬었겠지만, 함께라면 잠자리에 들어가기 꽤나 아쉬운 시간처럼 느껴진다.

잠에 취한 채 밤마실도 가고, 떡볶이라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앉아 수저를 들기도 했다.

나는 왜 어디를 가도 자야 된다는 말을 듣는 것인가.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 상기시키는 하루의 시작이다.

오늘은 등산과 함께하는 17.5km 코스가 예정되어 있다.

살기 위해 시리얼을 우걱우걱 씹어먹는 나 자신이 좋다.

축산항에서의 시작

평일의 마지막 트레킹이다.

피로에 잠식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가벼운 맨손체조를 시작한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벌써 네 번째 몸풀기에도 몸이 풀리질 않는다.

봉수대까지 오르는 길에 화장실이 없다는 소리에 다들 입구의 화장실로 향한다.

가기 전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블루로드 C코스 트레킹의 시작이다.

시작하자마자 만나는 급경사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남씨 발상지의 영험한 장소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답사길

현대화가 되기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두 발로 이 길을 지나 지역 간 이동을 했을 것이다.

마을을 넘는 봇짐장수들,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시집간 자식을 보기 위해서.

왕명을 하달하기 위해 열심히 선인들이 걷고 뛰어다닌 길이다.

지금의 우리는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와 철도를 이용하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손쉽게 이동한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건강을 위해서, 성취감을 위해서, 흘러가는 계절감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서 등 다양하다.

시작은 분명 트레킹이었는데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등산이다.

계속해서 눈앞에 주어지는 계단과 오르막이 심장을 크게 뛰게 하고 숨을 가쁘게 한다.

함께 했던 일행들은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지고, 오롯이 혼자만의 고독한 산행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천천히 나의 속도로 가보도록 하자.

혼자라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역시 혼자 하던 등산이 익숙한 나이다.

그렇게 오로지 앞만 보고 향하는 걸음에 힘을 실어본다.

갑자기 앞에서 "야호"하고 외치는 소리가 난다.

오르막이 끝에 다다랐나 보다.

걸음이 빨라지고 마음이 울렁거린다.

벤치에 먼저 앞서 갔던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었다.

잠시 휴식.

그리고 다시 작은 목표인 봉수대를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봉수대에서 내려다보는 영덕 바다의 모습과 마을이 평화롭기만 하다

큰 고비를 하나 넘기니 다음은 조금 수월해진다.

처음이 힘들지, 두 번째는 괜찮게 느껴지는 것이, 이는 필시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의 본능인가.

그렇게 영덕 대소산 봉수대를 만났다.

원통형의 봉수대는 인근의 다른 봉수대들보다 가장 형태가 뚜렷하게 남아있어 조선시대 통신수단을 연구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봉수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참 좋다.

이곳이 목표지점이라면 좋겠지만, 아직은 멀었다.

이제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와 함께하는 길을 향해 걸어간다.

등산을 하다 보면 오르막보다 내리막의 중요함을 느낀다.

오를 때는 마냥 힘들지만, 내려갈 때는 온몸에 긴장감이 든다.

급한 경사도는 발끝에 신경을 집중시켰고, 다리 근육을 경직시켜 버렸다.

구름다리와 내리막길은 스릴감을 선사한다

모든 길이 울렁거린다.

심지어 비까지 보슬보슬 내린다.

우비는 비를 가려주는 고마운 존재지만 산행할 때 함께하면 땀복과 같은 역할을 한다.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고, 길 또한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한다.

급한 경사를 오고 가다 보면 정신이 혼미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러다가도 평평한 길을 걸을 때면 보슬보슬 비 내리는 소리, 낙엽 밟는 소리에 차분해졌다가, 투둑투둑 강해지는 빗방울에 비옷 여미기를 반복한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제대로 트레킹을 즐기고 있었다.

괴시리 전통마을이 중간 쉬는 지점입니다

전통 기와의 마을을 내려다보며 블루로드 C코스의 마지막 내리막길을 걸었다.

발걸음에 경쾌함이 따라 춤춘다.

평화로운 마을 전경의 모습이다.

이번 김장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게 될까.

트레킹의 선봉대에 있어서 괴시리마을 입구만 보고 달렸더니 예정된 모임장소와 다른 곳에 다다랐다.

금방 다시 또 모여서 지친 몸을 정자 아래 가만히 놓았다.

그리고 주어지는 달달한 간식타임.

12시가 지나 있었지만, 트레킹 중간에 식사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달달한 바나나와 초코칩, 이온음료를 먹으니 체력이 회복된다.

이제 평지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니 남은 길들이 쉽게만 느껴진다.

4일 만에 완벽하게 적응된 트레킹이다.

대진해수욕장에서 고래불 해수욕장까지 걷기가 수월하다

힘든 길을 지나서 만난 평지가 그저 좋다.

오전부터 열심히 사용했던 체력이 바닥났다.

그러나 몸은 걷는 법을 기억하고 있었다.

걷기만 하는 코스에 행정안전부에서 나온 관계자가 촬영을 하고 있었다.

드론을 날려 우리가 걷는 모습을 위에서 촬영하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것저것 다 해보는 특별한 하루다.

지난 새벽에 보았던 대진 해수욕장의 모습과 낮에 보는 대진해수욕장의 모습은 또 달랐다.

같은 장소, 다른 시간. 단면만으로 평가가 불가한 모습이다.

그러나 고즈넉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바다는 한결같다.

바다와 산이 만나는 곳에서 새들은 유영하고 무지갯빛 다리가 인상 깊은 곳이다.

참 예쁜 곳이 많다.

다가가지 못하고 눈으로만 온전히 다 담아내어 내 속에 간직한다.

그리고 앞으로 전진.

테크길로 편하게 만들어진 소나무 숲길을 걷고, 고래불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점점 가벼워진다.

목표지점에 거의 다다랐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지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영덕 블루로드 4코스 완주 기념 메달

드디어 총 64.6km의 해안길을 걸어왔다.

하루에 10km 이상 걸었던 적이 또 언제였을까.

포기하지 않고 잘 따라와 준 나 자신이 참 고마운 순간이다.

우리를 이끄는 대장님을 따라 면사무소로 들어가 완주 인증을 받고 메달까지 곱게 받아 나왔다.

내 손안에 꼭 들어오는 메달의 무게감이 좋다.

이 메달에 나의 일주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내방 한편에 고이 모셔두어야지.

소중하게 한번 더 보고 가방 안에 넣었다.


힘들게 걷는 이유는 맛있는 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걷는 동안의 피로가 배고픔으로 호환되어 뱃속이 아우성치기 시작한다.

민국이네에서 먹는 두부전골의 맛이 익숙하다

직접 만든 두부를 넣어주는 건강식 맛집인 민국이네 식당에 입성했다.

정갈한 밑반찬이 식사의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두부전골이라 들어서 두부가 주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으로 기대했는데, 새우, 주꾸미 버섯, 그 외 생선 등 여러 가지 재료들이 들어간 전골이었다.

보글보글 얼른 끓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바로 먹을 수 없다.

사장님의 허락이 필요하다.

해산물도 들어있기 때문에 충분히 재료가 익었을 때 먹어야 한다.

잠깐의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두부전골의 시식시간.

해산물이 많이 들어가서 매운탕 같기도, 버섯이 들어가 감칠맛이 좋은, 두부가 참 부드러운 익숙하면서도 낯선 맛이다.

특히 엔젤이 두부전골을 접시에 덜어줬는데, 내 접시에 두부가 가득해서 기분이 좋았다.

해산물을 즐기지 않아서 두부가 이 요리에서 내 최애였다.

빈속을 채우는 뜨끈한 국물과 한없이 연하고 부드러운 두부가 가슴속부터 따스함으로 나를 채운다.

고개를 들 새가 없이 정말 열심히 먹었다.

라면사리까지 두둑하게 뱃속을 채웠다.


수저를 놓고 나니, 노곤함이 몰려온다.

딱 씻고 자면 내일 새벽까지 잠잘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금요일.

주말 직전의 마지막 밤이 진짜 마지막인 것처럼 술약속을 만들었다.

이렇게 몸이 피곤한데도 술로 회포를 풀고자 하는 의지의 한국인.

술을 즐기지 않는 나는 곤란하지만, 그래도 함께 해야지.

힘든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과의 시간들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조금 쉬고 남들보다 늦게 합류했지만, 다정하게 반겨주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감사함을 느낀다.

지금의 시간이 내일의 피로를 불러올지는 몰라도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되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적당히 즐기다가 들어가면 되는 거니까.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서리어 있는 공간이라서 참 좋다.

1차 정리 후 내 자리로 귀가.

오늘 밤은 부디 깊은 잠에 들기를.

당신의 밤에도, 나의 밤에도 요정이 다가와 꿀잠의 마법을 뿌려놓는 깊은 밤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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