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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Nov 21. 2024

아름다운 영덕에서 보내는 어느 광인의 하루

블루로드 B코스 15.5km는 어떤 이에게는 광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지난밤의 술자리정리를 마치고도 쉬이 잠들지 못해 새벽 2시 30분에 기상한 특별한 하루다.

숙면을 위한 알코올 섭취라는 나의 계획에 굉장한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15.5km의 트레킹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눈감고 2시간을 보냈다.

4시면 기상해야 한다.

글이라도 써볼까 싶어 테이블에 자리 잡고 노트북 앞에 멍하니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글을 썼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그리고 5시경 누군가가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바로 드론 전문가님이 기상한 것이다.

산책길을 가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아주 당당하게 동행을 요청했다.

아직도 술에 깨지 않아 용기가 마구 샘솟았다.

그렇게 도착한 대진해수욕장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해가 뜨기 직전의 대전해수욕장이 아름답다

깜깜한 밤.

해뜨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이렇게 까만 밤에도 사람들이 맨발로 손전등 하나 들고 해변가를 산책하고 계셨다.

어떤 이들의 아침은 누구보다 일찍 시작된다.

나 또한 일찍 일어난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영덕의 바다와 하늘을 볼 수 있었으니까.

기분 좋은 시작이다.

아침 일찍 산책을 즐긴 덕에 아침 먹을 시간은 없었지만,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7시 30분.

이전보다 30분 빠른 시간에 집합해서 해맞이공원으로 출발.

BTS 화양연화 뮤비 찍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장소.

깊고 고요한 바다도 아름답지만, 높고 광활한 하늘에 자유롭게 유영하는 구름까지 완벽한 아름다움이다.

오늘은 좋은 것만 보는 날인가 보다.

특별한 하루가 될 것만 같은 기분.

본격적인 트래킹이 시작된다.

바다를 마주 보며 걷는 트래킹은 쉬이 즐거워진다.

사실 시작이 내리막길이라 더 좋았던 것은 단지 기분 탓 만은 아니다.

블루로드의 모든 길은 특별하고 곳곳에 재미요소가 있다

어떤 곳을 바라보아도 작품이 되는 액자 조형물이 좋다.

너도나도 달려가 인생샷을 건지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한다.

트래킹 길은 좁기 때문에 여러 명이서 가게 된다면 나란히 줄을 서서 간다.

뒤에서 바라본 모습이 참 귀엽다.

트래킹을 처음 해본 사람들이 모여 힘들지만 끝까지 해내는, 굉장히 멋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오늘이다.

중간에 숲 속 도서관을 만났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있는데, 책을 보는 사람들도 있구나.

꽤나 재미있는 요소다.

나름 꽤 읽을만한 책들이 있어서 놀랍기도 하다.

자주 오시는 분들을 위한 여유로운 숲속도서관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정자에서 읽는 책이란 생각만 해도 여유로운 순간이다.

기 받기 좋은 곳. 파도소리와 바다, 그리고 산. 모든 것이 완벽하다

앞만 보고 걷던 도중, 기 받기 좋은 곳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그 문구를 보고 몸을 돌려 바다를 향해 보았더니, 계속 보고 있는데도 새로운 바다가 눈에 보였다.

거친 파도에도 꿋꿋이 이겨낸 바위들과 손으로 그려도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내지 못할 멋진 하늘이 나를 보고 있었다.

좋은 기를 받아가서 더 건강하게 나를 이끄는 사람이 되어야지.

심신수양하기에는 트래킹이 제격이다.

오보해수욕장과 곳곳에 보이는 구명조끼 자율 대여함

오르내리던 트래킹 길이 끝이 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안가를 걷는 여정이 시작된다.

해안가를 걷는 일은 잠깐은 즐겁지만, 오래 걷게 되면 결코 쉽지 않다.

모래사장과 몽돌해변을 번갈아가며 걷다 보면 꺾이는 발목과 점점 더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느낄 수 있다.

분명 내 발인데, 내 의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알록달록 예쁜 지붕들과 나란히 줄 서있는 배들을 보면서 잠깐 쉴 뿐이다.

석리방파제. 발 담그고 땀 식히기에 딱 좋다.

석리마을 입구에서 트래킹 인증 도장을 찍고 석리방파제 앞으로 향한다.

여름에는 스노클링을 즐기기도 하고 물놀이하기에 좋은 장소다.

11월의 가을 날씨에는 그저 더운 체온을 식히기 위해 발을 담그는 정도가 딱 좋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물로 향하는 사람들과 그저 지쳐서 앉아있는 사람들로 나뉜다.

나는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 앉지 않고 기둥에 기대어 서 있었다.

잔잔하게 느껴지는 소음들에 마음이 고요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바로 숙소로 돌아가 씻고 몸을 누이고 싶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기 강아지와 함께하는 바닷길과 산속 트래킹은 즐겁지만 지친다

꽤나 아빠가 궁금해지는 다양한 색깔의 아기강아지들이 엄마 개 곁에 있었다.

꼬물꼬물 거리다가 사람들이 다가오니 아장아장 걸어온다.

사람에게 경계심이 없는 아기강아지는 무해하다.

집 앞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데려가고 싶으면 데려가라고 하셨지만, 여기는 영덕, 그리고 강아지를 기르는 것은 집안에 한 가족을 들이는 것과 같다.

사랑스러운 모습을 눈과 사진으로만 간직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를 매일 만나는 기쁨의 존재가 되기를.

그리고 다시 모래사장이 나타난다.

발이 모래 밑으로 푹푹 꺼진다.

밀려드는 파도소리가 시원하지만 단단하지 않은 모래바닥은 걷는 이로하여금 굉장한 피로감을 준다.

경치를 즐기기엔 몸이 많이 지쳤다.

그리고 다시 산길을 걷는다.

점점 말 수가 적어지는 사람들.

그래도 끝까지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멋진 모습이다.

통뼈감자탕이 해장과 피로를 녹이기에 딱이다

만취와 숙취, 트레킹 3일 차의 몸상태는 설명할 수없을 정도로 엉망이다.

하지만 끝까지 완수를 해냈다.

진통제와 정신의 승리다.

그리고 마주한 통뼈감자탕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사람들로 가득한 식당이라 몸은 지쳤어도 숟가락을 들어야 할 충분한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따끈한 국물 한 숟갈에 몸이 녹는다.

해장의 필요성.

식사시간이 끝날 때까지 오롯이 내 앞에 있는 뚝배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정신없이 퍼먹은 아련한 기억.

산소호흡기 같았던 통뼈감자탕의 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엔 완전 몸이 퍼져서 차와 한 몸이 되었다.

공식적인 오늘의 일정이 끝이 났다.


깊은 잠을 위해 선택한 알코올이 이렇게 나를 괴롭게 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어젯밤부터 나의 광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빈 속에 마셨던 술은 수면보다는 각성상태를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심신이 분리된 채 광기의 트레킹을 했던 하루다.

이젠 몸이 어디가 아픈지 분간이 안될 정도의 근육통에 익숙해진 지경이다.

2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이다.

고작 3일 만에 나의 광기를 마주한 오늘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평소라면 포기했을 법한 일들을 하게 해주는 용기를 주었으니까.

아름다운 새벽의 바다와 하늘, 그리고 체력의 한계까지 경험한 트레킹까지.

어떤 일이든 정신력과 기본 체력이 탄탄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피어오른다.

역시 경험해 봐야 깨닫는다.

늘 예상과는 다른 오늘을 맞이하는 것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설레는 내일을 기다리는 깊은 밤이 좋아지는 중이다.

당신의 밤도 내일이 기다려지는 기분 좋은 설렘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영덕#뚜벅이마을#뚜벅이#블루로드#트레킹#영해#이주일살기#이웃사촌마을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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