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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Nov 19. 2024

14.1km. 트레킹의 시작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경북 영덕군 블루로드 D코스는 초보자 추천길입니다

밖에서만 자면 늘 새벽녘에 눈을 뜬다.

완전히 인간 알람이 되어버린다.

새벽 4시 30분. 고요하고 적막이 흐르는 깜깜한 새벽이다.

방 안에서 아직 잠자고 있는 사람들을 조심하며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거실로 나온다.

넓은 거실은 지금 이 순간 내 것이다.

어제 내게 일어난 일들을 순서별로 상기하고 기록한다.

일기를 마치고 나면 하나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일찍 일어나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사람들과 좋은 아침 인사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밖에 나오면 유독 잘 챙겨 먹게 된다.

아몬드 푸레이크가 꽤 있는 아침식사가 든든하다

아주 오랜만에 밥이 아닌 시리얼로 아침식사를 맞이한다.

큼직한 통 아몬드 슬라이스가 들어있다는 광고문구에 괜히 아몬드를 더 찾아보게 된다.

입 안에 넣고 꼭꼭 씹어먹으니 뇌가 깨어나고 이제야 완전한 기상을 한 기분이다.

적당한 바삭함, 달달함이 기분마저 좋게 만든다.

먹을 때는 아몬드가 어디에 있다는 거야, 생각했지만, 거의 다 먹어가니 아몬드가 가득한 바닥을 볼 수 있었다.

너 꽤 무거운 아이였구나, 든든하다.

설거지까지 마치고 앉아있으면 이제는 완전히 깬 사람들이 아침준비를 시작한다.

계란프라이를 하는 사람, 아침산책을 가는 사람, 씻고 나갈 준비하는 사람들.

아침 8시 모임시간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가득한 활기찬 아침이었다.

블루로드 D코스 출발점에서 시작

대게공원에서 강구항으로 향하는 트레킹코스의 시작점이다.

영덕 대게의 진심이 느껴지는 대게공원을 지나 트레킹 인증 도장을 찍고 출발한다.

시작지점부터 펼쳐지는 아름다운 바다풍경에 넋을 잃는다.

포토존에 굉장히 진심인 영덕 사람들이 느껴진다.

액자 같은 조형물에 그림 같은 배경.

만든 이의 의도가 정확하게 드러나는 설명이 필요 없는 사진 찍기 좋은 명소다.

블루로드 D코스는 초보자가 걷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평지고 바다를 한눈에 조망하기 좋은 곳이다.

심지어 코스 중간중간에 화장실과 편의점이 많아서 부족한 수분보충하기에도 최고다.

초보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로 준비물이 미비할 때가 많은데, 편의점이 부족함을 채워주는 역할을 똑똑히 한다.

평화롭고 고요한 바다마을을 걷는 일이 즐겁다

바다와 함께하는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형태의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모래해변을 아우르는 해수욕장과 만나는 바다마을 입구.

바다 바로 앞에 집이 있는 사람들의 생활은 어떠할까.

집 앞에 곱게 걸어놓은 빨랫감들이 정겹다.

바다 바로 앞이라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인가 보다.

바람에 흔들리는 두꺼운 겨울 옷들이 계절감을 확인시켜 준다.

전면 유리창 안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은 필시 절경일 것이다.

파도가 집까지 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조금 들었지만, 튼튼하게 지었겠지?

중간중간 바위 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과 마치 집 앞마당을 보는 것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계신 할머니도 만날 수 있었다.

철썩이면서 모래와 인사 나누는 바다의 잔물결 부딪히는 소리, 강렬한 햇살로 바닷바람의 추위를 가져가는 맑은 하늘과 푸르기만 한 바다. 그리고 건강해지는 몸과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블루로드다.

장사상륙작전의 역사사건을 기리는 장사해수욕장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공으로 민족상잔의 비극이 발생했다.

긴장상태에 있었지만, 이날 이때에 침공이 이루어질지는 몰랐다.

빠르게 전투태세에 들어갔지만, 속수무책으로 중국의 지원을 받는 북한군들의 남하가 계속되는 중이었다.

인천상륙작전에 대비한 장사상륙작전을 준비한다.

대부분의 성인 남성들이 징집되었기 때문에 남한의 각 가정에는 어린아이와 노인, 그리고 성인여성들이 집을 지키거나 피난을 가거나, 삶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던 때였다.

남하하는 북한군들의 보급로를 먼저 끊기 위한 장사상륙작전이었다.

성인 남성들이 없는 부재를 학도병이 메꾸었다.

약 772명의 학도병을 태운 문산호가 1950년 9월 15일 출항한다.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그 결과는 몹시 비극적이다.

139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약 92명의 부상자를 제외한 학도병들은 모두 행방불명 상태다.

문산호는 이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1991년 3월 난파선으로 발견되었다.

자료출처 : 다음백과사전, 장사상륙작전


장사해수욕장에 가면 실제 작전에 투입된 문산호를 복원하여 만든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을 만날 수 있다.

역사를 잊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삶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고 미래를 그려가는 것이 인생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의 맡은 바를 수행했던 학도병을 기리는 전승기념관과 기념탑의 정신이 장사 해수욕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블루로드 D코스는 느리게 보아야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중간중간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포토존이 많다.

바다 위를 유영하는 자유로운 갈매기들과 알을 낳고 바다로 돌아가는 거북이의 모습.

오로지 걷기 위한 길이 아닌, 찬찬히 보아야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을 만나는 소중한 순간들이다.

특히 이번 트레킹은 나 혼자가 아닌 여러명이 함께하는 걷기였다.

하지만 전날의 오랜 이동시간, 첫 만남의 어색함을 풀기 위한 술자리로 사람들은 이미 피로해 있었고, 넋이 나간채로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름다운 풍광과 대비되는 사람들의 눈빛이 흥미로웠다.

트레킹의 제맛은 정신을 비우고 새로운 환경과 풍경들로 나를 채우는 것에 있다.

힘들어하면서도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없는 즐거운 트레킹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 걷는 순간 마주한 도보여행자가 영덕 블루로드 탐방 시 반드시 지켜야 할 유의사항.

자신의 체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합니다 문구가 첫눈에 들어왔다.

초보 코스임에도 지쳐있는 사람들.

역시 여행은 자신을 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내 체력의 한계를 그렇게 느끼며 언젠가 반드시 끝이 있는 블루로드의 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삼사해상공원으로 향하는 블루로드 D코스의 끝 강구항

나는 두루누비 앱을 사용하면서 걷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걸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유용한 앱이다.

삼사해상공원은 아름답고 좋은 곳이지만 이 모든 것을 느끼기에 심신이 지쳤다.

14km를 걷는 일이 이렇게 힘든 것이었지. 암 그렇지.

힘든 일은 쉽게 잊으려는 경향이, 나를 블루로드 트레킹을 시작하게 만들었지만, 그것 또한 좋다.

새로운 장소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하루하루를 경험하고 나를 알아가는 좋은 기회를 만났기 때문이다.

경사로와 함께하는 삼사해상공원은 넓은 주차장과 탁 트인 조망권을 가진 아름다운 공원이다.

차를 타고 온다면 충분히 좋은 기억을 가져갈 수 있는 장소다.

급하게 오르면 또 급하게 내려간다.

그만큼 속도도 빨라진다.

목표지점에 다다라간다는 설렘과 급격한 체력소진으로 엔도르핀이 돌기 시작한다.

이것만 다하면 밥을 먹는다.

지친 다리를 위로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목표지점에 도달한다.

반갑다.

그리고 인근 새마을식당으로 향했다.

3시간 30분 걷고 먹는 밥맛이 꿀맛이다

로컬음식점을 기대했지만, 지금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니다.

식당 도착 전에 모두에게 메뉴 주문을 받았던 터라, 식탁 위로 음식들이 바로바로 세팅되었다.

바닷가를 3시간 이상 걸으면 더운 것이 당연하다.

김치말이국수(6,000), 7분 돼지김치(8,000)가 금방 나왔다.

하지만 내가 주문한 불백(9,000)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식사였다.

지역음식이 아니면 어때. 맛있게 그 지역에서 먹었다면 그것이 지역맛집이다.


역시 트레킹은 쉽지 않다.

심신 수련을 위해 걷는 도보여행은 끊임없이 나를 갈고닦아내는 과정이다.

함께 한다면 힘듦이 덜어진다.

서로의 속도를 맞춰가며 걷는 일은 생각보다 낭만적인 일이다.

힘들다고 투덜대도 결국은 다 무사히 완주를 했으니까.

그리고 함께한 식사가 맛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특별하고 충만한 하루로 완성된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아마 내일이면 극심한 근육통이 시달리지 않을까.

4일 연속 걸어야 하는 대장정이다.

그동안 몸은 지치겠지만, 이제껏 내 안을 소란스럽게 했던 걱정들과 상념들이 완전히 잊힌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낯선 곳에서의 2일 차.

혼미했던 정신이 깔끔하게 맑아진 특별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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