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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벌거숭숭이 Nov 25. 2024

인생은 하고픈 일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하루의 모음집이다

맛있는 국밥으로 시작하는 길치의 관어대 일몰 관망 도전기

몸이 지치면 기상시간이 내 마음대로 조절되지 못한다.

평소 알람소리를 들으며 깨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늘 알람보다 10분 먼저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이곳 영덕 영해에 와서는 무언가 달라진 것을 느낀다.

매일 트레킹을 하고 밤마실을 다니다 보니, 평소보다 기상시간도 1시간 늦추어졌고,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몸살기를 항시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내 몸이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몸소 느끼는 아침이다.

트레킹은 건강한 운동이라, 나의 적정 수면시간을 지키고 있는 중인가 보다.

전날에도 방어회와 로제떡볶이가 함께하는 술파티가 있었다.

내 체력을 알고 있는 나는 얌전히 방 안에서 책 읽고 누워서 쉬는 밤을 보냈다.

체력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역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각자의 취향이 뚜렷하다.

나 또한 주관이 명확한 사람이라 이 사회에 섞이지 않을까 항상 염려하고 있지만, 어제도 오늘도 잘 지내고 있으니 참 다행이다.

함께라서 외로울 틈이 없는 영덕 영해에서의 생활이 즐겁다.


주말에는 특별한 공식 일정이 없었다.

근처에 친척들을 만나러 가는 사람,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가는 사람, 좋은 만남을 하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을 보내고 첫날 사다리 타기로 정한 청소담당들은 누가 시킬 틈 없이 자신의 맡은 바를 열심히 수행한다.

누군가는 밀린 설거지를, 청소를, 분리수거를 조용히 처리한다.

나는 화장실청소.

애착하는 보라색 고무장갑을 끼니 열심히 할 의욕이 샘솟는다.

일주일간의 묵은 때를 깨끗이 벗겨내는 일은 즐겁다.

해야 할 일을 즐겁게 해내면 마무리까지 완벽해진다.

이제 내 할 일을 끝냈으니 맛있는 식사를 즐길 시간이다.

더 진국 얼큰국밥 맛이 참 좋다

국밥집이 집과 가까이 있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걸어서 5분 거리에 the 진국이라는 국밥집이 있었다.

애초 계획은 냉면을 먹고 싶다는 이와 국밥을 먹고 싶다는 이의 의견에 부합하는 식당을 찾은 것인데, 냉면을 먹고자 하는 이가 술을 먹기 위해 인원을 더 모집한다고 조금 늦게 출발한다는 소식.

그래서 국밥만을 먹기 위한 이들만 국밥집으로 향했다는 결론.

사람들이 많아 선택지가 다양한 것이 좋다.

11시 조금 넘어서 도착한 식당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지만, 자리 잡고 앉으니 곧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근처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인부분들이 줄줄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 집이 맛집이라는 확신이 다시 들기 시작한다.

매일 밥을 사 먹는 사람의 하루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맛집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얼큰 국밥을 주문하고 앉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빨간 국밥이 나왔다.

이미 빨간 국밥의 국물을 한 모금 마시니 목구멍을 치는 칼칼함이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매운맛과 뜨거움.

온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지친 심신을 따뜻하게 녹이는 얼큰 국밥에는 고기와 순대가 적당히 들어있었다.

밥을 국물에 말아 후루룩 먹게 되는 국밥.

같이 간 이들은 옛날전통순댓국과 곰탕을 시켰다.

순댓국의 순대는 실하게 들었고, 곰탕도 푸짐하고 뽀얀 국물이 예뻐 보였다.

모두가 이 집 국밥은 맛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영해를 떠나기 전에 또 한 번 들러야지 다짐을 하고 나왔다.

영해 만세운동기념탑과 꼭 한번은 들러보고픈 곰다방

국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영해 만세운동기념탑이 회전교차로 중간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보았다.

예전에는 광장이었을 이곳은 독립만세 운동을 위해 사람들이 모여있기에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나라 잃은 설움을 아는 이들의 간절한 외침.

독립을 향한 평화적이고 굳은 의지를 만세운동으로 표현한 우리의 선인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회전교차로에 있어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항상 보게 만든 것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하는 우리의 뿌리다.

회전교차로를 돌아 숙소로 가는 길에 다방이 하나 보였다.

이 동네는 다방이 참 많다고 느껴졌다.

심지어 밤늦게 운영을 하신다.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매일 보았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사랑방 같은 곳.

한약재와 계란노른자, 잣 따위의 견과류가 올라간 맛있는 쌍화차를 먹고 싶은 다방.

용기가 나지 않지만,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곰다방. 언젠가 한 번은 도전해 보겠어요.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갑자기 관어대가 가고 싶어 졌다.

일출과 일물을 보기에 안성맞춤인 곳.

물고기가 보일 정도로 투명한 바다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명승지로 알려진 곳이다.

그렇다면 오늘 해가 지는 것을 보기로 하자.

카카오맵을 켜서 최단거리를 확인한 후 5시 12분에 예정된 일몰을 보기 위해 3시 30분 숙소를 나섰다.

눈앞에 닥칠 고난을 예상하지 못한 채, 즐겁게도 길을 나섰다.

금빛으로 물든 관어대가는 길이 예쁘다

구름 한 점 없는 광활한 가을 하늘 그 자체다.

블루로드 트레킹으로 익숙한 괴시리 마을로 가는 길이 색다르게 보인다.

노랗게 익은 은행나무 잎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다.

낮은 담과 기와지붕으로 단정한 괴시리마을이 평화로워 보인다.

주말에도 간간히 관광객들이 보이는 것은 여유로운 이곳 만의 특색일 것이다.

혼자서 여유롭게 걷는 이 길이 좋다.

중간중간 개와 산책하고 있는 주민들도 보였다.

시골만의 이점.

빽빽하게 밀집된 도시와는 다르게 간간이 보이는 집들과 그 집을 지키는 큰 개들.

개와 산책하기 좋은 들판과 거리들이 보인다.

우리 집 강아지도 이런 곳에서 뛰놀면 더 행복하게 살 수도 있을 텐데.

문득 집에 있는 식구인 강아지도 함께 그리워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다.

마을을 지키는 오래된 나무를 보고 이때까지만 해도 설렜던 관어대 가는 길

멀리서 보아도 굉장히 커다란 나무가 마을 어귀에 위치해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마을을 지키는 서낭당처럼 보였다.

신성함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조용히 머물다가 가겠습니다.

곧 인도가 없는 도로를 부지런히 걸어 대진2리 버스정류장 앞까지 도달했다.

관어대가 있는 상대산이 눈앞에 있지만 올라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앞은 바다, 그 반대편은 민가.

내가 잘 못 찾아왔나 다시 카카오맵을 보고 확인을 하지만, 내가 서 있는 위치는 좌표 그대로였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민가.

대진항에 가면 커다란 대게를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길이기에 마음을 접고 인근 주민에게 관어대 가는 길을 물었다.

친절히 큰길 쪽으로 가면 된다고 말해주셔서 부지런히 걸어갔다.

하지만 지도앱을 확인해 본 결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대진 해수욕장으로 걸어가기.

길치에게 필요한 것은 끈기와 부지런히 걸어갈 체력뿐이다.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커다란 대게도 보고 평화로운 방파제를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일몰을 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비축한 체력은 없었지만, 없는 힘까지 끌어모아 대진해수욕장으로 향해 뛰다시피 걸어갔다.

4시 50분. 드디어 관어대 올라가는 길까지 가까스로 도착.

관어대에서 일몰을 보려면 정확한 길안내와 체력, 일몰시간을 확인하는 계획이 필요합니다

4시 40분 관어대 올라가는 입구에 도착.

예정된 일몰 시간은 5시 12분.

해가 지면과 인사하는 시간은 32분 남았지만, 서쪽으로 지는 해 방향에는 산이 있다.

산너머로 넘어가는 해를 보기 위해서는 최소 5시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부지런히 올라갔지만, 보이는 것은 끝없는 오르막과 계단.

일단 제길로 찾았다는 데서 안도하는 것도 잠시, 내 눈앞에 보이는 천국의 계단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가야지. 이제까지 걸어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오늘 지는 해를 반드시 보아야지.

사람은 두 발을 가지고 있지만, 더 빨리 가기 위해서는 두 손도 같이 이용한다.

30분이 걸린다는 관어대 오름길을 20분으로 축소시켰다.

관어대에 오르자마자 숨 고를 틈 없이 휴대폰 카메라로 열심히 찍기 시작한다.

관어대는 모든 전망이 좋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영해면 일대가 한눈에 다 보이는 곳이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해를 찾는다.

저산 너머로 해의 끝자락이 산마루에 걸려있다.

조금이라도 보아서 참 다행이야.

오늘 하루도 수고했고, 내일 맑은 얼굴로 다시 보자.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도 참 좋은 것이구나.

너무나도 귀하게 보이는 석양빛에 마음이 저절로 울컥해졌다.

목표로 했던 일몰을 보았으니, 이제는 관어대를 제대로 볼 차례.

관어대에서 바라보는 영해면의 모습

360도로 보이는 모든 풍경이 아름답다.

논밭과 옹기종기 모여있는 민가, 항구의 모습.

그리고 저 멀리 끝이 없어 보이는 지평선과 맞닿은 바다와 하늘.

그 깊이를 다 가늠할 수 있을까.

한참을 바라만 보았다.

모르는 길이라도 차근히 밟아가다 보면 결국엔 제길을 찾게 되어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곳에 서 있는 것이다.

짧은 감상을 뒤로한 채 하산에 돌입했다.

해는 금방 지기 때문에, 어두운 내리막 산행은 위험하다.

오를 때 가팔랐던 만큼, 내려갈 때 역시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목표를 이루었다는 뿌듯함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역시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시간이 덜 소모된다.

숙소로 가는 길이 어여쁘고 소중하다

하고 싶었던 일을 이루어내고 숙소로 향하는 길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어여쁜 색감에 저절로 눈길이 간다.

조용한 거리를 혼자 걸으니 사색이 짙어진다.

오늘의 하루를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하게 된다.

조용하게 일어나 아침 작업을 끝내고 맡은 역할을 오전에 깔끔하게 처리했다.

맛있는 국밥을 먹고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관어대에 갈 계획을 선전포고하기.

말한 것은 실천해야 하는 법이다.

돌아가긴 했지만, 결국 해의 끝자락을 보았고, 낮의 해와 밤의 달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을 했다.

오로지 나를 위한 온전한 하루를 보냈다.

트레킹을 하지 않는 날에도 2만보를 걸은 나 자신이 대견하고 소중하다.

이런 보람찬 하루가 매일 이어지면 좋겠지만, 그렇다면 다른 걸 하지 못할 저질 체력을 가진 나다.

소소하더라도 소박하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야겠다.

평화로운 영해에서 혼자만 소란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그래서 더 좋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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