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의 낭만을 보다

메타세콰이어 숲길 걷기와 영해만세시장 돌아보기

by 천둥벌거숭숭이

날이 추워서 일찍 눈을 떴다.

이제 침대 안도 전기장판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계절이 도래했다.

가을은 언제나 눈 깜짝할 새에 왔다가 떠나버린다.

잡을 수 없는 시간처럼 가을은 그렇게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영해에 온 두 번째 날, 사람들은 이곳에 있는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다녀왔다.

나는 체력을 비축한다는 핑계로 미루고 있다가 이제야 가게 되었다.

여러 명이서 함께 갔을 땐 차로 이동했지만, 혼자 갈 때는 튼튼한 두 다리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천천히 보아야 아름다운 로컬의 낭만을 찾아서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추수 중인 논밭을 바라보며 메타세콰이어 숲길로 향하는 길

도보로 42분 예정된 길을 찬찬히 걷는다.

오전에 비가 예정되어 있어서 긴장되긴 하지만, 비는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안 온다에 마음을 의지하고 우산 없이 숙소를 나섰다.

추수를 막 마친 논밭의 모습이 보인다.

모든 일은 단계로 나뉘고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적절한 장소를 선택해서 토양을 농사짓기 좋은 상태로 관리하기, 씨 뿌리고 물관리하기, 잡초를 제거하며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경쟁자 없는 환경으로 만들기.

그러다 날이 선선해지면 예쁘게 익은 벼를 베어내고 이삭을 정리한다.

도정하여 도소매업 시장으로 간 뒤에야 우리가 흔히 아는 쌀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1년에 걸쳐서 하루도 빠짐없이 일 해야 이루어지는 결과다.

가을의 풍성함은 풍요로운 수확물에서 오는 것이다.

혼자 걷는 길에는 깊어지는 사색이 함께 한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안드로메다로 가는 도중에도 틈틈이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잘 가는 길인지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길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나무를 싣고 오고 가는 차들을 보니, 숲길이 가까워진 것이 느껴진다.

너른 주차장과 사람들을 반기는 호박, 입구부터 경치가 좋다

시원하게 넓은 메타세콰이어 숲의 주차장이 보인다.

개인 사유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찾는 이유가 분명한 복지시설이다.

메타세콰이어 숲길에 다다르니 비구름이 서서히 사라지고 드문드문 흰 구름들이 하늘을 누비고 있다.

사진 찍기 좋은 날이다.

오늘 여기 이곳에 와서 참 다행이다.

어떻게 이 좁은 곳에 들어갔을까 싶은 호박이 나를 맞이하고 있다.

행복하세요. 나도 행복한 마음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호박아.

푸르른 소나무가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안내한다

고요하다.

적막감마저 흐르는 곧은길에서 나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눈으로 확인한다.

푸르름에서 시작하여 빨강, 노랑의 계절 옷을 잎은 나무들이 줄지어 인사한다.

시간마다 변하는 하늘의 색깔과 어울리는 따뜻한 색감이다.

그 경이로움에 나는 멍하니 서서 감탄만 할 뿐이다.

그리고 숲길을 여유롭게 걷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그림 속 풍경에 주인공이 된 사람들이 뛰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며 한껏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영해에 온다면 꼭 들러야 하는 메타세콰이어 숲길이다.

영해만세시장은 5일에 한 번씩 열립니다

영해만세시장은 평일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바로 5일장이 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상시에 열려있는 상점들이 있지만, 그래도 시장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5일 장날에 영해만세시장에 방문해 보는 것이 좋다.

다양한 과일들과 야채류, 20개 5천 원인 찹쌀떡도 있다.

급격히 추워진 날씨에 체온을 보호해 주는 포슬포슬한 조끼가 하나에 5천 원이다.

이 오천 원도 비싸다며 만지작 거리다가 이내 자리를 뜨는 할머니를 발견한다.

도시에서와는 차원이 다른 파격적인 가격과 손님들의 가격 후려치기를 만날 수도 있다.

다만 내가 필요로 했던 목도리가 보이지 않아서 구매하지는 못했다.

영해만세시장 주전부리 마늘호떡과 닭강정, 새우만두

애초에 영해만세시장을 간 이유는 떡볶이를 먹기 위해서다.

최애음식이 떡볶이인 나는 설렘을 안고 떡볶이 가게를 찾아 여기저기 누비고 다녔지만 문을 연 떡볶이 가게가 없었다.

시장 상인께 여쭈어보니 떡볶이 가게 아저씨가 다리를 다쳐 당분간 떡볶이 판매를 못한다는 것이다.

공교로운 일이 발생했다.

아저씨 얼른 쾌차하셔서 건강하시고 맛있는 떡볶이 많이 파세요.

갈 곳을 잃은 일행들은 방황하지 않고 바로 마늘 호떡 앞으로 섰다.

플랜 A가 안된다면 바로 플랜 B로 돌입하는 것이 인지상정.

호떡 가게 앞이 우리 일행들로 인해 문전성시가 되었다.

호떡가게지만 새우만두와 닭강정, 빵까지 다양한 식품을 판매하고 계셨다.

이름처럼 순수하고 명랑한 영아님이 기분 좋게 사주신 맛있는 주전부리들로 아침을 든든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는 이유는 뚜벅트레일을 건강하게 걷기 위해서다

지난주의 블루로드를 무사히 완료한 우리들에게 뚜벅 트레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15km 거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저번주의 기억이 또렷이 떠올라 다들 야유를 보냈다.

대장님의 빠른 판단으로 거리를 단축시켰다는 소식에 조금은 기분 좋게 걷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는 길이 더 반갑고 짧게 느껴진다.

뚜벅트레일은 영해면의 아름다운 모습을 트레킹을 하며 걷고, 보는 코스다.

그 코스에 관어대 가는 길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관어대를 혼자 다녀왔기 때문에 사람들과 걷는 관어대 가는 길이 쉽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길치인 나는 혼자서 다른 길로 가서 헤맸기 때문에 대장님이 안내하는 길이 놀랍고, 이 쉬운 길로 가지 못한 과거의 내가 아쉽게만 느껴진다.

곳곳에 보이는 뚜벅트레일의 표식을 길잡이 삼아 쫓아가면 잘 찾아갈 수 있다.

관어대 가는 길에는 완만한 경사도로 편하게 올라가는 길도 있어요

늘 놀라움의 연속이다.

일단 관어대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정자에서 휴식을 잠깐 취한다.

이 쉬운 길을 두고 돌아가는 멍청이는 분명 존재한다.

그게 바로 나다.

입구에서 시작되는 경사도 있는 계단은 아주 잠시뿐이다.

곧 완만한 평지가 나와 약간의 열기를 식혀주기에 딱 좋다.

곳곳에 보이는 뚜벅트레일은 놓치기 힘든 귀여운 표식이다.

내 예상보다 쉬운 길에 남들보다 속도를 내서 열심히 올라가 본다.

아름다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영해면의 모습이 좋다

말 그대로 아름다운 전망대가 관어대로 오르는 마지막 계단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제일 선두에 서있던 나는 조용하게 영해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름답다.

진정한 영해면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다.

역시 산을 오르는 이유를 여기 이곳에 서서 또다시 느끼는 중이다.

산은 오르기는 힘들지만 가는 길도 여러 갈래가 있어 지루할 틈이 없고, 자주 올라가도 보이는 전망, 생각의 관점이 늘 바뀐다.

특히 산에서 바라보이는 바다의 모습이 정말 좋다.

관어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이 좋다

183m에서 내려다보면 바닷속에 노니는 물고기를 볼 수 있다고 이름 붙여진 관어대.

지금 내 시력으로 바닷속 물고기는 보이지 않지만 푸르른 송림과 끝이 보이지 않는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관어대에 앉아 산을 오를 때 흘렸던 땀을 식히고 마음속의 잡다한 생각들을 허공에 멀리 띄워버린다.

가까이 있을 때는 크게만 보였던 문제점들이 멀리서 보니 잠시 스쳐갈 기우였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없는 스승이 되어주는 고마운 관어대다.

오르는 길이 처음 보는 낯선 길이었다면, 아는 길은 그만큼 쉽고 짧게 느껴진다.

그렇게 금방 대진 해수욕장에 닿을 수 있었다.

낮과 밤과 새벽이 다른 대진 해수욕장은 겨울에 가까운 날 평일에 가면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주말에는 캠핑카들로 가득했던 해수욕장이 텅 빈 모습으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

평상과 함께하는 야자나무 3그루는 대진해수욕장만의 이색적인 분위기를 흠씬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가볍기만 하다.

영해 오리궁디는 맛도 좋고 풀코스로 나와 즐겁게 즐길 수 있습니다

한참 전부터 예정되었던 오리궁디를 드디어 갈 수 있게 되었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오리고기를 양껏 먹고 후식까지 야무지게 즐길 수 있는 맛집이라는 추천이 첫날부터 있었기에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맛깔난 밑반찬과 함께 불판 위를 가득 매운 푸짐한 오리고기와 야채, 당면, 콩나물 볶음이 식욕을 자극한다.

기대를 부응하는 맛이다.

여기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반주는 흥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오고 가는 잔 위로 산행의 피로를 흘려보내고 서로의 정을 나눈다.

오리고기를 다 먹고 나면 후식이 차례로 나온다.

후식으로 빠지지 않는 볶음밥과 호박죽, 그리고 냉면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맛있다.

배가 부른데도 숟가락을 놓을 수 없는 충분한 이유를 만들어 준다.

아주 오랜만에 가득 찬 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리기름에 야무지게 볶은 볶음밥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적당히 달달하면서 고소한 호박죽은 내 최애메뉴다.

입가심으로 딱 좋은 냉면은 삼삼하고 시원하니 좋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오리궁디에서의 저녁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영해에서의 마지막 날이 멀지 않았다.

적응할 만하면 곧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야 익숙해지는 얼굴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에 10일은 부족하지만, 곁에 있는 이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다.

도시탈출 프로그램부터 시작되었던 로망과 낭만 찾기는 나도 모르게 스며들듯이 매일매일 계속되고 있었다.

영해에서의 일정이 앞으로 단 하루만 남은 소중한 오늘이다.

그렇게 짧고도 소중한 시간이 조용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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