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들이 우리가 되는 벌써부터 그리운 이들에게 쓰는 편지
어느덧 익숙한 새벽이 다가왔다.
소란스러운 밤이 지나면 침착하고 여유로운 새벽이 온다.
모두가 잠든 그 시간. 조용히 일어나 거실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는다.
온전하게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집에서는 나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만, 영해 덕스에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혼자 있는 시간은 극히 드물다.
새벽잠이 없는 나 자신이 참 좋아지는 순간이다.
이제 이 시간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더없이 소중해진다.
대충 아침을 먹고 작업을 시작한다.
작업을 다 마쳐도 사람들이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들의 깊은 잠이 부러우면서도 벌써부터 그리운 기분이 든다.
벌써부터 안녕을 생각하게 되는 고요한 아침이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공식일정의 시작이다.
감자당에서 배우는 나만의 칵테일 만들기.
사장님이 키우는 강아지 이름인 감자가 특히나 귀엽게 느껴진다.
따뜻한 웰컴티 한잔과 함께하는 ppt 강의가 시작되었다.
칵테일의 기주와 섞는 방법, 1온즈의 양과 수저 사용법까지 짧지만 자세한 강의가 계속되었다.
내 옆자리에 칵테일 만드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막내가 있어서 보다 수월하게 칵테일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짧은 칵테일 소개를 시작으로 내가 원하는 색상과 느낌, 취향을 적어서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고민이 짧은 편이다.
어떤 칵테일이 만들고 싶냐는 사장님의 질문에 바로 답이 나왔다.
내가 영해로 오기 전 부산은 아직 가을의 초입이었다.
노랗고 주황의 빛보다는 푸르름이 많은 산과 나무들을 보고 왔다.
하지만 영덕 영해에서는 모든 곳이 가을의 옷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노란 나뭇잎 옷을 벗어던진 은행나무들을 볼 지경이었으니까.
짧기만 한 가을을 맛보고 싶었다.
럼을 기주로 한 살굿빛 시트러스 향의 칵테일을 만들어보았다.
얼음 5알을 넣고 흔들어보니 쉽지가 않다.
1온즈의 럼에 살구 브랜디와 오렌지 시럽을 더 넣는다.
라임과 탄산을 넣으니 제법 칵테일스러운 맛이 난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다.
시럽을 넣으니 훨씬 맛나다.
어떤 이는 해수욕장을 표현한 칵테일을 만들어냈다.
각자의 취향이란 다양하고 서로의 다름을 알아가는 순간이 즐겁다.
눈으로 보아도 믿기지 않는 바다를 마시는 기분이란 짜릿하다.
예쁜 만큼 맛 또한 훌륭하다.
조만간 칵테일 바에 들러 나만의 색다른 칵테일을 다시 또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빈속에 먹는 칵테일은 금방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고로 기분 좋은 낮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내가 만든 칵테일과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더 충만한 순간이다.
그리고 칵테일 먹자마자 해장하러 가기.
맛집 추천을 받은 명확한 이유가 있는 집이다.
대표메뉴인 차돌박이 짬뽕을 시켰다.
심지어 매운맛 2단계.
국물 한 모금에도 목구멍을 탁 치는 강렬함이 있었다.
짬뽕밥은 처음 시켜보는데, 당면과 밥을 함께 먹으니 해장하기에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사실 다른 일행들은 순두부찌개를 먹으러 갔다.
그 자리에 나도 함께 했으나, 20분은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에 바로 보배짬뽕으로 목표를 변경했다.
이곳으로 온 나 자신 기특해, 칭찬해.
순두부찌개 집 앞에 계시던 양복을 입은 무리의 사람들에만 더 흥미가 있었을 뿐이다.
어떠한 연유로 여기까지 와서 단체로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 계신 걸까.
나중에 식사를 다하고 순두부찌개를 먹은 일행들에게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지만 사투리가 심해서 하나도 그들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는 아주 아쉬운 소식만 접했다.
미지의 세계는 늘 흥미를 동하게 만든다.
호기심을 물리치고 온 것이 아쉽지 않은 강렬하고 깔끔하고 내 속을 뜨뜻하게 해주는 맛있는 짬뽕이었다.
잊지 못할 보배짬뽕.
첫날에는 탁자 3개를 겹쳐 테이블을 만들어서 같이 식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영해에서의 마지막 밤에는 테이블 2개로도 충분하다.
서로에 대한 간격이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함께 걷고, 같이 밥을 먹고, 빨래가 뒤섞이고,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나는 그런 사이가 되었으니까.
우리 영해친구들의 단골집이었던 잔비어스 가게에서 배달된 보쌈과 곱창볶음, 계란말이 맛이 훌륭하다.
알코올 섭취를 위한 빈 속을 채우기 위해 우걱우걱 집어먹기 시작.
그 시간은 비교적 짧다.
서로가 음식을 씹는 소리에 집중하다가 곧 잔을 든다.
본격적인 회포를 푸는 시간이다.
마음이 풀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알코올 섭취에 있다.
과하면 독이 되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그 적정선이 잘 유지된다.
매일매일 일기장에 썼던 이번주의 내 다짐, 말조심 입조심을 하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술을 적신다.
체력 이슈로 방에 들어갔다가 30분 정도 누워있다 나오니, 사람들의 흥이 더 고조되어 있었다.
슬며시 빈자리로 가 앉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여러 무리가 만들어진다.
술을 계속 마시는 사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딴짓하는 사람 등.
나는 딴짓하는 사람들에 속한다.
빙고게임을 하고 야무지게 져서 딱밤을 맞고 관계자분이 나누어주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가만히 앉아있으니 곧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엔젤이 가져온 블루투스 마이크로 간이 노래방이 열린 것이다.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노래방을 거절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여기서 얻은 부산꾀꼬리라는 칭호가 꽤나 마음에 든다.
블루투스 연결 이슈가 있어서 아쉽게 끝난 자리였지만, 그래도 좋다.
다툼이나 분쟁 없이, 즐거움만이 가득했으니까.
그렇게 1차 자리가 정리되고 너나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치우고 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바로 잠자리로 향했다.
그렇게 아쉽기만 했던 영해에서의 아침해는 여지없이 밝아온다.
늦은 취침시간에 오늘은 기상을 6시에 해버렸다.
낯선 곳에서의 취침이 익숙해졌는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쭈욱 긴 잠을 자버렸다.
아침의 작업을 하기보다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사실 전날, 이미 서로에게 써 놓은 롤링페이퍼를 몰래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짧은 시간 서로에게 마음이 많이 깊어졌다.
도고에서 함께했던 솔이는 이번에 또 봐서 더욱 반가웠고 의지가 되는 친구였다.
첫날부터 순수한 영혼을 숨기지 않았던 수진이는 영해에서 매일매일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사람이자 또 보고 싶은 소중한 인연이다.
이름처럼 귀한 사람인 영아는 당당한 자신감으로 주변사람들을 압도하는 분위기 메이커이자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멋진 드론 실력과 사회화된 T로 청일점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 상우, 몸이 약한데도 일정을 최대한 소화하려 노력했던 본현이와 놀이동산에 같이 가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카페를 좋아했던 민경이에게 예쁜 사진을 찍어 줄 수 있어서 좋았고, 우리 영해팀의 막내이자 친구사이로 좋은 에너지를 물씬 나누어준 동주와 수빈이, 아주 소중합니다.
힘든 트레킹에도 재미있는 얘기를 끊임없이 해주고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틀어주던 동주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멋진 사람이었어.
씩씩한 수빈이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애살있는, 어디서도 사랑받을 줄 아는 귀한 사람이야.
다소 늦은 만남이었지만, 처음 하는 트레킹에도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 있고, 참 밝은 사람이었던 경진이.
트레킹의 대장으로 늘 말벌아저씨 같은 믿기 힘든 속도로 한참이나 앞서갔던 지훈이는 늘 우리들과 거리감을 유지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항상 느끼고 있었어.
그리고 우리 영해 친구들 모두 한 명 한 명 바라봐주었던 동향 병호오빠. 사실 오빠라는 말이 어색해서 끝까지 병호님이라고 했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면 오빠라고 부를 날이 있지 않을까요. 병호오빠 덕분에 영해친구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다정함이 깃든 따뜻한 배려에 위로받고 감사함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늘 세심하게 신경 써주던 마초맨 민재, 다정하게 대화를 이끌어준 아산 얼짱 정길,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덕스에 들러 부족한 비품을 채워주고 속도를 맞춰주었던 백조, 카니발을 이끄는 패션감각 좋은 재란까지.
모든 영해 친구들, 스태프들에게 감사한 시간이었다.
좋은 사람들, 사람이 소중하고 귀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벌써부터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들.
그대들의 안녕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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