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나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아니다. 편한 나 자신을 위해 주변 눈치를 보며 날이 선 채로 살아왔다.
지금 하고 싶은 일에 치중할 수 있었던 것은 습관처럼 이뤄온 경제관념과 기민한 눈초리로 만들어낸 나만의 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신용도가 높다는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초조함은 커져만 간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면 불안하다.
이 고임이 오래될수록 안주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이겨내지 못할 만큼 약해지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
그전에 먼저 밀어내야 한다.
마치 미뤄온 맹수의 양육법을 준비하듯이 기한을 말하고 내칠 준비를 한다.
우리는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먹고 자고 싸는 것이 힘들 때 보살핌을 받고, 학교라는 체제 안에서 같은 교육을 받는다.
한 사람의 씨앗을 터트리는 것은 개인의 노력이지만, 성장은 때론 개인의 범주를 넘어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받는다.
선과 악은 본능에서 움트는 듯 보이지만, 사실 배움과 깨달음으로 사람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부족함과 풍요로움. 경제적 환경과 그에 수반한 파생적인 관계는 그 둘 사이의 간극을 넓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돈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주기적 용돈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지만 자신이 쓸 여유자금은 언제나 풍요로웠다.
경제관념이 없는 부모가 내게 보였던 모습은 언제나 위기였다.
돈이 없으면 위험하다. 그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스무 살. 집을 나와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틈이 날 때마다 은행을 들러 통장을 만들고, 펀드와 저축보험을 들면서 영업을 당했다 생각했지만, 결국 끝까지 버티니 꿀 같은 이율이 나의 힘듦을 보상해 주었다.
배움은 누구나에게 있을 수 있지만, 깨달음은 스스로 얻은 경험과 다음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여유로운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평범한 날들 속에도 최악을 상상하고 대비해야만 하는 사람은 늘 조급한 마음뿐이다.
그것이 그 사람의 사상과 인생을 집어삼키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성인의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
사랑도 노력하면 된다는 착각은 끝내 상처와 배신으로 나에게 되돌아왔다.
믿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는 아빠의 말은 틀렸다.
사촌동생과 싸우다 수세에 밀려 뒤를 돌아보았을 때, 동생은 사촌동생의 곁에 서 있었다.
층간소음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해 위층으로 올라가 다툴 때도, 가족들은 나와보지 않았다.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관계의 기대가 실망감으로 변했을 때, 나는 금방 좌절하고 무너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가족이 내편이 안된다면, 다른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면 되겠지.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고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저 서툰 모습에 되려 '기대하면 실망한다.'는 가스라이팅에 가로막혀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사랑은 노력해서도 안되고, 가족이라고 무조건적으로 내편인 사람들은 아니었다.
물론 그런 경험들은 내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쳐 상처를 덜 받으며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는 중이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가족들에게 나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순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단 한 번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준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위해, 아니. 나를 위해 그들의 희망사항을 하나씩 들어주었다.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
나의 어릴 적 여행은 아빠 친구 가족들과의 표충사 여행이 다인데.
다행히도 아빠는 여행을 꿈꾸지 않고 엄마만이 여행을 독촉할 뿐이다.
맡겨놓은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여행을 요구하는 것일까.
나에게 여행이란, 계획하고 준비하고 예기치 못한 변수에 대비하며 집에 도착할 때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준비된 덫에 몸을 내던지는 것이다.
이렇게 싫어함을 끊임없이 설파함에도 자신이 원하는 여행지를 갈 때까지 이야기하는 집념에는 언제나 박수를 보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살면서 장례식을 딱 4번 가보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외할머니의 장례식. 대학교 1학년 시기 할머니 장례식. 그리고 친구 아버님의 장례식.
외할머니 장례식은 어수선했다. 이런 곳엔 아이가 오면 안 된다며 잠깐 있다가 돌아온 곳이다.
슬픔을 체감하기도 전에 끝난 장례식. 그 선선한 공기만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나에게 남겨준 500원의 기억은 언제나 따뜻하게 존재하고 있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는 비난을 들었다. 다들 우는데 우리 가족만은 울지 않는다고.
다복한 가정이었던 친가는 가족들끼리 자주 보며 잘 지냈다. 우리 가족만 빼고.
부유한 가정의 수재였지만, 성격이 드세고 모가 났던 아빠는 틈만 나면 사고를 쳐서 할머니가 마음고생을 꽤 하셨던 것으로 들었다. 보상금이나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형제들을 독촉해 돈을 구하고 할머니가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행위의 결과로 아빠는 명절에는 친가에 가지 않고 처자식들만 큰집에 보내곤 했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나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처사인지도 모른다.
원래 장례식이란 다 이런 것인 줄 알았다.
한 가정이 다정하게 잘 지낼 수는 있어도 모든 가족들이 다 잘 지낼 수는 없을 거라는 확신.
그런 착각은 친구 아버님의 장례식장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슬픔이 잠식한 공간, 아버지의 부재를 슬퍼하는 친구를 위로하며 바라본 장례식의 풍경은 슬픔보다 위로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절대 가족이 죽으면 울지 않아야지. 우는 이유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미련 때문이라는 확신이 깨진 순간이다.
생전에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대한 태도가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만든다.
관계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족이든 친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누군가는 나쁘게 보았던 사람이, 어떤 이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것처럼.
같은 사람을 보아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과 생각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후회하지 않기 위한 나의 노력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각도를 시시각각 변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상처 입고 흘리는 눈물은 없도록, 그렇게 나의 세상을 만들 것이다.
나는 지금 변태 중에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행복할 것인지에 대한 의지와 목표가 어제보다 선명해지는 중이다.
하지만 국민의 의무인 근로에는 태만한 상태에 있다.
시작은 코로나가 계기였지만, 사회에 발을 들여놓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때보다 커진 것은 사실이다.
두려워하는 나를 사람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휴가는 2월까지라는 기한을 통보적으로 말한 후 절벽으로 밀어내기를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들의 착각.
밀어내면 취직해서 스스로 돈을 벌겠지. 그러면 지금의 걱정은 없어지겠지.
나의 착각.
취직이라는 기대를 채우기 위해 나는 이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 살면서 이들과 멀어지겠지.
자신의 존재가 없어지면 마치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호언장담을 하지만, 과연 누구의 착각이 맞을지는 다음 달이 되면 알 수 있겠지.
오래지 않아 맞이하게 될 결과가 기대된다.
어제의 나는 지나갔고, 오늘의 나는 어떻게든 해낼 것이다.
언제나 오늘을 수습했던 나를 나는 믿는다.
나의 착각은 언제나 나를 발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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