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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기억하나요?

누군가를 기억하는 나만의 레시피

by 천둥벌거숭숭이

지극히 감각에 예민한 사람이다.

시야가 좁고 후각과 청각이 남들보다 발달해 있으며, 촉각으로 분위기를 감지하며 낯선 것에 대한 경계도가 지독하리만큼 높은 편이다.

나에게 처음 만나는 사람은 싫은 사람.

보통이 아닌 싫음에서 시작하는 관계에는 기대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는 쉽게 모든 것을 좋아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아이가 엄마를 졸라 미술학원을 가게 되었던 날, 자유분방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선생님을 무작정 좋아했다. 설렘과 기다림은 반드시 달콤한 결말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에게 상처받기 전에는.


친구들을 좋아했다. 나와 다른 삶을 사는 그들.

TV를 독차지한 아빠로 인해 다른 매체로 간접경험이 극도로 어려웠다.

어린 내가 체득할 수 있었던 정보는 교과서와 선생님이 들려주는 교과과정, 그리고 교실에서 사귄 같은 반 학우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다였다.

종교가 다르면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로 분장한 부모님의 선물을 받을 수 있고, 무조건적인 지지와 애정을 받을 수 있는 가정도 있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빨간 머리 앤], [제인에어], [소공녀]를 여러 번 읽으면서 스스로를 다독인다.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들이 진짜 내 가족이 아닐 수도 있다. 혹은 고난을 이겨낸다면 행복한 결말이 나에게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의 받침대가 되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는 부모님의 진짜 자식이 맞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았으며, 내가 기억하는 한 우리 가족에게 결속력과 다정함은 영원히 숨바꼭질 중이다.

기대는 실망을 가져올 뿐이라는 결론은 나를 더욱 경계하게 만들었다.

내가 가진 오감을 활용해 스스로를 지켜야만 했다.

기댈 언덕이란 오로지 준비된 나 자신, 문제를 해결하는 미래의 나뿐이다.


어느새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쉬이 드러내놓지 않는다.

'싫다'에서 시작된 관계는 나아지는 수밖에 없다.

처음 만나는 모든 이가 싫으면 마음이 편하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고, 나의 결점이 부끄럽지도 않다.

그러다 그 사람에게 좋은 점, 배울 태도가 보일 때면 그제야 나의 색안경이 벗겨진다.


사람을 기억하는 나만의 방법은 간단하다.

나를 대하는 상대방의 태도가 그의 존재감으로 기억된다.

곁에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한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행했던 행동과 태도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설명할 수도 없이 엉뚱한 부탁에도 주저 없이 들어주는 친구.

친구 대학교에 놀러 갔다가 머리를 감겨달라는 사람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는 친구의 실행력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물론 교차하는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큰 소리로 웃을 때는 부끄럽다며 도망가버릴지라도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의 사람은 앞모습을, 지나간 인연은 뒷모습만을 기억한다.

함께할 때 좋은 사람이 내 사람이다.

물론 나가기까지가 굉장히 힘든 사람이라 미리 잡힌 약속이 있으면 괜히 취소되거나 미뤄지길 바라기도 하지만, 만나고부터는 항상 즐겁다.

이별이 아닌 안녕, 다음을 위한 인사를 할 때면 언제나 아쉽기만 하다.

쉬이 뒷모습 볼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사람들의 뒷모습을 알지 못한다.


뒷모습만 보아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사람의 범주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혹은 스친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

익숙한 외투나 가방만 보아도 심장이 절벽에서 떨어진 듯, 사고가 멈추기도 한다.

기억하기 싫은 사람들은 뒷모습조차도 무거운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분명 내가 좋아하는 면모를 가지고 있다.

다정하다던지, 생각이 깊다던지, 자신의 주제를 잘 알고 있다든지.

불만을 이야기하더라도 결론은 곁에 있는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착한 시선을 참 좋아한다.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사람에게 에너지를 얻는 해맑음을 배우고 싶다.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언제나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닮고 싶다.

나의 사람에게 존재하는 겸손함과 순수함을 사랑한다.

그들은 언제나 뒷모습보다 앞모습으로 맑게 존재한다.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누군가는 향기로, 다른 이는 분위기로,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태도로 기억하기도 한다.

나는 그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로 기억한다.

유독 500원 동전만 보면 좋아했던 나를 기억했던 외할머니가 주머니에 오래도록 모아둔 500원을 내 손에 쥐어주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지금은 곁에 없지만, 500원 동전만 보면 그리운 외할머니가 떠오르는 것처럼.

나를 향했던 그의 마음을, 태도를 영원히 기억한다.


<다음 질문> 지금의 당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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