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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Apr 06. 2021

거절의 용기

04.06 밤 열한 시 팔 분


옹기종기


아이는 8살이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글씨를 열심히 연습하던 아이는 노란색 연필 한 다스를 선물 받았다.


제일 좋아하던 노란색 기다란 연필.


연필 끝에는 지우개가 예쁘게 달려 있었다.


학교에 가기 일주일 전부터 아이는 연필을 열심히 깎아 필통에 정성스레 보관해놓았다.


쓰면 날카로운 심이 닳을까 한 시간에 한 번 필통을 열어 구경만 했다.


그렇게 아이는 학교에 들어갔고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연필을 꺼내 글자를 쓸 시간.


뒤에 앉은 여자 아이가 아이를 툭툭 쳤다.


"저기... 나 연필 하나만 빌려줄 수 있어?"


그 아이는 보통의 1학년이 그럴 수 있듯 필통을 가져오지 않았다.


아이의 등에서는 땀이 났다.


아이에겐 아끼고 아껴왔던 노란색 연필 한 자루만 있었다.


자신도 쓰기 아까워 매일 구경만 했던 연필.


'싫다고 말하고 싶은데...'


서럽게도 아이는 거절의 용기보다 양보의 미덕을 먼저 배웠다.


'안 빌려주면 기분 나빠하겠지...? 날 나쁘게 볼지도 몰라.'


그러나 상대는 내 노란색 연필이었다.


아이는 못 들은척하기로 결심했다.


'그래, 못 들었다 그러지 뭐.'


어린 아이의 결정은 회피였다.


뒤에 앉은 아이가 다시 툭툭 쳤다.


결국 뒤를 돌아봤다.


"나 연필 하나만."


이젠 피할 수도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아이는 필통에서 노란색 연필 하나를 꺼내 빌려주었다.


"고마워."


'그게 얼마나 소중한 연필인지 모르겠지...'


아이는 학교에 있는 내내 집중할 수 없었고 자신의 손을 떠난 연필이 보고 싶었다.


드디어 하교할 시간.


"잘 썼어. 고마워."


아이는 뭉툭해진 연필을 받아 필통에 잘 넣었고 집으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책상에 앉아 연필을 다시 깎아놓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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