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ll have one foot in a fairytale and the other in the abyss.-Alice in Wonderland
삶의 매 순간마다, 우리 모두는 동화 속에 한 발, 심연에 한 발을 걸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친구는 내게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살려줘!라고 소리쳤다.
요즘 들어 자꾸 우울한 모양이다.
그런 날은 무조건 친구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
친구는 지금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 중이니까.
나 역시 우울할 때마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많은 것을 시도해본다.
근데 처음부터 직접적인 원인을 들여다보는 일은 무조건 피한다.
우울감을 느끼는 것은 정신적인 문제여서, 정신 쪽으로 접근하기엔, 내가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몸을 움직여 청소를 하고, 청소가 끝나면 좋아하는 꽃을 사다 꽃병에 꽂는 일부터 한다. 나는 노동이 주는 ‘정신을 맑게 하는 힘’과 아름다움이 주는 ‘마음을 위로하는 힘’을 심하게 믿는 편이다.
그렇다고 우울이 호락호락 떠나 주면 우리의 우울이 아니다.
그럼 이제는 내 몸뚱이에 집중할 차례다.
나는 가능하다면 매일 아침 화장을 하려고 한다.
얼굴에 뭐라도 찍어 바른 날에는 마음이 섣불리 흘러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이지만 헤어 스타일에 변화를 주는 것도 효과가 좀 있다. 나는 최근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어서 히피 펌을 시도했는데, 결과는 비록 김어준이지만(미안합니다) 머리숱은 많아 보이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우울하다.
특히나 팬데믹 시대에 우리 모두는 불안감, 우울감, 그리고 그로 인해 무기력에 빠져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정글로 갈 차례다.
요즘 들어 아마존 프라임 트럭이 우리 동네에 자주 출몰한다. 이웃들도 나와 같은 증상에 시달리다가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넣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하나임을 느낀다. We are the world.
이렇게 내 주변을 환기시키고, 나를 가다듬고, 또 이 고통이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느 정도 우울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다.
최근 나를 우울하게 만든 일들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건강문제다.
어느 날 나는 의사 선생님께 침샘종양은 왜 생기는 거냐고 물어봤다.
선생님 대답은 그냥 ‘운이 나빠서’였다.
그 말을 들은 이후, 나는 내게 일어나는 (그동안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그 ‘재수 없음’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친들, 내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일이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점점 무기력 해졌다.
그런데 며칠 전 아는 분과 통화를 하고 나서 마음이 좀 달라졌다.
최근에 나는 지인들로부터 백신 접종에 대한 질문 전화를 많이 받고 있었다.
그날도 같은 이유로 전화를 받았는데 어쩌다 보니 전화 거신 분에게 나의 수술 소식을 알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분은 질문은 잊은 체 내 걱정만 하셨다.
하지만 백신에 대해 해줘야 할 말이 많았던 건지, 아님 종양이 암보다 상대적으로 힘든 투병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상황을 담담하게 얘기한 후, 곧바로 그분의 용건에 몰두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문제에서 한 발짝 멀리 떨어져 조금 다른 시각으로 내 상황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불과 한 달 전 만 해도 암이 아닌가 걱정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그것에 비하면 나은 상황이 아닌가?
또 수술이 미뤄지긴 했지만, 그 사이 백신을 접종하게 됐으니, 안전하게 수술을 받게 되어서 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결국 전화를 끊을 때 즘에는 더 이상 나의 문제가 그분에게도, 나에게도 별일이 아니게 되었다.
슬픈 일이지만 살면서 매 순간 무작위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내 입맛대로 고를 수는 없다.
하지만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은 어느 쪽으로 한 발짝을 내딛을 것인지 내가 결정할 수는 있다.
해 질 녘 즘 되자 오늘도 아마존 트럭이 집 앞 골목까지 들어왔다 후진을 해서 나가고 있다.
깊은 정글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들의 우울함이 트럭이 섰다 간 자리마다 덩그러니 놓여있다.
물론 우리 집 앞에도.
나는 배달된 패키지를 들고 들어오면서, 우리 모두 오늘, 조금은 편안한 밤을 맞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