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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기한 Feb 14. 2024

모성애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던 나에게

11. 아이가 애틋해질 수밖에 없는 사연

우리집은 각자가 자기 인생을 책임지느라 서로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았기에 20살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주머니와 인생 모두 알아서 챙겨야 했다. 

그래서일까. 부모와 자식 간의 충분한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것, 그 의미를 잘 모르고 컸다.


아빠는 양육의 모든 걸 엄마에게 떠넘겼고, 나의 엄마는 엄마로서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 역할은 하셨지만 사랑을 드러내는 분은 아니었다. 

사랑의 모습은 여러 가지라고 하지만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사랑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데 인색한 사람인지 알게 됐다. 

나는 사랑을 잘 몰랐고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사랑하는 마음은 입과 행동으로 드러내야 하고, 진정으로 남을 위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배우고 있었다.    


그렇기에 임신 기간 내내 심연 깊은 곳에선 내게 모성애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아이가 나왔을 때 예쁘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런 나의 마음을 아이가 읽은 것일까. 아이가 애틋해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 생겼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선물이 오다


세상이 떠들썩했던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다음 날인 새벽, 잘 자다가 눈이 번쩍 떠졌다.

소변 느낌에 화장실을 갔는데 끝났싶으면 다시 나오고, 나오고 말 그대로 소변이 계속해서 나왔다. 


이상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쏟아지는 느낌...

혹시나 싶어 색깔을 확인해 보니 투명한 색에, 일어나서도 흘러나오는 걸 보고 본능처럼 알았다. 

'양수구나'  


양수가 나올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당황한 채로 화장실을 나왔는데 남편이 깨어있었다.

화장실 불을 끄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양수가 나오는 것 같아"


임신 초반부터 새벽마다 화장실을 갔기에 왠만하면 남편은 잘 깨지 않았다.

이후 남편이 말하길 본인도 이상하게 눈이 떠졌고, 방이 어두웠지만 화장실을 나오는 내 표정이 심상치 않았단다. 곤혹스러워하는, 굉장히 당황해하는 표정이었는데 나한테서 처음 본 표정이라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병원에 가긴 가야 할 거 같은데 진료는 9시에 시작하고 119에 전화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지?" 갈팡질팡하는 사이 남편이 침착하게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봐"라고 해서 분만실과 연결되었다. 



34주 5일


새벽 3시 30분이 넘어가는 시간, 옷을 빠르게 갈아입고 지갑만 챙겨 산부인과 분만실로 출발했다.

산부인과 가는 길, 생리대를 착용했지만 계속해서 양수가 나오면서 빠르게 젖어가는 게 느껴졌다. 

집에서 15분 거리인데도 모든 신호에 다 걸리는 거 같고 내 마음도 분초마다 타들어갔다.  


"남편분은 분만실 밖에서 대기하세요" 


처음엔 분만실 간호사가 양수가 맞는지 먼저 확인해봐야 한다고 사무적으로 응대했다.

이내 생리대에 젖은 양과 리트머스지에 확인된 색깔을 보고 상황이 긴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양수 맞아요! 양이 많이 나왔네요. 바로 초음파 볼게요"


당직 의사가 내려오고, 자궁 초음파를 보는데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같이 있던 두 명의 간호사한테 나직이 하는 말


"안 되겠지?" 


순간 나는 이미 아기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격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본능적으로 터진 격한 울음은 내 인생에 처음이었다.

생각할 새도 없이 말 그대로 울음이 터졌는데 이 불안을 같이 나눌 남편은 내 옆에 없고, 아무도 정확한 아기의 상태를 설명해주지 않는 서늘하고 무서웠던 시간이었다. 


이내 남편이 분만실 안으로 들어왔고 양수가 많이 빠졌기에 바로 출산을 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양수가 터지면 태아를 보호하던 양막이 찢어진 거라 세균 감염 가능성이 커 무조건 48시간 내에 출산을 해야 했다. 


지금도 한 번씩 생각한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을까?

전조증상이 하나도 없었다. 임신 기간 동안 진행된 기형아 검사, 정밀 초음파, 임당 등 모든 검사에서 이상이 없었기에 마지막 관문인 출산도 무난하게 잘하겠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출산 가방을 싸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캐리어도 꺼내기 전 이렇게 급작스럽게 아기를 낳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희 병원에는 니큐(신생아 인큐베이터)가 없어서 선택하셔야 해요. 

저희 병원에서 출산할 것인지, 대학병원으로 갈 것인지. 제가 봤을 땐 그나마 34주 5일이라 아기 폐가 어느 정도 형성됐을 때라 괜찮을 거 같은데 태어났을 때 혹시라도 문제가 있으면 니큐 들어가서 검사받아야 해요."


집 근처 산부인과를 고를 때 니큐가 있는 곳과 없는 곳 이렇게 선택지가 있었는데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아기가 니큐에 들어갈 일이 없을거라 생각하고 없는 산부인과로 골랐었다. 사람은 이렇게 자기 앞을 한 치도 모른다. 


아기가 나왔을 때 이상이 있다면 결국 대학병원에 가야 하는 거라 우리 부부는 대학병원 출산을 택했고 나는 응급환자로 트랜스퍼되었다. 

  


이르게 세상에 나온 걸 환영해


남들이 출근을 준비할 때 나는 대학병원 침대에 누워 출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자연분만을 희망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아기가 견뎌주고 있으니 자연분만 번 해봅시다"해서 항생제를 맞으며 유도 분만을 시도했다. 


양수가 터진 지 11시간 30분 만에 대차게 우는 아이 울음소리를 만났다.

아이에게 엄마의 온기를 나눠줄 새도 없이 소아과 응급조치 후 바로 인큐베이터에 실려 신생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내 마음은 아기에 대한 애틋함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무사히 나왔다는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계속 아기 쪽만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하루 사이에 나는 조기양막파열이 된 고위험 산모가 되었고, 아기는 2.32kg 이른둥이로 태어나게 되었다. 

출산 예정일로부터 6주나 빠른 출산이었고 그렇게 나는 <우아한 육아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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