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기한 Jan 14. 2024

강남 산부인과에서 들은 질문

7. 드라마 연출은 드라마일 뿐 현실과 다르다

임신테스트기에서 처음 본 두 줄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임신이 됐다고?' 싶은 의심과 함께 출근 전 어떤 의식처럼 매일 아침 남편 몰래 임신테스트기를 했다. 

야근을 하고 돌아온 날은 행여나 두 줄이 사라졌을까 싶어 자정에도 두 줄을 확인을 해야 마음이 편했다.   

내 불안함과 달리 두 줄은 사라지지 않고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더 선명해졌다.

 


강남 산부인과에 방문하면 듣는 말


얼리 임신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한 배란일로부터 3주 차. 

보다 확실하게 산부인과에서 확인을 받고 남편에게 알리고 싶어 며칠을 더 기다렸다.  5주 차는 돼야 초음파로 아기집을 볼 수 있고 그전에 가는 건 의미 없다는 글을 몇 개나 봤지만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우리 아기는 미리 보일 수도 있다는 전혀 근거 없는 희망을 품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 산부인과를 찾았다.


회사가 강남 선릉역 근처라 산부인과가 있을까 싶었지만 검색해보니 의외로 많았다.

개 중 여의사가 있으면서 친절해보이는 산부인과로 골라 임신 확인으로 왔다고 했다. 산부인과 하면 예상되는 부부가 함께 진료를 기다리는 모습은 볼 수 없고, 다양한 옷차림의 여성 몇 명만 앉아 있었다. 

개인 신상 정보를 등록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가 날 조용히 불러 은밀하게 물었다.


"아이 유지 원하세요?" 

    

해당 질문이 내포하는 의미에 깜짝 놀랐다. 나로선 당연히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질문이었다.  

일전 회사 남자 직원분이 피로를 풀기 위해 마사지나 받을 요량으로 회사 주변 마사지샵을 검색해서 갔는데 치어리더 복장을 한 여성이 맞이해 줘서 서로 멋쩍어하며 발걸음을 돌렸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역삼역, 선릉역 한 골목만 더 들어가도 모텔이 많아서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해당 질문을 들으니 동네 산부인과로 가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하루빨리 남편한테 알리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회사 근처 산부인과를 찾았지만 4주 차로 아직 아기집도 보이지 않았고, 점심도 먹지 못했고, 듣지 않아도 될 질문만 들었다.   



남편한테 임밍아웃하면 듣는 말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말처럼 혼자 거대한 비밀을 품고 있자니 힘들었다. 아직 아기집은 보지 못했지만 남편 앞에서도 숨겨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 입이 근질거렸고 빨리 이 좋은 소식을 나누고 싶었다. 


23시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오는 길, 비밀을 아는 사람이 하나보단 둘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급하게 엽서를 찾아 메시지를 적고 같이 자려구 기다리는 있는 남편에게 내밀었다. 미피가 그려진 유니세프 엽서였다.  


"돈 없는데?"

"무슨 돈타령을 하고 있어"

- 카드 읽는 중 

- 반응이 없길래 임신 테스트기 내밈

"으응? 헐? 언제? 엽서가 유니세프길래 같이 후원하자는 줄 알았어"

"기분이 어때?"

"얼떨떨해"


남편이 환호하고, 아내를 들어 안아 올리는 드라마 같은 연출은 드라마이기에 가능했다. 

나보다 아이에 대한 꿈이 더 컸던 남편이었기에 임신 소식에 흥분하고 엄청 기뻐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차분했고 얼떨떨해했다. 


남편의 반응에 약간 실망했지만 추후에 들으니 정각이 넘은 시간에 갑자기 "오빠, 앉아봐"하는 말에 1차 당혹 (남편들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왜 아내의 이런 말에 위축되는 걸까?), 내민 엽서가 유니세프라서 짧은 시간 내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가 잘 생기지 않으니 후원을 하자는 건가, 엽서 내용을 봐도 이게 무슨 내용인가 잘 이해가 안 됐다고 한다. 안 그래도 생각이 많은 와중에 느닷없이 임신이라고 하니 현실감이 없었을 수밖에... 



다음 날, 근무하고 있는 나에게 온 남편의 카톡

임산부한테 좋다는 음식을 찾아보고 장을 봐서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다. 사진에는 호두와 아몬드, 바나나, 소고기가 있었다.   


 


이전 06화 우리 부부는 아이를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