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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Jun 15. 2021

집밥로그-들어가며

가족들을 열광시키는 냉파요리, 영끌요리, 야매요리의 총집합

집 밥, 화려하고 특별한 것은 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가족만을 위한 정성 가득한 밥상. 하루에도 몇 번씩 밥을 차리고 치우고 무한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어느 순간 즐거움을 발견했다. 아이들도 남편을 위해서가 아닌 바로 나를 위해!


결혼 전까지 독립 경험이 1도 없었기에 요리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당연히 요리 기초 지식도, 요리를 해 본 경험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딱 하나 내세울 만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미식가(美食家)라는 점. 회사에 다닐 때, 모 일간지에 약 9개월 동안 맛집 칼럼을 연재한 적 있다면(덧붙이자면, 당시 독자 반응이 좋아 나름 최장기간 연재한 칼럼니스트였다) 미식가로서의 능력은 어느 정도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전 세계를 돌아다니시는 아빠의 직업적인 영향으로 다양한 식재료를 거부감 없이 접했고, 워낙 요리 고수인 엄마 덕분에 집에서 정말이지 별별 요리를 먹어봤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부터 유독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을 즐길 줄 안다. 음식점을 가더라도 진짜 숨은 맛집을 찾아내는 타고난 남다른 촉도 있다.


“엄마 배고파”를 입에 달고 살던 청소년기, 각종 영양식을 척척 만들어 주셨던 엄마 덕분에 늘 눈과 입이 호강했다. 맛탕, 단호박찜, 수제피자, 찐 옥수수, 떡꼬치 등 주문만 하면 척척 나오는 시스템이란! 인스턴트보다 자연식으로 키워준 엄마에게 감사하다.


한창 반항심이 불타던 사춘기가 시절, 부모님과 말다툼으로 제 아무리 마음이 요동쳐도 최소한 ‘가출’은 나랑 무관한 단어였다. 집을 나가는 순간 ‘밥은 어쩌지?’라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때문이다. 아무리 부모님에게 화가 나도, 입도 마음도 굳게 닫을지 언정 여전히 집밥은 고수하던 철없는 나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돌이켜보면 사춘기부터 대학시절까지, 큰 방황 없이 나름 무탈하게 지나갔다. 이게 다 ‘집밥’ 덕분이다. 우리 엄마 밥이 제일 좋았다. 매일 밥상이 기대되었다. 편의점 라면보다,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보다 사랑과 정성이 듬뿍 들어간 엄마표 특식 제일 짜릿했다.


오순도순 가족끼리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요리의 맛은 그 어떤 표현으로도 담을 수가 없다. 그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보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때 그 시간이 참 그립다.




남김없이 먹는 습관
편식하지 않는 습관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습관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어릴 적부터 자리 잡았다. 그래서 예전에도 지금도, 내 삶에 있어 먹는 행위는 참 중요하다. 이렇게 먹을 줄만 알다가 엄마가 되니 상황이 또 달라졌다. ‘요리’라는 커다란 미션을 앞두고 객체에서 주체바뀌니 처음에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맛있게 요리해서 예쁘게 담고 우아하게 맛을 음미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내 머릿속에만 있는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우는 애 달래 가며 정신없이 재료를 다듬고, 전투적으로 삶고 볶고 데치며 조리하는 것만으로도 쩔쩔맸다. 당연히 플레이팅 따위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뭐 라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먹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벅찼다.  


엄마였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족들의 식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시작된 총괄 셰프(라고 쓰고 부엌데기라고 읽음)의 삶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점점 커가고, 이유식이나 영유아식이 아닌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아졌다. 한 가지 요리를 해서 온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점점 살만해졌다.


배달음식도, 외식도, 하다못해 반 조리 식품으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만 대체로 나는 집밥을 고수한다.


첫 번째 이유, 언덕배기에 위치한 집의 특성상 주변에 식당이 거의 없고, 외식비의 지출이 부담스러운 빠듯한 형편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이유, 아이들의 건강 문제로 글루텐프리, 카제인프리(GFCF: Gluten Free, Casein Free) 식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가루 대신 쌀가루로, 유제품 대신 비건 치즈나 두유 등으로 집밥을 해야만 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세 번째 이유, 이러한 실질적인 이유 외에도 중요한 무형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즐겁게 요리하는 모습, 아이들이 수저를 놓고 반찬을 옮기는 등 밥상을 함께 준비하는 시간도 또 하나의 밥상 교육이자 먹는 즐거움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마치 우리 친정 엄마가 그러하셨 듯 말이다.


의외로 요리를 하면 할수록 즐거움을 발견한다. 요리 초보 시절, 메뉴를 정하고 그에 맞게 재료를 사는 것으로 시작했다. 당연히 빠짐없이 장을 봐야 했고, 남은 자투리 재료들을 처분하다 결국 버리기 일쑤였다. 식비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물론 이제는 적정 수준의 식재료만 유지하고 식재료를 버리는 일은 없다. 예전과 달리 재료를 쓱 훑어보고 그날의 메뉴를 정한다.


감자를 예를 들어보면, 예전에는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것이 감자조림, 감자채 볶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웻지 감자, 감자 수프, 옹심이, 감자전, 감자 문어 샐러드, 굴라쉬, 라따뚜이 등 요리의 종류도 가짓수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양해졌다. 요리에서 그치지 않고 이왕이면 맛깔스럽게 담아내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정이다. 스스로가 점점 요리 고수가 되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냉장고에 있는 잠자고 있던 재료들을 깨우고, 창의력을 있는 힘껏 더해 무언가를 완성했을 때 나 스스로가 감탄한다(고백컨데 원래 자뻑이 있는 편이다). 머릿속에 그리던 맛이 완벽하게 재연했을 때는 자신감도 한껏 상승한다.


이게 뭐라고 환호성을 지르며 남김없이 싹싹 먹어주는 아이들과 엄지척을 날려주는 남편 덕분에 성취감을 느낀다. 비록 밥상을 준비하고 뒷정리를 하기까지의 과정이 힘들지만 그래도 기쁨으로 요리할 힘을 얻는다.


집밥 덕분에 고맙게도 아이들이 또래보다 키도 크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곤드레밥, 고사리나물과 같은 건강식도 척척 잘 먹는다. 무엇보다 밥상을 마주하며 함박웃음을 띈 얼굴에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고, 조잘거리는 모습에 행복을 느낀다.  




매일의 밥상에 얽힌 이야기들-나 혼자 알고 있기 아까운-을 끄적이고, 음식을 통한 추억도 떠올리며 즐거움을 나누려 한다. 요리책이나 인스타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완벽한 세팅과 거리가 먼 일상적인 평범한 생활요리가 전부라 실망할 수도 있다. 재료가 비싸서 한 두 개는 생략하기도 하고, 반대로 똑같은 식재료가 며칠째 등장하기도 하는 그런 지극히 현실적인 밥상.


대추청이 오늘은 대추차로 등장했다가 내일은 슬쩍 요거트 토핑으로 재등장
비싸고 양이 적은 루꼴라 대신, 향을 포기하고 저렴하고 푸짐한 시금치로 대체
시장에서 싸다는 이유로 이성을 잃고 산 한가득 부추, 후회는 잠시 접어두고 부추 요리의 늪에 빠져 어떻게 라도 소진을 위해 두뇌를 풀가동
만사가 귀찮은 날, 아무런 국도 반찬 없이 한 그릇 음식으로 끝
때로는 아이들 요청사항을 반영한 마약김밥, 핫도그 등의 특식


‘매일의 음식에 담긴 소소한 이야기들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다 보면 나중에는 이 또한 추억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집밥로그 프로젝트>   


냉파요리, 영끌요리, 야매요리가 총집합한 웃긴 밥상. 있는 모습 그대로 식탁 위에서 밥 먹기 전에 잠시 찰칵 찍는 사진이 전부인, 배경지도 없고, 조명도 없는 그래서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밥상.


덜 멋지고, 세련된 맛도 없지만 집밥의 진심만은 고스란히 담았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혹은 나 자신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한 끼 한 끼가 소중하고 감사하다.

오늘도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조리대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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