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고운 Sep 28. 2022

당신의 남편은 안녕하십니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현재의 마음 상태 자가점검

"남편을 사랑하나요?"라는 질문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오히려 "남편을 안 사랑하나요?"라는 질문에 피식 웃음이 나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이렇게 말하며 합격 목걸이를 걸어주고 싶다.

"네, 당신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얼마 전 SNS에서 본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의 한 장면도 마침 생각난다. '남편'을 뜻하는 단어를 맞추는 문제였는데, 제시된 초성 'ㅅㅂㄴ'을 보고 정답이 공개되기도 전에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서방님'이 아닌 다른 단어(네, 생각하시는 그 단어 맞습니다.)가 단박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의식 중에 남편을 향한 마음의 소리였던 것일까? 아무튼 평소 남편에게 품고 있던 응축된 감정을 자각한 사건이었다.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총을 쏴 주고 싶다"는 지인의 진심 어린 말도, 결혼식 때 주례를 해 주셨던 목사님의 "남편은 평생 우호적 낯선 이"라는 언급에서도 배우자에 대한 미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어쩜 둘 다 이리도 적절한 표현인지! 비록속을 뒤집어 놓는 배우자라 할지라도 이 '서방님'이라는 존재를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만일 함께 살면서 지금까지 사랑의 감정이 변하지 않았다면,


1)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거나

2) 미친 듯이 잘 생겼거나

3) 한결같이 다정하거나


이 셋 중 하나라도 해당되는 게 아닐까? 당연하고도 애석하게도 본인의 남편은 3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안타깝게도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래도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을 선택하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라도 있다면 진지하게 두 손을 꼭 붙들고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제발 정신 차리세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요! 지금까지 인생 헛 사셨어요."


언젠가 남편이 나 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만약에 과거로 돌아가서 배우자를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그때도 나를 만날 거야?"라고 말이다. 대체 나 한테 무슨 대답을 기대한 걸까? (YES 라는 대답을 원한다면, 평소에 좀 잘할 것이지... 벼락치기로 공부해 놓고 전교 1등을 꿈꾸는 거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당연히 당신은 절대 아니지. 세상에 이렇게 많고 많은 사람이 있는데, 좀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겠어? 우리 인연은 한 번으로 족해."라고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그런데 아뿔싸, 분명 자신만만하게 쏘아붙였건만 애들을 생각하니 상황이 달라졌다. 할 수 없이 답변을 정정했다. 


"음... 그런데 당신은 마음에 안 드는 건 맞는데, 아이들 생각하니 안되겠네. 당신 유전자가 필요하긴 하니까. 우리 매력 터지는 애들은 당신과 나의 합작품이잖아. 그래 그냥 나랑 당신은 만날 운명이었나 보다(feat. 깊은 한숨)."


결혼생활의 최대 걸림돌(?)은 늘 아이였다. 모진 생각을 하다가도, 험한 말을 내뱉으려다 결국 아이들 때문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무 죄도 없는 어린 자녀들에게 충격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아이를 낳기 전에 우리 부부는 꽤나 사이가 좋았었다. 그 시절의 싸움이라고 해봤자 지금에 비하면 아주 귀여운 수준의 점잖은 다툼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이가 하나, 둘 태어나고 점점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게 되었다.


<누가누가 상대방을 더 약 올리는가?> 배틀이 한 판 벌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과거의 부정적인 감정을 영혼까지 끌어올려서 폭발시키기> 스킬도 선보였다가 <내 말이 다 옳고 너는 틀려>라는 식의 내로남불 논리로 맞붙기도 했다. 속을 박박 긁어 놓는 걸로 모자라 상대방에게 모진 말로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하루 이틀의 냉전으로 끝나기도 했지만, 남편의 언행이 얄밉고 화가 나는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아 꽤 오랜 기간 분을 품기도 했다.


확 시댁에 전화를 걸어서 "어머님, 아버님! 이 사람과 더 이상은 같이 못 살겠어요. 이러다 제가 미쳐버릴 거 같아요."라고 시원하게 폭탄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여러 번 마음 속으로만 상상만 했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용기가 없단 말인가.)


이렇게 세월이 흐를수록 사랑도, 우리 부부의 관계도 변했다. 분명 처음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의 감정이 활활 타올랐지만 두 아이의 험난한 '육아'라는 관문을 통과하며 사랑보다는 '동지애' 혹은 '의리'가 돈독하게 쌓여졌다. 그러다가 사회생활 하느라 안팎으로 시달리는 남편을 보며, 반대로 아이들 키우느라 만신창이가 된 나의 모습을 보며 서로에게 '측은지심'이 드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현재는 '우정'을 적당히 유지하는 ‘룸메이트’같은 관계에 이르렀다.


구 남친(현 남편)의 어떤 말에도 까르르 웃어주던 순수했던 20대 시절을 지나, 감동도 재미도 없는 뻔한 아재 개그에 정색하며 입을 틀어막아버리는 40대 아줌마가 되기까지... 그렇다, 나 또한 많이 변했다. 사랑이 식어가는 건 내 탓도 분명 있다. 남편 한쪽의 문제만이 아님을 인정하는 바이다. 


살아보니 "자식 때문에 산다"는 말은 진리였다.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남남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이럴 바에 차라리 지금이라도 갈라서야 하나?'라는 자문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냥 화풀이로 괜히 던져보는 말이 아닌, 진심으로 여러 번 고민해보았고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도 했다. (이 사실을 나중에 남편이 알게 되면 매우 서운해하겠지만, 어쨌거나 사실이다.)


나의 경우 둘째를 출산하고 회사를 그만뒀기에 만약 갈라선다 한 들 아이 둘을 키울 경제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경력단절이 된 상태로 갑자기 사회생활에 다시 뛰어들 자신도 없었고, 만약에 취업이 된다 고해도 퇴근 전까지의 공백시간과 각종 변수(방학, 질병 등) 발생 시 홀로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이 안 나왔다. 게다가 짜증 나게도 집도 차도 싹 다 남편 단독 명의였다. 내 지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고로 남편이 미워 죽겠다 한들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었다. 억울해도 그저 버텨야만 했다. 이런 나의 불 같은(이라고 쓰고 '더러운'이라고 읽으면 됨) 성격을 잘 아는 신께서 단 한번도 생각지 않았던 퇴사를 통해 경제력을 화끈하게 차단하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지금까지 헤어지지 않은 건 '하나님 은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현재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음은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버티다 보니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인생 선배들의 명언도 뼛속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좋은 남편은 아닐지라도, 좋은 아빠인 건 맞다. 언제나 아이들과 가정이 최고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 그리기, 만들기 실력은 엄마인 나보다 월등해서 다채로운 미술 활동으로 늘 자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뿐만 아니라 창의력 넘치는 별별 놀이를 통해 온 몸으로 잘 놀아주기 때문에 아이들이 아빠와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아, 이렇게 써 놓고 보니 꽤 멋진 남편처럼 보인다. 싸움에서 제대로 패배한 기분이 이런 건가? 이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 사람과 남은 60여 년의 인생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진심으로 어질어질하다. '황혼 이혼'이나 '졸혼'을 꿈꿔보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훌쩍 커서 우리 곁을 떠나고 빈 둥지만 남게 되면 할 수 없이 전략적 제휴를 맺어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적적한 삶에 말동무가 필요해서, 혹은 여행 가서 내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필요해서라도 말이다. 아, 가끔 요리하다가 내 힘으로 도저히 병뚜껑을 못 열 때도.

 

결론은, '아 이번 생은 망했구나!' 싶다. 미워도 남편은 남편이구나, 이 사람과의 인연은 어쩔 수 없구나 싶다. 슬프게도 당장 우리의 관계는 쫑낼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음을 잘 고쳐먹고 격려하는 말과 배려하는 말로 남편을 세워주려고 굳게 다짐하지만 매번 대 실패다. 막상 얼굴을 마주하고 한두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면 버럭 화부터 내게 되는 건 어쩌란 말인가? 나름 꽤나 힘써 노력하고 있지만 각자 다른 곳을 향하여 달려가는, 그래서 점점 멀어져가는 우리의 관계의 개선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고전 중의 고전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프롬은 '사랑은 배우고 익혀야 할 기술이다'라고 했다.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만이 아닌 결의이자 판단이고 약속이라는 것이다. 고맙게도 이 책을 통해 '이 인간과 남은 인생을 과연 어떻게 행복하게(덜 불행하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정답을 만난 듯하다. 가능한 서로에게 맞춰주고, 상대방이 극혐 하는 부분은 조금씩 고쳐가고, 그리고 포기할 것은 적당히 포기하면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보, 그러니까 우리 좀 잘해보자고!!!"

이전 01화 결혼생활에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