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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Oct 04. 2022

26살에 한 결혼이 후회스러울 때

처음이자 마지막 연애 상대가 남편일 줄이야

주변 친구들에 비해 결혼을 일찍 했다. 2008년 당시 여자의 평균 혼인 연령이 28.32세*라고 하니 약 2년은 빨랐던 셈이다. (*통계청 인구동향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8년의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 31.38세, 여자 28.32세라고 한다.)


그렇다고 연애도 결코 짧지도 않았다. 내 나이 21세, 남편 26세에 캠퍼스 커플로(그것도 같은 학과에 같은 학년인 찐 CC) 만났으니 5년 정도 나름 긴 연애기간을 보냈다. 햇수로만 긴 것이 아니고, 같이 보낸 시간을 따지자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내내 붙어서 지냈다. 동기들 중 유일하게 결혼까지 성공(?)한 커플이었기에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게다가 당시 공교롭게도 각자의 교회에서 청년부 회장을 맡고 있던 터라 하객들이 넘쳐났다. 결혼식 축가만 3팀이요, 친구 사진만 3번을 찍었을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의 축복과 관심을 받으며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양가 부모님들의 반대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 정도 오래 만났으면, 이제 얼른 결혼을 해야지?"라며 혼인을 부추기셨을 정도였으니까. '새벽기도를 다니는 성실하고 신앙심 깊은 청년'은 당시 나 에게도, 친정 부모님께도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신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신 우리 부모님은 다른 조건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셨다. 남편은 새벽기도 하나만으로 상견례 프리패스는 물론이요, 비교적 손쉽게 사윗감 타이틀을 획득했다. 막내딸까지 출가하면 이제 드디어 AS도 끝이라며 얼른 시집보내고 홀가분하게 살겠노라 선언하시던 친정 부모님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남들처럼 사윗감을 마주했을 때 까다롭게 대하거나, 헤어짐을 종용하는 핍박은커녕 "허술한 내 딸을 자네가 거두어 주어 고맙네."라는 말을 연신 하시곤 했다. (아니, 드라마만 봐도 하다못해 최소한 악수할 때 힘을 꽉 주며 기싸움이라도 하지 않던가?)


시댁 또한 우리의 든든한 지원군이셨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직업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엄청난 학벌을 보유한 것도 아닌, 그렇다고 소름 끼치게 예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닌) 평범한 나를 시댁에서는 언제나 예쁘게 봐주셨다. 그렇게 한결같이 믿고 지지해 주셨던 시부모님은 아들의 여친은 물론 며느니로도 흔쾌히 오케이 하셨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연애부터 결혼까지, 무탈해도 너무 무탈하고 평탄하기 그지없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남편은 나와 만나면서 결혼을 늘 염두해두고 있었다. 반대로 나는 당시 20대 초반이라 결혼에 대해 별 계획이 없었다. 어쨌거나 "너랑 결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수 없이 들었다. 오죽하면 내가 “불치병인 장가병에 걸렸냐?”며 놀려 댈 정도였으니. 주입식 교육이 무섭긴 무서운지, 어느새 나 또한 자연스럽게 결혼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은 별 고민의 여지도 없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고 보면 연애에서부터 결혼까지, 딱히 어려운 상황이 없었다.


어쩌다 보니 생애 첫 남친은 남편이 되어버렸다. 젠장. 나의 아까운 젊음이여! 나의 연애 히스토리는 이렇게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대학 졸업 전에 적어도 2~3명은 사귀어 볼 것이라는 야무진 계획은 이 남자 한 명으로 허무하게 종결되었다. 새내기 시절 선배들이 대학생이 돼서 무얼 가장 하고 싶냐는 말에, 주저함 없이 "연애요! 연애 실컷 해보고 싶어요."라고 당차게 말하던 나였는데... 역시나 인생은 알 수 없는 것!


이 사람이 최고의 선택이었는지 아닌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더욱 그렇다. 어쨌거나 그의 자상하고 세심한 성격과(지금은 아니지만) 늘 어디서나 적극적인 모습(이 또한 지금은 아니지만)이 참 좋았다. 무엇보다도 한결같이 나만 바라보고 사랑해주었기에(이 역시도 지금은 아니지만)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라는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의 모든 것이 좋았다. 꼬투리 잡을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뿐만 아니라 생각도 가치관도 척척 잘 맞았던 터라 오히려 나에게 과분한 남친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하아... 내가 왜 그랬을까? 참 순진했다). 친구에게 밤새도록 끊임없이 남친 자랑질을 할 정도로(지금 생각하니 하마터면 손절 당할 뻔) 그의 장점을 나열해보면 차고도 넘쳤다. 연애는 결혼과 별개라는 사람들의 말도, 살아보면 다 변한다는 말도 코웃음 치며 넘겼다.


'아무리 주변에서 뭐라고 한들, 나는 남편을 흉보거나 미워하는 등 아줌마스러운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을 거야!' 라고 다짐했건만, 나는 여느 40대 아줌마의 모습과 다름없이 확 변해버렸다. 20대의 젊음도, 날씬함도, 남편을 향한 마음도 한결같이 유지할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나의 오만함을 진심으로 회개한다.) 분명 '이 사람 없으면 못 살겠다'며 변치 않는 사랑을 확신했으나 겨우 결혼한 지 14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이 인간 때문에 못 살겠다'로 바뀌었다는 게 웃플 뿐이다.


'그때 팀 프로젝트에서 같은 팀이었을 때 적당하게 지낼 걸.'

'무거운 전공서적 잔뜩 들고 가는 나를 보고 선뜻 집에 데려다 준다고 나설 때 호의를 단박에 거절할 걸'

'그때 인사동 찻집에서 고백 받았던 날 확 도망쳤어야 하는데, 아니 잠적했어야 하는데!'

'최소한 아파트 전세는 마련해줄 수 있는지 경제적 조건을 왜 안 따져봤을까?'

'왜 부모님은 우리 사이에 태클을 걸지 않으셨을까?'


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했는지를 따져보면 후회스러운 순간이 한 둘이 아니다. 주변 지인이 말하기를, "연애시절에 신은 이미 수차례 이 남자는 아니라고, 지금 당장 헤어지라고 신호를 줬다니까. 근데 그걸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거지. 그때는 왜 못했을까? 저 남자를 만난 건 순전히 내 잘못이야." 그렇다, 내 눈치가 잘못했다. 잘못해도 아주 제대로 잘못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수습 불가인걸 알면서도 왜 자꾸 과거를 반추해보면 후회가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찍 결혼한 탓에 누릴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우선, 연인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한 번 도 겪지 않았기에 불필요한 감정적인 소모가 덜했다. 그래서 그 아낀(?) 에너지로 주중에는 열심히 회사에서 열일하고 주말에는 함께 취미생활을 즐겼다. 맛집도 찾아다니고, 사람들도 실컷 만나며 황금 같은 20대 중후반 시절을 후회없이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큰 장점은 합법적인 관계로써 당당하게 실컷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도 남편도 보수적이라 결혼 전에는 당일치기 여행이 전부지만, 결혼 후에는 국내이고 해외이고 짬 나는 대로 최대한 돌아다녔다. 당시에 일주일 이상 길게 다녀온 호주 여행과 홍콩 여행의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이가 있으면 아무래도 먼 거리 비행도, 오랜 시간을 여행지에 머무는 일도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결혼 후 한 3년 동안 실컷 원 없이 놀고서야 뒤늦게 아이를 가졌음에도, 또래들에 비해 비교적 이른 시기인 서른살에 출산 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보다 빨리 결혼한 덕분이다.


그나저나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나도 의문이 든다. 풋풋한 대학생 커플에서 달달한 신혼부부까지는 괜찮았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시들시들한 중년부부가 되었을까?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 까지는 세상 사이가 좋은 부부였건만,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왜 이렇게 나는 까칠하고 전투적인 사람이 되었을까? 뭐가 이토록 남편에게 불만인 건지, 얼굴만 봐도 왜 이렇게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등등 참으로 모든 게 미스터리이다.


'만약 아직 내가 결혼을 안 했더라면?' 혹은 '아이가 없었더라면?' 어땠을 지 종종 상상해본다. 지금의 최대 골칫거리인 흰머리도, 넉넉한 허리둘레도 지금보다는 훨씬 상태가 괜찮았을 것이고, 단돈 1만 원을 쓰는 데도 심사숙고하는 찌질함도 없었을 것이며, 커피 한두잔쯤 대수롭지 않게 척척 사 마시는 여유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 남자를 만나 속앓이 하고, 애들 키우며 수시로 분노 폭발에,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감정이 요동치는 험악한 미래가 기다릴 것이라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과연 진짜 더 행복했을까? 그렇다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쉽게 대답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지금처럼 '가정'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이자 쉼터가 없었을 것이고, 아이들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기쁨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며, 찬란한 인기(아직까지는 가족 내 인기도는 본인이 압도적인 1위)를 평생 언제 이렇게 누려보겠냐 말이다. 게다가 세상 무서울 것 없는 두둑한 배짱도 획득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냥 일찍 결혼하길 잘했다 싶기도 하다.


그래, 꼬인 건 내 마음이었나 보다.


우리 인생에 꽃 길만 펼쳐질 줄 알았는데, '육아'라는 극기훈련 못지 않은 험난한 나날과 가시밭길 같은 길을 겨우겨우 통과하면서 나도 모르게 삐뚤어졌나 보다. 힘들어 죽겠다고 징징거려본들 내 고생의 1/10도 몰라주는 상대방이 그저 야속했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주어진 삶이 때로는 너무 버거웠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애들은 초등학생이 되었고 점점 내 손을 떠나고 있는 중이다.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물리적인 여유도 생기고, 분명 점점 상황은 나아졌다. 이제 남은 건 초심을 회복하는 것!


마침 결혼기념일이라 남편의 회사 근처로 가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마라탕을 먹으며 남편에게 나도 모르게 툭 한 마디 던졌다. 여보, 결혼은 매운맛인 거 같아.” 결혼 14년의 짬에서 나온 명언의 탄생이었다. 그저 달콤함만 있을 줄 알았는데, 매워도 한참 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이 부족한 나를 참고 견디느라 수고했고, 고마워”라며 남편에게 훈훈하게 말을 건넸다. 그렇게도 남 탓만 하던 나도 조금은 철이 들어가나 보다.


요새 가전제품이 하나 둘씩 고장 나고 있다. 사용한지 10년이 넘어가다 보니 세탁기, 티비에 이어 요새는 냉장고도 곧 운명할 듯한 분위기다. 가전제품의 수명주기를 훨씬 뛰어넘는, 이 남자와의 길고 긴 인연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를 고민해본다. 이왕이면 해피엔딩이 좋지 않겠는가? 최대한 덜 싸우며(안 싸우지는 못하니) 서로를 세워주고 보듬어 주는 부부가 되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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