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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Sep 28. 2022

당신의 남편은 안녕하십니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현재의 마음 상태 자가점검

"남편을 사랑하나요?"라는 질문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오히려 "남편을 안 사랑하나요?"라는 질문에 피식 웃음이 나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이렇게 말하며 합격 목걸이를 걸어주고 싶다.

"네, 당신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얼마 전 SNS에서 본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의 한 장면도 마침 생각난다. '남편'을 뜻하는 단어를 맞추는 문제였는데, 제시된 초성 'ㅅㅂㄴ'을 보고 정답이 공개되기도 전에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서방님'이 아닌 다른 단어(네, 생각하시는 그 단어 맞습니다.)가 단박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의식 중에 남편을 향한 마음의 소리였던 것일까? 아무튼 평소 남편에게 품고 있던 응축된 감정을 자각한 사건이었다.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총을 쏴 주고 싶다"는 지인의 진심 어린 말도, 결혼식 때 주례를 해 주셨던 목사님의 "남편은 평생 우호적 낯선 이"라는 언급에서도 배우자에 대한 미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어쩜 둘 다 이리도 적절한 표현인지! 비록속을 뒤집어 놓는 배우자라 할지라도 이 '서방님'이라는 존재를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만일 함께 살면서 지금까지 사랑의 감정이 변하지 않았다면,


1)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거나

2) 미친 듯이 잘 생겼거나

3) 한결같이 다정하거나


이 셋 중 하나라도 해당되는 게 아닐까? 당연하고도 애석하게도 본인의 남편은 3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안타깝게도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래도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을 선택하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라도 있다면 진지하게 두 손을 꼭 붙들고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제발 정신 차리세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요! 지금까지 인생 헛 사셨어요."


언젠가 남편이 나 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만약에 과거로 돌아가서 배우자를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그때도 나를 만날 거야?"라고 말이다. 대체 나 한테 무슨 대답을 기대한 걸까? (YES 라는 대답을 원한다면, 평소에 좀 잘할 것이지... 벼락치기로 공부해 놓고 전교 1등을 꿈꾸는 거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당연히 당신은 절대 아니지. 세상에 이렇게 많고 많은 사람이 있는데, 좀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겠어? 우리 인연은 한 번으로 족해."라고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그런데 아뿔싸, 분명 자신만만하게 쏘아붙였건만 애들을 생각하니 상황이 달라졌다. 할 수 없이 답변을 정정했다. 


"음... 그런데 당신은 마음에 안 드는 건 맞는데, 아이들 생각하니 안되겠네. 당신 유전자가 필요하긴 하니까. 우리 매력 터지는 애들은 당신과 나의 합작품이잖아. 그래 그냥 나랑 당신은 만날 운명이었나 보다(feat. 깊은 한숨)."


결혼생활의 최대 걸림돌(?)은 늘 아이였다. 모진 생각을 하다가도, 험한 말을 내뱉으려다 결국 아이들 때문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무 죄도 없는 어린 자녀들에게 충격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아이를 낳기 전에 우리 부부는 꽤나 사이가 좋았었다. 그 시절의 싸움이라고 해봤자 지금에 비하면 아주 귀여운 수준의 점잖은 다툼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이가 하나, 둘 태어나고 점점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게 되었다.


<누가누가 상대방을 더 약 올리는가?> 배틀이 한 판 벌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과거의 부정적인 감정을 영혼까지 끌어올려서 폭발시키기> 스킬도 선보였다가 <내 말이 다 옳고 너는 틀려>라는 식의 내로남불 논리로 맞붙기도 했다. 속을 박박 긁어 놓는 걸로 모자라 상대방에게 모진 말로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하루 이틀의 냉전으로 끝나기도 했지만, 남편의 언행이 얄밉고 화가 나는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아 꽤 오랜 기간 분을 품기도 했다.


확 시댁에 전화를 걸어서 "어머님, 아버님! 이 사람과 더 이상은 같이 못 살겠어요. 이러다 제가 미쳐버릴 거 같아요."라고 시원하게 폭탄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여러 번 마음 속으로만 상상만 했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용기가 없단 말인가.)


이렇게 세월이 흐를수록 사랑도, 우리 부부의 관계도 변했다. 분명 처음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의 감정이 활활 타올랐지만 두 아이의 험난한 '육아'라는 관문을 통과하며 사랑보다는 '동지애' 혹은 '의리'가 돈독하게 쌓여졌다. 그러다가 사회생활 하느라 안팎으로 시달리는 남편을 보며, 반대로 아이들 키우느라 만신창이가 된 나의 모습을 보며 서로에게 '측은지심'이 드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현재는 '우정'을 적당히 유지하는 ‘룸메이트’같은 관계에 이르렀다.


구 남친(현 남편)의 어떤 말에도 까르르 웃어주던 순수했던 20대 시절을 지나, 감동도 재미도 없는 뻔한 아재 개그에 정색하며 입을 틀어막아버리는 40대 아줌마가 되기까지... 그렇다, 나 또한 많이 변했다. 사랑이 식어가는 건 내 탓도 분명 있다. 남편 한쪽의 문제만이 아님을 인정하는 바이다. 


살아보니 "자식 때문에 산다"는 말은 진리였다.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남남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이럴 바에 차라리 지금이라도 갈라서야 하나?'라는 자문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냥 화풀이로 괜히 던져보는 말이 아닌, 진심으로 여러 번 고민해보았고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도 했다. (이 사실을 나중에 남편이 알게 되면 매우 서운해하겠지만, 어쨌거나 사실이다.)


나의 경우 둘째를 출산하고 회사를 그만뒀기에 만약 갈라선다 한 들 아이 둘을 키울 경제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경력단절이 된 상태로 갑자기 사회생활에 다시 뛰어들 자신도 없었고, 만약에 취업이 된다 고해도 퇴근 전까지의 공백시간과 각종 변수(방학, 질병 등) 발생 시 홀로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답이 안 나왔다. 게다가 짜증 나게도 집도 차도 싹 다 남편 단독 명의였다. 내 지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고로 남편이 미워 죽겠다 한들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었다. 억울해도 그저 버텨야만 했다. 이런 나의 불 같은(이라고 쓰고 '더러운'이라고 읽으면 됨) 성격을 잘 아는 신께서 단 한번도 생각지 않았던 퇴사를 통해 경제력을 화끈하게 차단하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지금까지 헤어지지 않은 건 '하나님 은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현재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음은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버티다 보니 "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인생 선배들의 명언도 뼛속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좋은 남편은 아닐지라도, 좋은 아빠인 건 맞다. 언제나 아이들과 가정이 최고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 그리기, 만들기 실력은 엄마인 나보다 월등해서 다채로운 미술 활동으로 늘 자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뿐만 아니라 창의력 넘치는 별별 놀이를 통해 온 몸으로 잘 놀아주기 때문에 아이들이 아빠와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아, 이렇게 써 놓고 보니 꽤 멋진 남편처럼 보인다. 싸움에서 제대로 패배한 기분이 이런 건가? 이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 사람과 남은 60여 년의 인생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진심으로 어질어질하다. '황혼 이혼'이나 '졸혼'을 꿈꿔보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훌쩍 커서 우리 곁을 떠나고 빈 둥지만 남게 되면 할 수 없이 전략적 제휴를 맺어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적적한 삶에 말동무가 필요해서, 혹은 여행 가서 내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필요해서라도 말이다. 아, 가끔 요리하다가 내 힘으로 도저히 병뚜껑을 못 열 때도.

 

결론은, '아 이번 생은 망했구나!' 싶다. 미워도 남편은 남편이구나, 이 사람과의 인연은 어쩔 수 없구나 싶다. 슬프게도 당장 우리의 관계는 쫑낼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음을 잘 고쳐먹고 격려하는 말과 배려하는 말로 남편을 세워주려고 굳게 다짐하지만 매번 대 실패다. 막상 얼굴을 마주하고 한두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면 버럭 화부터 내게 되는 건 어쩌란 말인가? 나름 꽤나 힘써 노력하고 있지만 각자 다른 곳을 향하여 달려가는, 그래서 점점 멀어져가는 우리의 관계의 개선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고전 중의 고전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프롬은 '사랑은 배우고 익혀야 할 기술이다'라고 했다.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만이 아닌 결의이자 판단이고 약속이라는 것이다. 고맙게도 이 책을 통해 '이 인간과 남은 인생을 과연 어떻게 행복하게(덜 불행하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정답을 만난 듯하다. 가능한 서로에게 맞춰주고, 상대방이 극혐 하는 부분은 조금씩 고쳐가고, 그리고 포기할 것은 적당히 포기하면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보, 그러니까 우리 좀 잘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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