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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Feb 06. 2023

남편과 이어달리기를 하는 중입니다

완벽한 팀플레이를 꿈꾸며 오늘도 힘차게 발을 내딛기

배우자와의 완벽한 팀플레이를 선보이는 순간은 과연 언제일까? 한 개그맨이 말하기를, 비냉, 물냉 크로스로 패스할 때라고 해서 배꼽을 잡고 웃은 적이 있다. 작고 소소한 순간일지라도 부부끼리 협업이 필요하고, 그로 인해 함께 누리는 행복을 배가시킬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결혼생활을 하며 매 순간마다 남편과 협업하며 힘을 발휘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우리 부부에게는 쉽지 않았다. 주먹만 휘두르지 않았을 뿐, 총과 칼만 들지 않았을 뿐, 둘 사이에서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일이 허다했으니까. 결혼 전에는 당연히 배우자와 가사도 육아도 분담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게 남녀평등이라고 생각했다. 꽤나 다정한 편이었고(대 과거, 지금은 아님) 설거지 박사(허위 박사임에 틀림없음)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집안일의 달인이었기에 속으로 나는 '그래, 나는 진짜 운도 좋네! 앞으로 이 남자와는 집안일로 분배로 싸울 일은 없겠어.'라는 야무진 착각을 했다. 


맞벌이 부부였던 결혼 초기에는 둘 다 회사일로 정신없다 보니 퇴근하면 청소도 적당히 대충했고, 집밥도 어지간히 끼니를 때우는 수준이었다. 집안일의 강도도 대체로 느슨했고, 손이 가는 일도 크게 없었으며, 주중은 물론이고 주말에는 열심히 밖에 나가서 노느라 집에 머무는 시간 자체도 짧았기에 집안일 하느라 별로 힘들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내가 식사를 준비하면 쏜살같이 뒷정리와 설거지는 남편이 담당하고, 내가 화장실 청소를 시작하면 남편은 알아서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는 등 말하지 않아도 역할 분담이 되고 손발이 척척 맞았다. "찰떡궁합은 바로 우리 부부를 두고 하는 말이지 않을까?" 라며 부부애를 뽐냈던 애송이 시절이 분명 있었다.    


아무튼 그 후로 아이들이 태어나고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둘째 출산 후 육아휴직과 재택근무를 거치며 버틸만큼 버티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집안일 배분 비율이 기존에 5:5였다면 전업주부가 된 후로 9:1로 나의 비중이 훨씬 높아졌다. 당시 퇴직 후 느꼈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남편의 돌변한 태도도 한 몫 했다. 남편은 스리 슬쩍 집안일을 하나 둘씩 놓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대부분의 집안일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에 비해 시간 여유가 많은 내가 더 많은 집안일을 담당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어린 자녀들 돌보느라 생각보다 처절한 나날을 보내며 여력이 없었기 에 여간 서운한 게 아니었다. 조금만 더 나의 상황을 배려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남편이 너무 미웠다.  

물론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편해지고, 상황이 달라졌으니 남편을 가능한 피곤하지 않게 않고 내 선에서 해결하려 애쓴다. "일주일에 5일은 네가 차를 쓰니까 자주 쓰는 사람이 관리하는 게 맞겠지?"라는 남편의 논리대로 차량관리(내부 청소, 주유, 세차, 정기검진, 엔진오일 교체, 냉각수 교체 등) 조차도 본인이 90% 이상을 군소리 없이 담당해왔다. 종종 '그래도 차량 관리는 남편이 조금만 더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치사해.'라고 생각하며 매사에 비협조적인 남편을 원망을 하기도 했다.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가는 것 같아서 짜증이 머리끝까지 났던 어느 날, 백날 불평을 늘어놓아 봤자 바뀌는 건 없으니 뭔가 건설적인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고 싶어졌다. 한발짝 물러서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나와 남편의 상황을 분석해 보며 뭐가 문제인지 파악해보았다. 내가 자녀들 양육과 크고 작은 잡일에 허덕이고 있을 때, 남편은 대체 무얼 하고 있었는지 부터 생각해보았다. 직장에서 몸과 마음을 불사르며 우리 가족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봤다. 돈 버는 일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나도 경험해 봐서 그 고단함을 잘면서도 자기 중심적 사고로 그저 나의 어려움에만 매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렸던 만큼, 남편도 안팎으로 달달 볶였겠구나 싶은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동안 남편의 태도에 영 불만을 품었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남편이 느끼는 '가장의 무게'는 얼마나 컸을까? 야근 후 피곤에 절어 퇴근한 남편에게 "수고했어."라는 말로 격려부터 했어야 하는데 눈도 안 마주치고 일단 음식물 쓰레기부터 건네면서 "나도 만만치 않게 오늘 시달렸다고!"라며 쏘아붙였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다. 애초부터 이런 생각을 했으면 좋으련만, 이 성질이 고약한 '나'라는 인간은 늘 이런 식이다. 팀 켈러의 저서 <결혼을 말하다>에서도 결혼 생활의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가 바로 '지독한 자기중심성'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무수한 가정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주범이자 항상 존재하는 적으로, 부부 관계에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이며 자기연민과 분노, 절망을 불러 일으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남편과 나는 한 팀 아니던가? '남편'이라는 존재는 경쟁 상대도 아니요, 갑과을 같은 상하관계도 아니요, 두고두고 미워하며 증오하는 관계는 더더욱 아닌, 바통터치를 하며 이어달리기를 하는 파트너라고 생각하니 결론은 명확했다. 서로가 더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한 명이 지쳤을 때 다른 한 명이 대신해서 끌어주고, 구멍이 난 부분은 너나 할 것 없이 되는 사람이 먼저 달려가서 메꿔주면 되는 거다. 그동안 해왔던 구습(잘잘못을 따지며 힐난하기)을 버리고 한 마음, 한 목표로 함께 달리는 게 본인에게도 우리 가정에도 훨씬 이득인 셈이다.


이렇게 마음 가짐을 달리하니 그동안 얄밉게만 보이던 남편의 행동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밥 하랴, 애들 숙제와 공부 챙기랴, 집 청소하랴, 발을 동동 구르며 정신없이 보내는 저녁시간에 남편의 도움은 고사하고 천하 태평하게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잠들어 있을 때면 항상 인내심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꼴 보기 싫어서 당장 엉덩이를 걷어차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요새는 '얼마나 피곤했으면!'하고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그래 당신이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내내 시달렸을 테니 잠시라도 충전하길. 그동안 내가 애들은 책임지고 있을게.'라며 스스로 마음을 다독여 보았다.


이 얼마나 장족의 발전인가! 단지 '이어 달리기'라는 개념을 적용했을 뿐인데, 상대방에게 훨씬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한참을 소파에서 자다 깬 남편은 나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껴서인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보답했다. 세상 바람직한 선순환 아니겠는가? 나도 남편도 마음이 상하는 일 없이 평화롭게 일이 정리되었다. 게다가 돈 한 푼 들지 않은 방법이니 이 얼마나 반가운 해결책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매번 나만 희생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고로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한 법이니까. 그래봤자 애들 학교 보내고 혼자 있는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오거나, 맛있는 빵을 사 먹거나, 떡볶이 한 접시 즐기는 정도의 뻔하고 별거 없는 건전한 일탈이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그래야 매일 찾아오는 전쟁 같은 저녁 피크 타임을 단단히 대비할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까. 나의 정신 건강은 알아서 스스로 깨알같이 챙겨주는 건 필수다.


종종 아이들의 학교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럴 때 남편이 적극적으로 나서준 적이 있다. 학부모가 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행사가 있었는데 대부분이 엄마들이 참가했지만 우리집은 남편을 투입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남편의 책 읽기 반응이 꽤나 좋았고, 학생들에게 인기폭발이었다. “혹시 연극배우 출신이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남편은 책 읽기에 진심을 다해 열연했던 모양이다. (참고로 남편은 경영학과 출신의 평범한 사무직 직장인이다.) 학생들이 밝은 미소와 적극적인 참여로 화답해 준 덕에 남편의 자신감은 백배 상승하였다. 그 날 아이도 신이 났는데, 소위 말해 '인싸'가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서로 더 잘하는 분야는 자진해서 먼저 나서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애들 숙제 봐주기는 웬만해서는 남편에게 맡기지 않고 본인이 담당한다. 남편에게 몇 번 맡겼더니 왜 이리 구멍이 많던지...)


또한 남편은 종종 영화를 보는 게 삶의 낙이다. 둘이 같이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은 남편이 연차를 내거나, 아이들을 친정에 맡길 때만 가능한 일이라(거의 불가능하다는 뜻) 혼영은 부득이한 선택이다. 그렇기에 남편의 일탈을 적극 지지해 준다. 집안의 아주 급한 불만 끄고 나면 언제든 영화를 보러 나가게 허용해 주었더니 아주 신바람이 나서 쏜살같이 튀어 나간다. 물론 주말에까지 찌질한 일상(애들과 씨름하기, 집 정리 등)을 보내는 것이 억울할 때도 있지만 남편의 건전한 취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나의 행복이 배우자의 행복이요, 자녀들의 행복이요, 가정의 행복이라 생각하니 행동도 말투도 자연히 긍정적으로 변했다. 상대방이 지쳤을 때 내가 좀 더 달리면 되는 거고, 때로는 상대방의 속도에도 맞춰가며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주어진 상황에서 끝까지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일단 함께 달리는 일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마녀엄마>의 저자 이영미는, “배우자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다 한들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며 인내심을 가지고 넘어가자.”고 제안한다. 또한 “부부가 다툼 없이 그럭저럭 잘 사는 것이야 말로 부모로서 자식에게 베풀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이다”라고 말한다. 각종 산전수전을 함께 겪으며 ‘견고한 경첩처럼 서로의 어깨에 의지했다.’는 이 표현이 얼마나 멋지던지! 이처럼 남편과 나는 평생 한 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최고의 팀워크를 발휘해보려 한다. 그게 모두를 위한 최상의 선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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