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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Jan 30. 2023

카톡 프사를 남편과 찍은 사진으로 바꾸면 생기는 일

비록 어색함과 오글거림을 이겨내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내 나이대의 주변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카톡 프로필 사진은 가족 혹은 아이 사진이다. (그나저나 참 신기하게 부모님 나이대로 접어들면 99%가 등산, 꽃, 자연 사진인 건 왜 인지 아는 분?) 본인의 카톡 프사도 비슷한 상황이다. 종종 멋진 풍경이나 음식 사진을 올리지만 대부분이 여행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행복한 한 때를 담아낸 컷으로 '나 이 정도로 행복하게 지내!'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반영한 걸까? 혹은 팍팍한 삶을 외면하고 싶을 때 까르르 웃음이 터지는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꺼내 보고 싶어서? 어쨌거나 내 삶의 큰 비중은 '가족'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다 보니 프사의 단골손님은 생기발랄한 아이들 사진이다. 나 말고도 엄마라면 누구나 이렇지 않을까 싶다. 사건(이라 함은 남편과 찍은 셀카를 카톡 프사로 바꾼, 그야말로 내 인생의 흔치 않은 일)의 발생은 한 지인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참고로 이 분은 50대 중반의 여성이다).



"어머, 카톡 프사 너무 예쁘다! 고운씨는 여행도 많이 다니고 좋겠네"

"아 네, 얼마 전에 제주도 다녀왔거든요. 그때 예쁜 풍경에서 사진 잔뜩 찍었어요."

"근데 남편이랑 둘이 찍은 사진은 없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그럼요, 없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은 없는데....(단호박)"

"어머 왜? 애들 다 크고 나면 그래도 부부밖에 없어! 가족사진, 애들 사진만 찍지 말고 자기들끼리도 좀 찍어봐!"

"아.... 뭐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눈빛만 마주쳐도 짜증이 나고, 얼굴만 봐도 화가 날 때가 태반인데"

"(조금 충격을 받으신 듯한 표정으로) 어머~ 40대 초 중반 부부가 벌써부터 그러면 어떻게! 원래 부부는 서로 부족한 사람들이야. 서로 보듬으며, 인내하며 살아가는 거지 뭐. 인생 별거 없다니까."



짧은 몇 마디였지만 지인과 나눴던 대화가 한참을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보다 한참 인생 선배이자 육아 선배의 조언이 분명 맞는 말인데 왜 실천하기는 싫은 청개구리 심보가 드는걸까? 이성과 감성의 자아가 내면에서 한참을 충돌하는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나의 지난 카톡 프사를 훑어봤다. 그랬더니 남편이 있긴 한데 없었다. 사진에 등장하긴 했으나 존재감이 덜 했다는 뜻이다. 가족사진 귀퉁이에 걸쳐 있긴 하지만 주인공이 아닌 조연 같이, 혹은 단체사진에 그냥 얼굴만 형식적으로 내민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 자리는 차지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밀려도 한참을 밀려 있었다. 순간 현타가 오며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쓰리이(남편 + 아이 둘 = 3명의 이씨를 통칭하는 말)에게 나는 늘 독보적인 인기 1위이다. 특히 남편은 평소에 나에게 그리 관심도 없고 딱히 잘해주지도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형적인 마누라 바라기이다(아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다는 뜻)이다. 아내 없이는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똑똑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혼자서는 도저히 용기가 안 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회사에서는 잘 나가는 마케팅팀 팀장이라니... 그래서 늘 간절하게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나와는 달리 가족이 함께 있기를 원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비효율적으로 우르르 네 식구 모두 동행하는 편이다. 참으로 피곤한 성격이고 나랑 정말이지 성향이 영 안 맞는다. ‘마마보이’는 들어봤어도 ‘와이프보이’가 있을 줄이야... 


아무튼 그렇게 나만 바라보고 있는 남편에게 정작 따뜻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기는커녕 늘 나의 시선과 관심은 아이들에게 향해 있었다. 남편은 늘 뒷전이었다. 카톡 프사는 2016년 이후로 남편과 나와 둘이서만 찍은 셀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단 한 장도 없었다. 무의식이 반영된 것일까? 아니면 그냥 내가 애정이 없어서? 내가 그렇게도 남편에 대한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었던가?


곰곰 생각해 보니 그렇다고 셀카를 전혀 안 찍은 건 아니었다. 구글포토가 알려주는 사진(한고운 님, 이제훈 님의 지난 추억이라며 둘이 나온 사진을 모아서 자동으로 보여줌)에 의하면 그래도 일 년에 몇 번은 같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있긴 했다. 분명 봤던 기억이 난다! 여행지에서 기분이 아주 좋았을 때, 간혹 애들 없이 둘이 밥을 먹었을 때, 혹은 애들이 강제로 찍어줘서. 그리고 결혼기념일 같이 중요한 날에는 나름 다정해 보이는 사진을 어김없이 남기곤 했다. (이를 전문용어로 '잉꼬부부 코스프레'라고 부른다) 


비록 간헐적이긴 했지만, 둘이 찍은 그 많은 사진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응 그냥 찍는 거야. 자체 기억 저장용. 어디 올리지는 않을 거니 기대하진 마쇼."라고 말하며 시니컬하게 셀카를 찍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아, 참으로 나는 까칠하고도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ESTJ 아내이구나. 최근에 <부부 사이 회복하기>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던 터라(남편과 서서히 틀어진 마음과 점점 벌어진 사이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잘 지내보기로 결심한 사건) 뭔가 새롭게 시행할 거리가 필요한 시기였지 않던가?


'아 그래 미친척하고 카톡 프사를 바꿔보는 거야! 남편과 아주 다정하게 찍은 사진으로.' 


혼자 키득거리며 난이도 최상의 미션을 스스로에게 주었다. 그리고 사진을 한참동안 찾아보았으나 쓸만한 사진이 없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벌리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머쓱해졌다.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려다 보니 나의 행동이 오글거리는 건 기본이요, 포기하고 싶은 강한 유혹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대로 미션을 접을 수는 없지! 내가 누군가? 한다고 결심하면 어떠한 시련에도 기어코 해내는 의지의 아이콘인데. (그렇다, 나는 최근에 커피를 끊을 정도로 독한 사람이다. 물론 다이어트에는 매번 실패하지만.) 갖은 핑계거리가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싹 걷어버렸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으면 새로 찍으면 되는 거 아닌가?


며칠 후 마침 가족들과 근사한 카페를 가게 되었다. 채광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순간 커플 셀카 미션이 퍼뜩 떠올랐다. 아이들이 책을 열심히 읽던 잠잠한 틈을 타서 사진 촬영을 시도해보았다. 테이블 한 쪽에 내 스마트폰을 고정해 두고, 셀카 모드로 남편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 '이 여자가 웬일이지?'라는 남편의 의외의 반응이 표정에서 너무 티가 났지만, 모른 척하고 열심히 포즈를 취해보았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한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왜 갑자기 둘이 친한 척을 하냐고, 오늘 무슨 날이냐고, 엄마 아빠가 원래 이렇게 사이가 좋았냐고 등등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미안하다 얘들아, 매일 이런 모습을 보여 줬어야 하는데...)


"어, 너네 몰랐어? 엄마가 아빠를 엄청 사랑하는거? 그동안 티를 안 냈을 뿐이야. 그리고 앞으로는 더더 사랑할 건데? 너희들도 너무 소중하지만 엄마는 아빠가 무조건 1순위거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려니 양심에 매우 찔리긴 했지만, 이미 뱉어놓은 말이라 방금 한 말을 책임 지기로 마음먹었다. 말은 힘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믿음으로 선포하는 대로 곧 현실로 이뤄질 거라 믿으며, 냅다 확 세게 질러버렸다. 내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둘이 마주 보며 까르르 웃어 대기 바쁘고, 남편은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돈이 드는 일도 아닌데, 진작 좀 이렇게 예쁜 말 좀 할 걸 싶었다. '이런 선의의 거짓말쯤이야, 앞으로 내 100번도 더 해주지!'라며 속으로 한껏 배짱을 부려 보기도 했다.


그렇게 건진 다정한 사진으로 프사를 바꾼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친한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어머 고운아, 왜 둘이 다정해? 무슨 일 있어?" 

(평소와 다른 남편과의 다정한 모습에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이 웃픈 상황이란!)

"언니,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영 내키지 않는 일(남편을 사랑하기)도 실천해 보기로 했어요."

"꺅 웬일이야~ 보기 좋네! 잘 했어. 너도 참 대단하다. 그걸 실천하다니."


마치 SNS에서 다이어트를 하겠노라 대대적으로 인친들에게 선포를 하고, 헬스장에서 찍은 사진에 #오운완 이라는 해시태그를 올려서 피드에 박제해 놓은 기분이었다. 나의 이 가열찬 결의를 당당하게 팍팍 티 내리라! 아무튼 한참이 지나고 남편과 찍은 사진을 프사로 바꾼 사실을 잊어버렸을 떄쯤, 남편의 카톡 프사에도 나랑 찍은 사진으로 슬쩍 바뀌어 있었다. 말은 안 해도 엄청 좋았던 게 분명하다. 긴 짝사랑을 끝내고 본격 연애를 시작한 기분과 비슷했을까? 


아무튼 나는 앞으로 더욱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의지적으로 남편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고, 섬기기로 했다. (라고 늘 다짐하지만 버럭 고 화부터 낼 때가 많다. 역시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란 참으로 쉽지 않다.) 

<프사 변경 미션>을 평가 내리자면, 이 정도면 대 성공이지 않을까? (이 어려운 걸 또 해내다니, 셀프 쓰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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