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Y Oct 19. 2021

동물과 사람, 그 사이의 경계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 & 독일 함부르트 동물원 등  

 신시내티 동물원에 간 이유는 고릴라 하람베 때문이었다. 2016년 5월 28일, 세 살짜리 아이가 고릴라 방사장 안으로 떨어졌다. 방문객과 고릴라 방사장은 4.6m 깊이의 구덩이인 해자로 나뉘어 있었다. 어머니가 한 눈을 판 사이 아이는 1m가 채 안 되는 울타리를 넘어 해자로 떨어졌다. 한 수컷 실버백이 아이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직원들은 고릴라를 내실로 불러들였지만 고릴라는 들어가지 않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아이의 다리를 잡아끌었다. 


동물원은 고릴라를 총으로 쏴 죽였다. 아이가 떨어진 지 십 분 만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방문객이 찍은 영상은 빠르게 퍼졌다. 죽은 고릴라의 이름은 하람베, 17살이었다. 사람들은 꼭 죽였어야 했냐며 동물원을 비판했다. 신시내티 동물원은 마취를 할 경우 시간이 걸리고 고릴라가 흥분할 수 있었기에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빠른 결정을 내려야 했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30년 전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영국의 저지 동물원에서 한 아이가 고릴라 방사장 안으로 떨어졌다. 역시 수컷 고릴라가 가장 먼저 아이 옆으로 다가갔다. 무리를 보호하는 것은 리더인 실버백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저지 동물원의 고릴라들은 사육사가 안으로 들어오라고 부르자 모두 아이를 두고 들어갔다. 이 점이 신시내티와 달랐다. 


영국 저지 동물원 고릴라 야외 방사장 

신시내티 동물원은 건물과 관련한 안전 기준을 지켰고,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 해자 앞에 식물을 심고 울타리를 쳐놨지만 너무도 쉽게 건너갈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사건을 통해 밝혀졌다. 낮은 울타리 하나만 넘어 들어가니 동물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 큰 구멍이 생기는 셈이었다. 


동물원에서 동물과 방문객의 공간을 나누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철장, 펜스, 전책, 그물, 유리창 그리고 해자 등이다. 과거 동물원에서는 위험한 동물을 가둘 때 철장을 썼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수직으로 늘어선 철 막대는 안에 있는 동물의 모습을 가렸고 무엇보다 사람이 동물을 가뒀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상기시켰다. 독일의 동물 무역상이자 서커스 단 소유주였던 칼 하겐베크는 동물의 능력과 인간의 심리에 대해 알고 있었다. 동물이 뛸 수 있는 최대 거리와 높이, 그리고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동물들의 모습과 환경이 무엇인지를 이용해 새로운 개념의 동물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독일 하겐베크 동물원 코끼리 방사장 


그렇게 1907년 함부르크의 동물원에서 최초로 선보인 동물 전시의 핵심은 해자였다. 해자는 적을 막기 위해 성이나 사유지 주변에 깊게 파 놓은 구덩이다. U자 형, V자 형, 물이 있는 수호와 물이 없는 건호로 나뉜다. 하겐베크는 동물이 있는 곳에 이런 해자를 파 가뒀다. 바로 앞에 가서 아래를 보면 해자가 파여 있지만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아 울타리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철장처럼 보는 사람의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벽이나 유리창보다 바람도 잘 통하며 사람과 동물이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직접 접촉할 일이 없어 비교적 안전하다. 


하지만 뻥 뚫려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동물에게 돌, 과자, 나뭇가지 등을 던진다. 2016년 9월에는 서울동물원에서 사자에게 돌을 던지는 방문객이 영상으로 찍히기도 했다. 사육사들은 동물을 돌봐야 할 시간에 방문객들을 제지하고 해자에 들어가 쓰레기들을 치워야 한다. 동물 입장에서 보면 절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떨어지면 다친다는 두려움 때문에 뛰어 나가지 못한다. 홍수가 났을 때 해자가 물로 차게 되면 수영을 할 줄 아는 동물은 탈출이 가능하다. 무리 내에서 싸우다가 수세에 몰리면 해자에 빠질 수도 있다. 실제 2006년 잭슨빌 동물원에서 다른 고릴라에게 쫓긴 고릴라가 해자에 빠져 익사했다. 


호주 애들래이드 동물원 사자 펜스에 걸린 치킨윙 


동물의 능력을 과소평가해 해자를 만들거나 해자 주변에 타고 넘어올 나무 또는 물건이 있으면 동물이 해자를 넘어올 위험도 있다. 20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에서는 호랑이가 해자를 뛰어넘어 밖으로 나왔다. 당시 목격자들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호랑이를 놀려댔다고 말했다. 탈출한 호랑이는 한 명을 죽이고 두 명에게는 큰 부상을 입혔다. 그리고 총에 맞아 죽었다. 신시내티 동물원 사건처럼 동물뿐 아니라 사람이 빠지기도 한다. 싱가포르 동물원, 베이징 동물원, 베를린 동물원에서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해자를 넘어 각각 호랑이, 판다, 북극곰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역시 크게 다치거나 죽었다. 


사고 후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은 해자를 더 깊게 파고 그 위를 유리창으로 막은 다음 전책까지 설치했다. 내가 신시내티 동물원을 방문했을 때는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반이 지났을 때였다. 하람베는 없지만 다른 고릴라들을 보러 갔다. 마침 리모델링 중이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고릴라 동상만 만날 수 있었다. 하람베가 죽었을 때 동상에 놓여있던 꽃과 편지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리모델링 후 해자가 어떻게 바뀔지 궁금했다. 


미국 신시내티 동물원 고릴라월드


최근 동물사에는 유리창이 빠지지 않는다. 사람이 자연에 들어간 듯한 환경을 조성한 몰입 전시에서 유리창은 큰 역할을 한다. 동물과 사람의 공간은 유리창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유리창은 동물을 사람 앞으로 바짝 데려다 놓았다. 눈앞에서 어미 고릴라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보거나 하마가 물 안에서 두둥실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과거에도 내실에 있는 동물을 관찰하기 위해 유리창을 설치했지만 스테인리스 기둥이나 타일 바닥 같은 환경 때문에 인위적인 환경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유리창은 단점이 많다. 무엇보다 깨질 위험이 있다.  오마하 동물원에서 수컷 고릴라가 유리창을 깼다. 한 아이가 가슴을 두드리며 고릴라를 위협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미네소타 동물원에서는 불곰이 돌을 던져 유리창에 금이 갔고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도 두 수컷 고릴라가 싸우다 달려들어 유리창을 부쉈다. 다행히 두꺼운 강화 유리를 사용해 동물이 탈출하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둘째, 사람들이 두드린다. 동물은 유리창을 통해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소리도 전달된다. 그런데 방문객들은 동물의 반응을 보려고 유리창을 두들겨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동물들은 유리창을 발로 긁으며 사람들은 잡으려고 하지만 잡을 수 없다. 동물원에서는 사람들이 유리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일정 거리를 두고 울타리를 쳐 놓거나 두드리지 말라는 안내문을 붙여 놓기도 한다.


미국 우드랜드파크 고릴라가 있는 곳 유리창에 써있는 글귀 '유리창을 두드리지 마세요'('두드리지 않아 고맙습니다'라고 역설적으로 말했다)


셋째, 새들이 부딪힌다. 먹이도 나무도 많은 동물원 주변에는 야생 새들이 산다. 새들은 유리창에 비친 풍경을 진짜로 착각하고 날아가다 부딪혀 죽거나 다친다. 서울동물원에도 유리로 된 관람창 아래서 여러 새들의 죽음을 목격했다. 피해 가라고 큰 새 모양의 스티커(버드세이버)를 붙였는데 바로 그 옆에 부딪혀 죽은 경우도 봤다. 새들은 가로 10cm, 세로 5cm 정도 돼야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이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링컨파크 동물원은 유리창에 빽빽이 무늬를 넣었다. 


미국 링컨파크 동물원 고릴라 야외 방사장. 비누를 사용해 유리창에 고릴라 무늬를 넣었다.


마지막으로, 유리창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통풍이 안되고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국내 동물원 중 동물을 잘 보이게 하려고 벽만 빼고 모든 면을 유리로 한 곳이 있었다. 바람이 들어오고 나갈 데가 없는 그런 방사장은 여름에 뜨거운 찜통이 된다. 이런 경우 강제 환기나 온도 조절 장치가 따로 필요하다. 동물이 유리로 된 실내에서만 살고 햇빛을 직접 쐬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자외선 중 UVB는 유리창을 통과하지 못하는 데, 이는 비타민D를 합성해 칼슘 흡수를 돕는다. 결국 칼슘 부족으로 뼈가 쉽게 부러질 가능성이 있다. 적절한 자외선등을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  


이렇듯 유리창의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동물원은 방문객들에게 더 강렬한 경험을 주기 위해 단점들을 보완해 동물들을 앞으로 끌어들인다. 유리창 앞에 그늘을 만들고, 따뜻한 열선을 깔아주고, 먹이를 놓아 좋아하는 장소로 만든다. 


철장을 해자와 유리창으로 바꾼 후, 사람들은 동물을 가두고 본다는 죄책감을 덜었다. 그런데 동물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 조금 주어진 동물들의 영역에 어떻게든 가까이 닿고 싶은 듯하다. 그 욕심이 동물에게 스트레스와 고통을 주고 때로 죽음을 선사할 지라도 말이다. 하람베의 죽음은 동물원이 어떤 곳인지 상기시켰다. 그렇게 안 보이려고 애쓰지만 동물원은 인간을 위한 곳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경계를 넘어 그들의 삶을 마음대로 헤집어 놓아서는 안된다. 동물에게 가까이 다가선 만큼 우리에게는 그들의 조그만 공간, 그리고 그곳에 갇힌 동물의 시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동물 복지를 위한 노력은 어디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