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Basics
남편이 종종 저녁시간에 이렇게 카톡이 온다.
"오늘은 언제 들어와?"
한창 성과를 내고 있을 때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남들이 쉴 때 나는 더 열심히 해야 해.’ '모든 시간은 날 업그레이드시켜줄 수 있는 거여야 해' 하루라는 한정된 시간을 붙잡고, 잠드는 순간까지도 그 시간을 놓지 못한다. 성과 중독에 빠져 있을 때는 끝이 보이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오늘의 극단적인 성취로 인해 내일의 나는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런 시간이 점점 많아질수록 현재와 미래, 지금 이 순간의 경계가 흐려지고, 지나가버린 시간마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말 그대로 ‘시간 순삭’이다. 다른 말로는 몰입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지나친 몰입은 중독이다.
이때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다.
"나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은 상대적인 것일까, 아니면 누구나 공평한 것일까?"
시간이라는 개념은 물리적으로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속도로 흘러간다. 하지만 그 시간이 온전히 본인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24시간 내내 나를 짓누르는 무게를 감당하느라 허덕이고,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을 풍요롭게 채워나간다. 이 때문에 억울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책임감의 무게와 풍요로운 마음 사이에서 수많은 갈등을 겪을 때, 책임감과 불안의 무게가 더 높은 확률로 내 삶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들이 나에게 끊임없는 성장과 업그레이드된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은 맞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이렇게만 살기에는 조금 억울했다. 시간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거라서 생각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은영 박사는 <강연자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계를 꼭 뛰어넘어야 하나요?" "정확하게 내 능력을 알고 작동할 수 있는 범위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한계는 사실, 뛰어넘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냥 겪어야죠" 여기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내가 깨부수려고 했던 나의 한계와 억지로 끌어올리고 싶었던 능력치가 자연스럽지 않을 때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나만의 자연스러움은 뭘까?'라고 스스로 물으며 끊임없이 탐구하고 나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어떤 일들은 에너지가 하나도 안 드는데 무한한 성과를 내고, 어떤 일들은 시간도 많이 들고 힘에 부치는데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더라도 살면서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쉬기만 하거나 친구들이랑 놀기만 한다고 깊은 만족감이 있는 것이 아니고, 행복 호르몬이 오래도록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잘 산다"라는 말의 기준은 각자마다 다를 것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주기적으로 모든 순간에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습관이 필요할 것 같다. 1분 뒤, 1시간 뒤, 하루 뒤에 내 생각과 가치관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생각이 지금의 정답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직접그린 아름다운 그러데이션 컬러로 물들인 내 인생은 잿빛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되었다.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집어든 이 책은 표지도 참 예쁘고 제목디자인도 아주 영롱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여기서 '바람'이라는 글자를 세포가 모래알처럼 하늘로 훨훨 날아가듯이 흩어지는 느낌으로 표현했다.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은 촉망받는 신경외과 의사였던 폴 칼라니티가 갑작스러운 죽음의 문턱을 맞이하면서 생에 마지막 쓴 책이었다. 알고보니 철학과 영문학도 이수했고 글을쓰는 사람이기도 했다. 폴 칼라니티는 죽음을 앞두고 수많은 감정과 고통의 시간들 속에서 보내면서 모든 글들이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지금 느끼고 있는 '시간(time)'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암은 무자비하게도 시간뿐만 아니라 기력까지 빼앗아버려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크게 줄었다. 마치 경주하다가 지친 토끼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중략)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팽창한다면,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시간은 수축될까? 분명 그렇다. 내가 보내는 하루는 엄청나게 짧아졌다. 오늘과 내일을 거의 구분할 수 없게 되자,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오늘은 언제 들어와"라는 레퍼토리는 내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메시지였다. 유한한 삶에서 무언가에 몰입해서 정신이 나가있는 나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하나의 시그널이었다. 폴 칼라니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의 정지된 느낌의 극단의 시간과 내가 성취중독 때문에 너무 심하게 나를 몰아가는 극단의 시간은 얼핏 비슷한 것 같다. <숨결이 바람이 될 때>라는 책에서 마지막 25페이지는 남편의 죽음 이후 아내가 작성하여 마무리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죽기 전 몇 년의 시간이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충만했다고 말했다. 매일 삶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의 균형을 힘겹게 맞추며 감사와 사랑의 새로운 깊이를 탐구했다고 한다. 폴 칼라니티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나이가 나와 같은 만 37세였다는 것과 아내와 함께 죽는 날까지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는 눈빛과 모습들이 글 밖으로 튀어나오듯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나와 비슷해서 감정이입을 더욱 심하게 하여 극도로 울컥 했었던 것 같다.
한계와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지만 환희와 기적, 아름다운 일상과 함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오은영 박사님이 "그 과정을 겪어가는 겁니다." 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수많은 사건들과 고통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냥 겪어내려면 얼마나 내공이 있어야 할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취중독에서 벗어나 한 번씩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평범하고 소중한 순간들의 연속인 일상 그 자체로 기적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시간을 단순히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나만의 방식으로 채우고 있다. 기본적인 삶의 기쁨이란 다양하다. 유튜브 [essential;] 플레이리스트의 재즈음악과 함께 커피 향을 맡으며 원두를 갈아 거름종이를 펴고, 졸졸졸 따뜻한 물을 내리는 시간, 남편과 함께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여 예쁘게 식탁에 다양한 접시를 활용하여 집밥을 차려놓고, 인생에 대한 목표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내 꿈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또다시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
남편이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뭔가 감동적이고 공감이 되어서 메모장에 적어놨었다. "행복은 대단하게 뭐를 해야 되는 게 아니고 일상에 햇빛처럼 스며드는 듯?..."이라고 말했었다. 메모장에 날짜가 적혀있는데 정확히 2019년 12월 17일 결혼한 지 일 년쯤 되었을 때였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한한 기적들을 만들어내고 싶다.
온 세상에 햇빛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듯이
내 영혼과 가능성도 무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Back to the Basic]
지금 이 순간 이 시간(time)을
당신은 어떻게 채우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