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에서 볼록으로, 볼록에서 오목으로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언니들은 동네의 교회에서 과자파티를 하는 것을 즐겼고, 나도 따라가서 선생님과 공식적인 예배가 끝나고 모임을 하면서 과자파티를 하는 시간을 즐겼었다. 그 시절, 동네에는 곳곳에 교회와 성당이 많았고, 부모님이 전통 불교신자인 친구들도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무교'인 사람들이 절반이상이지만 내 주변에는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천국과 지옥, 십자가, 예수님과 같은 키워드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고 친숙했다.
해외 몇몇 곳들을 여행해 보면서 그들의 삶을 잠시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 문화에 빠져들게 되고 그들의 세계관에 잠시 몰입하게 된다. 불교국가인 태국에 사원들이 수만 개 즐비해있고 누구나 일상적으로 가는 것처럼, 특정 종교와 세계관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녹아들어 있다. 남편을 통해 사업차 알게 된 태국의 사장님 부부는 불교적 규율에 철저했다. 종종 불교 관련된 액세서리 선물을 주며 진심으로 '자비'의 마음을 가진 그들의 삶 속에 스며든 불교는 고요한 자부심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들의 문화가 궁금해졌고, 또 존중했다. 최근 치앙마이 여행에서 사원에 방문하여 새해 소원을 담아 내 생일의 요일에 맞춰 이름과 생일, 소원을 적어 도네이션을 했다. 이 의미가 무엇인지 명상과 요가를 가르쳐주셨던 현지인 선생님에게 잠시 배우기도 했다.
남미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세워진 웅장한 성당들은 나를 압도했고, 나도 모르게 그 경건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실제로 태국은 95% 이상이 불교신자이고, 페루에서는 90% 이상이 천주교 신자라고 한다. 내가 그 나라에 살았어도 자연스럽게 누구나 믿는 종교가 삶에서 당연하고 중요한 가치라고 여기면서 살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우리 삶에 조용히 스며든 세계관은 종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존재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 깊이 빠져들어 중독되어 있고, 그 기준은 문화와 처해진 환경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삶의 한 지점에 zoom-in 되어 있다.
나는 늘 모든 사람들의 주장과 생각을 잘 들어주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착한 아이였다. 나는 하얀색 헝겊과 같은 존재였다. 가는 곳마다 "맞아. 맞아"를 외치며 어떤 곳에서도 그곳의 물감 색깔을 잘 빨아들이고 스며들게 했다. 이 색깔 저 색깔 기준 없이 다 빨아들이다 보니 점점 검은색이 되어갔다. 나를 잃어갔던 것이다. "Why?"라고 되묻는 사람들을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나이와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들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나'라는 모양, 즉 육각형 또는 별 모양, 삼각형일지 모르는 나만의 모양에 따라 체에 잘 걸러져야 비로소 내 것의 1차적인 초안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들은 어떠한 기준 없이 주어진 삶에 집중되어 있다. 내가 처해진 환경과 문화에 스며들어 당연하다는 듯이 삶을 살아내고 있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가치관에 따른 삶의 목표와 이정표들을 따라가는 현실 속의 모든 반복되는 일상은 어렵지만 매우 달콤하다. 세상이 나에게 내던져주는 환경에 맞게 꿋꿋하게 잘 살아나간다. 하지만 좀 더 넓은 관점으로 zoom-out 을 해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삶의 변곡점이 찾아온다.
고등학교 때 미적분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변곡점이란, 어떤 함수에서 볼록성과 오목성이 바뀌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함수가 변곡점 이전에는 기울기가 점점 급해지는 추세였다면 변곡점이 지난 이후에는 경사가 점점 완만해지게 된다. 반대도 성립한다. 우리 인생에서도 한창 빠르게 성장하다가 변곡점을 지나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시기가 오거나, 반대로 평온하던 삶에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격변의 시기로 접어드는 순간이 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본 적이 있지 않은가?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것을 해야 할까?" 등등 다양하게 나 자신에게 또는 세상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이렇게 지금까지 해왔던 당연했던 것들에 균열을 일으킨다.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삶의 변곡점이 찾아온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충격적인 사건이 터져서 어쩔 수 없이 삶에 균열이 생긴 것일 수도 있고, 그냥 나도 모르게 생각의 전환점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
극한의 가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극한의 실패경험, 갑작스러운 사고,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순간, 누군가의 죽음 등등.. 이렇게 삶의 변곡점이 찾아올 때는 불안하고 머리가 복잡하면서 고통스러운 것이 당연하지만, 어쩌면 우리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면서 내면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는 매우 귀중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다시 설계해 보는 것이다. 미적분에서도 변곡점은 곡선이 오르막에서 내리막으로, 또는 내리막에서 오르막으로 반전될 수 있는 가능성의 지점이다.
우리는 누구나 겉으로 보기엔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의 내면에서는 수많은 변곡점들이 숨어있다. 이 변곡점들은 때로는 스스로 만들어내고, 때로는 예고 없이 찾아오며, 우리의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지나치게 속도를 높이거나, 반대로 지나친 안정감에 머무르는 대신에 삶의 변곡점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적절히 조율하여 균형 잡힌 삶의 리듬을 찾아야 한다. 결국 우리의 인생곡선은 나 스스로 선택하는 방향과 속도에 따라 가장 나다운 모양으로 그려질 것이고 나만의 그라데이션 색감이 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