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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Sep 03. 2022

사랑의 설렘과 권태에 대하여

영화 ‘우리는 사랑일까’를 보고

 재이가 잠들면 비로소 우리의 길지 않은 밤이 시작된다. 미처 못다 한 집안일을 끝내고 샤워를 하면 남는 시간은 고작 두어 시간, 자꾸 울며 깨는 재이를 재우다 시간을 몽땅 써버리는 어떤 날엔 아주 조금 울적해진다.


 밤이 이리도 짧은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다만, 무료했던 기억은 있다. 할 일 없이 침대에 누워 핸드폰이나 뒤적이던 그저 그런 밤들이 내게도 있었다. 허나, 짤막한 밤을 손에 쥔 나는 그런 한가함을 더는 누릴 수 없다. 한 입 크게 베어 먹으면 사라져 버릴까 혀 끝으로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아이의 기분으로, 나는 매일 주어지는 이 조그마한 시간의 뭉터기를 미세하게 아껴 먹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어떤 날엔 말 그대로 시간을 과소비하고 싶기도 하다. 찔끔찔끔 아껴 쓰는 것이 좀스럽다고 느껴져 한번 시원스레 털어 버리고 싶은 날, 그런 날엔 영화를 본다. 누군가에겐 그저 영화 한 편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영화란 저녁을 보내는 가장 호사스러운 방법이다. 해서, 영화를 고를 땐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뭇 진지해지기도 한다.

 

 한참을 고른 영화는 ‘우리도 사랑일까’이다. 2012년 개봉한 영화인데 그 유명한 이동진 평론가가 5점 만점을 주었다. 삶의 특별한 시기에 만나게 되는 영화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요즘 나는 사랑과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고, 가만히 불어 들어오는 바람, 베란다 창문에 붙은 나방, 거실 바닥에 눌어붙은 밥알에서도 사랑과 행복의 의미를 찾는 지경에 이르렀다. 만난 지 10년째인 유현이와 내게 사랑의 설렘과 권태를 동시에 말하는 이 영화는 어쩌면 아주 시기적절한 이야기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모든 장면에서 낭만과 로맨스를 지우며 줄기차게 ‘사랑은 없다’고 말한다. 결혼 5년 차인 ‘마고’와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루’는 사이좋은 부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그런 둘 사이에 ‘대니얼’이라는 매력적인 남자가 등장하게 되면서 마고의 마음엔 미세한 물결이 인다. 유혹이란 원래 그렇다. 슬그머니 나타나 일상에 스며든다. 그리고선 모든 것을 휘저어 놓는다. 한데 재미있는 건 대니얼의 등장 전 이미 그들은 위태로워 보였다는 점이다.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아무 일 없는 날들만 계속된 것이 문제다. 사랑에 있어 정녕 무서운 것은 모든 일에 시들해지는 권태가 아닐까. 둘 사이 설렘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그 빈 곳을 채우는 건 어딘가 애처로운 농담뿐이다. 이미 습관이 된, 매번 머리를 쥐어 짜내다 가끔 선을 넘어버리기도 하는 썰렁한 농담만이 둘 사이 영원 같은 무료함을 매운다. 물론, 그들도 노력한다. 서로에게 사랑한단 말을 아끼지 않는다. 틈날 때마다 사랑을 속삭이는 마고와 루만큼 사랑을 자주 표현하는 커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고 가는 말속에서 어쩐지 사랑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느껴지는 묘한 감정의 불협화음, 나는 그것이 단지 기분 탓 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어떤 말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태어나지만, 또 어떤 말들은 그렇게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탄생한다. 전자는 가슴속에서부터 차올라 입 밖으로 자연스레 새어 나오는 말인 반면, 후자는 소리 내어 뱉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말, 즉 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사랑해’는 ‘나는 너를 사랑해야만 해’라고 표현되는 기도나 다짐에 가까워 보인다. 나는 그들의 사랑 표현이 왠지 스스로에게 거는 쓸쓸한 자기 최면처럼 들렸다. 사랑과 멀어지지 않기 위해 사랑을 말할 수밖에 없는 이 아이러니를 마고는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단 걸 알면서도 다가오는 설렘을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갈 수밖에.


 기억나는 대사가 하나 있다. 나는 이 대사야말로 이 영화의 주제이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압축이라고 생각한다. 수영장을 다니는 마고가 샤워실에서 다른 여자들과 나누는 대화이다. 한 여자가 말한다.

- 결혼이 다 그렇지. 서러워. 가끔 새로운 것에 혹해. 새것들은 반짝이니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반대편의 나이 든 여자가 말한다.

- 새로운 것도 결국 헌 것이 되고 만다우

 

가끔 새로운 것에 혹해
새것들은 반짝이니까


 아무래도 영화 속에서 정의되는 사랑이란 모래사장 위에 적어 놓은 어느 연인의 이름과 비슷한 것 인가보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유혹과 권태의 파도에 언젠가는 쓸려 지워져 버리고 말 설렘. 그래서 설렘이 닳아 없어진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고, 그건 과학처럼 사실로 정해진 일이라 아무리 부정하려 애를 써도 안 되는 일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아무리 사랑해도 결국 익숙해지면 그만이고, 우리는 별 수 없이 계속 새로운 설렘을 찾아 떠나야 하는 그런 존재인 걸까. 그렇게 한시적으로 사랑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고, 능력과 매력이 떨어져 새로운 사랑을 찾지 못하면 현실에 만족한 채 익숙함에 서서히 말라죽어가야 하는 것일까.


 나는 안다. 사랑은 결국 변하고  것이라는 . 세상 모든 것은 변하고 사랑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변한다고 해서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다. 아니, 변해야 진짜 사랑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랑이라면 그렇다. 사랑은 만들어진 그대로 존재하다 닳고 낡아 버리는 공산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며 생동하는 생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이 그렇듯, 사랑 역시 태어나 생장한다. 다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사랑은 끝도 없는 우상향이라 한계 없이 무한하다는 점이다. 누구도  끝을   없는 우주처럼 자꾸만 커지고 넓어지며, 동시에 깊어지는 것이 있다면 사랑일 것이다. 그것이 어떤 느낌이냐 내게 묻는 다면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가끔 너를 사랑한다 생각했던 지난날의  마음도 이제와 떠올리면 얄팍하게 느껴진다고 말이다.

 

 결혼한 지 5년이 넘은 나는, 특별 이벤트란 아주 드물게 존재한다는 것을, 삶은 결국 일상의 연속이며 결혼이란 그 일상을 누구와 함께 할지를 선택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주 운 좋게도 변해가는 사랑의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는 행운도 누리게 되었다. 처음, 이상한 영어 스터디 모임에서 너와 눈을 맞추며 시작된 던 설렘은 어느덧, 나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마저 꺼내 보일 수 있다는 신뢰와 편안함으로 바뀌었다. 편안함은 머지않아 네가 없으면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벅차오름이 되었다. 여전히 우린 연인이었던 때처럼 싸우고 다투기도 한다. 가끔 자는 너를 바라보며 가슴 아려할 때도 있다. 나는 이런 안타깝고 애틋한 마음 역시 사랑의 어떤 발전된 단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설렘이란 그저 사랑의 입구에 서서 서성이는 것뿐이라는 것, 그러니 사랑의 다음 단계를 보기 위해선 가만히 앉아 권태로움에 말라가면 안 된 다는 것이다. 삶은 언제나 예상한 대로 아름답게만 흘러가지는 않아 너무 바쁘고 고된 날들이, 그러니까 맘 편히 영화 한 편 보기 어려운 날 들도 분명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우린 매일, 어쩌다 사랑의 바뀐 모습을 놓칠 뻔하겠지만, 내겐 너와 서로 눈을 맞추면 그다음 모습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다. 시든 꽃에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 주는 노력이 결혼의 일상에도 필요하다 믿는 이유다.


 영화에서 딱 한번, 진짜 사랑을 스치듯 보여준 적이 있다. 당연히 마고와 불륜 상대, 대니얼이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한다 말하는 때는 아니다. 그 말은 ‘나는 너에게 성적으로 끌린다’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둘이 섹스를 할 때도 아니다. 나는 마고와 루가 함께 가족 행사를 준비할 때, 천장에 등을 달며 서로 장난을 치며 일상의 한 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 사랑을 발견했다. 사랑한단 말은 없었어도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수없이 많은 ‘사랑해’란 표현이 등장하지만 내가 사랑을 느낀 건 오직 그때뿐이다. 시답잖은 농담에서 비롯된 웃음이 아니라 행복에 겨운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을 때, 서로 마주 보며 웃지 않고는 못 배길 때, 그 순간이야 말로 진실된 사랑의 발현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날들의 소중함을 마고와 루가 눈치챘다면, 분명 이야기의 결말이 영화의 결말과는 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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