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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Sep 12. 2023

우리 달 보러 가지 않을래

 그날밤 우리 함께 본 달은 유난히 크고 밝았다. 단지 기분 탓 만은 아니었던 것이, 그날의 달엔 무려 이름까지 붙어 있었다. 슈퍼 블루문. 한 달 중 두 번째 뜬 보름달이면서 가장 큰 달을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슈퍼문과 블루문이 동시에 뜨는 건 드문 현상이라, 오늘을 놓치면 14년 후인 2037년에야 이 크고 밝은 달을 다시 볼 수 있다 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쯤 아무래도 좋았다. 굳이 14년의 시간을 앞세우지 않더라도, 나는 그날의 달구경을 아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장애 있는 아이를 키우며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일이 하나 있다면. 정해진 일상의 틀에서 가능한 벗어나지 않는 것일 것이다.

 재이에 관해서라면 섣불리 시도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먹던 것을 먹이던 시간에 먹이고, 매일 하던 일을 하던 시간에 정확히 해내는 것, 그것이 어느새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되었다. 스스로 세운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재이에게 어떤 좋지 않은 변화가 생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기껏 안정시켜 놓은 아이의 생체리듬이 깨지면 애써 쌓아 놓은 일상도 무너졌다. 잠깐의 일탈이 불러온 대가는 언제나 예상을 한참이나 웃돌았고, 원치 않는 변화를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건 우리였다.

 장애와 함께 산다는 건 그런 일이다. 뾰족한 모서리 위에 둥근 행복을 세우는 일, 그 위에서 흔들흔들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일.


 저녁 아홉 시, 하루의 루틴을 마무리하는 시간, 침대에서 재이를 재우며 핸드폰을 뒤적이던 내게 그날따라 어떤 기사가 눈에 띄었다. 지난 2018년 이후 다시 슈퍼 블루문이 뜬다는 기사였다. 달이, 평소와는 다른 달이 뜨는구나. 괜스레 반가운 마음이 들어 방문 밖 주방에서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분주할 아내에게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유현아. 오늘 엄청 큰 보름달이 뜬대.

 그래? 재이도 달을 보면 좋은데.


 나라고 아쉬움이 없었을까. 일상의 사소함부터 특별함까지, 재이에겐 늘 해줄 수 있는 것보다 해줄 수 없는 것이 많았다. 불과 얼마 전엔 하늘에서 유성우가 쏟아지는 별똥별 쇼가 펼쳐진다고 했지만, 밤하늘을 수놓는 유성우의 황홀함을 나와 유현이는 물론이고 재이도 보지 못했다. 노을 지는 이른 저녁의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작 달 때문에 모험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재이는 아직도 아기라 어차피 봐도 잘 모를 테니까. 그렇게 스스로 위안 삼고 있던 그 순간, 방문을 살짝 열고 유현이가 걸어 들어왔다. 우리 같이 달구경 하자고, 다정한 말로 침대 위 선잠이 든 재이의 잠을 깨우며.


 그렇게 우리만의 소박한 달구경이 시작되었다. 어리둥절한 재이를 살포시 품에 안고 거실로 나와 창문을 열자, 달빛과 함께 제법 선선해진 늦여름의 바람이 밀려 들어와 방금 드라이를 마친 재이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안고 있던 재이를 유현이 품에 조심스레 건네주고, 건물 사이 동그랗게 얼굴을 내민, 은은한 빛을 내는 보름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유현이가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재이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재이야 저기 봐. 달이 떠있지? 저게 달이야. 엄청 큰 달이래. 한번 잘 봐봐. 에이. 자꾸 다른 데만 보지 말구.

이런 엄마의 애쓰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이의 눈은 애꿎은 엄마의 손가락 끝을 헤매었다.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재이한테 해주고 싶었다고, 그게 무엇이든 이것저것 해주고 싶었다고, 언젠가 저녁을 먹던 중 유현이는 내게 말했다. 최근 우리 주변엔 아기를 낳고 기르는 친구들이 부쩍 많아졌는데, 그들의 행복해 보이는 일상을 접하고 나면 가장 먼저 아기들의 귀여운 모습에 웃음부터 났지만, 한편으론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감정이 질투인지, 박탈감인지, 인생의 불공평함에서 오는 좌절 섞인 허탈함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스치듯 속닥인 그때 그 말에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쿵 하고 떨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나는 차마 이를 내색하지 못한 채 씁쓸하게 웃고만 말았다. 유현아 사실 나도 그랬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라면, 그런데 남들은 당연히 누리는 일상의 평범함도 전해줄 수 없다면, 그렇다면 그런 마음은 결국 사랑도 무엇도 아니게 되고 마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의 사랑은 남들이 누리는 보통의 사랑보다 작고 초라한 모습이 되고 마는 걸까. 수확되지 못하고 나무 위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다 결국 땅에 떨어져 썩어가는 열매처럼.

 아마 그렇진 않을 것 같다. 전해지는 것만으로 충분한 마음도 있으니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날 재이가 결국 달과 눈을 맞추었는지, 저 하늘에 뜬 동그랗고 노란 것이 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하지만 나는 함께 달구경을 했던 우리 셋의 기억이 어딘가에 깊게 새겨졌을 줄로 믿는다.


 그날밤 달은 정말이지 크고 밝았다. 달을 구경하는 내내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고, 그렇게 시간이 점점 천천히 흐르다 아예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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