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는 동료와의 점심식사
회사 동료가 퇴사한단다. 떠나기 전 함께한 점심 식사에서 나는 수고했단 말 대신 느닷없는 말을 건네었는데 그건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불현듯, 이전까진 한 번도 뚜렷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책임님 저는 전우란 말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4년 전 브랜드 리런칭을 준비하며, 우린 커뮤니케이션의 최전선에서 열과 성을 다해 뜨겁게 싸웠다. 누구와 싸운 건지, 싸운 이윤 무엇이었는지, 그래서 결국 이기긴 한 건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한없이 치열했던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화살이 빗발치는 성벽 위에 올라 나 홀로 적과 싸우고 있는 듯한 느낌에 막막할 때면, 고민거리를 가득 안은 채 그녀의 회의실로 쳐들어가곤 했다. 책임님 내 생각 좀 한 번 들어보세요. 못다 정리한 서류 뭉치와 먹다 남은 테이크아웃 커피 컵 여러 잔, 비타민 그리고 간식거리 같은 것들로 어질러진 그곳에서 한참 열변을 토한 뒤 방을 나서면, 신기하게도 더 이상 혼자라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마. 돈가스 두 덩이를 접시 위에 덜어주며 그녀는 내게 말했다. 그녀가 시킨 안심 돈가스는 다섯 덩이가 전부였다. 미국에서 오래 자란 그녀에게, 비슷한 뜻의 사자 성어를 하나 알려주었다. 화이부동. 네 그럼요 책임님. 중심, 지켜야죠. 저는 원래부터 어울리되 결코 동화되지는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속으로 말하며 돈가스를 한입 베어 먹었다.
배가 불러 거절하려 했지만 그러지 않은 건, 그 돈가스 두 덩이가 마지막 선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한 조각은 대충 먹어치우지 않고, 내가 아는 가장 맛있는 방법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소금을 찍고, 와사비를 조금 곁들여 오래도록 씹어 삼켰다. 이 순간을 제대로 꼭꼭 씹어 소화시켜야겠단 마음으로.
며칠 뒤, 그녀는 여느 퇴사하는 사람들처럼 메일을 남기지도, 사무실을 한 바퀴 돌며 인사를 나누지도 않고 사무실을 홀연 떠났다. 항상 어수선했던 책상이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이제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아무 일 없이 바쁘게 돌아갈 것이다. 마치 언제 그런 사람 있긴 했었냔 듯 무심하게. 그런 생각이 들자 잠깐 서운한 마음이 일었다.
다시, 전우란 말을 좋아한다. 회사란 전쟁터에서 만나는 전우란 술 먹고, 밥 먹고, 커피 한잔 마시며 사는 얘기나 나누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내가 이쪽을 맡을 테니 너는 그쪽을 맡아줘, 내 등 뒤는 네게 믿고 말길께. 그런 마음 들게 하는 사람. 치열하게 함께 일한 사람. 그런 전우를 만나 합을 맞추고, 성과까지 내는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저 운이 좋았단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 같다.
오늘은 그녀가 기획한 영상을 다시 돌려보아야겠다. 그냥저냥 뻔하지 않고 메시지가 뚜렷하여 좋아하는 영상이다. 고요한 도시, 비장한 표정을 한 사람이 드럼을 치며 등장한 뒤, 도시 여기저기서 북을 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이내 곧 사람의 물결이 만들어진다. 처음 영상이 공개되고 상기된 목소리로 내게 내용을 설명해 주던 책임님의 모습이 잠깐 머리에 스친다. 내 기준에 직장인은 뜨겁게 일하는 사람 그리고 차갑게 일하는 사람으로 나뉘는데, 그녀는 누구보다 뜨거운 온도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어쭙잖은 열정으로는 곁에서 버티지 못할 정도로.
생각해 보니 책임님이 내게 해준 수많은 칭찬의 말을, 제대로 돌려준 적 없었던 것 같다. 언젠가 다시 또 소식을 듣게 된다면 다른 말보다 먼저, 나를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어서 고마웠다고,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주 좋은 파트너였다고. 떠나간 전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