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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교사 정쌤 Mar 31. 2024

몸의 상처는 연고로, 마음의 상처는 독서로 치료한다

책모임 너머 책 쓰기 

내 고약한 습관 중에 하나는 발톱이나 손톱을 손으로 뜯는 것이다. 어느 날은 발톱을, 어느 날은 손톱을, 또 어느 날은 발뒤꿈치 굳은살을 뜯어낸다. 내 책상에 앉아 책을 읽다가도 발톱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손으로 톡톡 건드리면서 뜯어버린다. 그러다 아차 하는 순간 피를 본다. 모든 게 멈추는 순간이다. 내가 ‘왜 그랬지’ 하는 후회와 함께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 ‘다음에는 손톱깎이로 하자’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그리고 연고를 바르고 그 발톱이 괜찮아질 때까지 손을 잘 단속한다. 연고를 바르고 시간이 지나면 발톱 아래 살들은 다시 차오른다. 아주 통통하게 잘 채워줘서 아무 일도 없어 보인다.      


이렇게 우리 몸의 겉에 난 상처는 연고를 바르고 시간을 두면 아물어서 더 이상 아프지 않다. 그런데 마음에 난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나에게 독서는 마음에 난 상처를 닦아주고 소독하여 연고를 발라주는 행위와 같았다. 2022년 몸도 마음도 아파서 병휴직을 하고 집에 있으면서 날마다 무너져 내렸을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암진단을 받고 마음이 힘들 때, 나를 일으켜 치료받게 하고 건강하게 다시 잘 살아갈 마음을 갖게 한 것은 독서였다. 독서는 마음이 아픈 나에게 실패해도 괜찮다고,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나’라고 말을 걸어주고 나 스스로를 돌보게 하였다. 그렇게 무기력하고 회피하고 싶었던 시간 속의 내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이라는 용기를 내게 해 주었다.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준 책들     


지나영 교수의 [마음이 흐르는 대로]를 읽으며 삶의 시련을 만났을 때 "난 이 레몬들로 레모네이드를 만들 테니까" 문장을 보고 삶의 의지를 다졌다. 삶의 시련이 나에게 레몬이라면 '나도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마시고야 말겠어' 하는 다짐이었다. 문득문득 내 안에서 올라오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숨이 막혀 올 때는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을 읽었다. 내 걱정들이 큰 고목나무를 쓰러뜨리는 딱정벌레가 되어 나를 쓰러뜨리지 않도록 불안과 두려움을 스스로 키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암에 걸린 채 자신이 죽는 그날까지 우리들을 위해 이야기를 남겨주신 이어령 교수님의 말씀을 잘 담아낸 김지수 작가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아픈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치료제였다. 나는 ‘길 잃은 양’이었고 새벽녘의 예민한 새였고 무문석이 아닌 화문석을 짜고 싶은 사람이었고 삶의 매 순간 깨어있고 싶은 사람이었다.      


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된 판사 김동현 작가의 [뭐든 해봐요]를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찾아보았다. 시각장애인이 되어서도 희망을 찾은 작가의 모습을 본받아서 나도 무엇이든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지는 쉽게 꺾이고 또다시 헤매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 개리 비숍의 [시작의 기술]을 읽었다. ‘나는 의지가 있다’는 그 한 마디에 나는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잘 살고 싶은 의지가 있다. 나는 따뜻한 엄마가 될 의지가 있다. 나는 좋은 교사가 될 의지가 있다.’ 등 다양한 문장이 내 안에서 만들어졌다. 책에 나온 7가지 말은 여전히 힘들고 지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다이어리에 적는다.    

  

고명환 작가의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왜 이토록 교사로 사는 삶에 집착하고 있는지, 어떤 교사가 되고 싶어서 이렇게 고민하는지 수없이 많이 질문했다. 나는 교사로서 학생들과 교실에서 교감하고 싶고 학생들을 사랑하고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교사이고 싶다. 여전히 나는 가르치고 배우는 교사의 삶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고명환은 말했다. 수컷 나방이 암컷나방을 찾아 날아갈 때 안 벌어질 것 같은 일도 벌어진다고. 다시 데미안을 읽으며 내가 나아갈 곳을 생각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으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여기에 있는데 내가 지금 그런 것이 아닌지를 많이 생각했다. ‘마크툽(그렇게 될 일이다)’은 나의 병 휴직과 나의 암 진단을 모두 받아들이게 했다. 그냥 벌어졌고 벌어질 일이었던 것이다. 마크툽. 그리고 나는 잘 해결해 나갈 것이기에 그 받아들임이 많이 아프지 않았다.      


많은 선생님들의 명예퇴직과 의원면직 소식을 간간이 들었을 때, 나도 빨리 교직을 떠나야 하나 하는 생각을 들 때, [청소일 하는데요]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가 엄마와 함께 건물 화장실 청소를 하며 밤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다. 내 마음이 준비가 된다면 무슨 일이든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힘을 얻었다.      


복직해서 체육 전담을 하며 4, 5, 6학년을 가르칠 때 과연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한 블로그 이웃님의 추천으로 최인아 작가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를 다시 읽게 되었다. 이미 읽은 책이었지만 내 고민과 책의 주제가 맞닿으니 이 책은 그전에 읽은 책이 아니었다. 책이란 참 신기하다. 필요할 때 그에 맞는 책을 읽으면 내가 가진 문제들이 해결책을 얻게 되고 그 순간 전율이 온다. 최인아 작가의 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나의 일하는 태도를 돌이켜 보았다.   

   

지금 나의 고민은 ‘잘 가르치고 싶다’이다. 나의 애씀이 나의 시선과 손길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온전히 닿아서 잘 가르치고 싶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학교가 전부인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싶다는 것을 알았고, 교실 내의 무질서에 타협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은 조금 더 잘하고 싶다.      


이 외에도 내 내면을 단단하게 해 준 책들은 무수히 많다. 특히 나의 인생 책 박웅현 작가의 [여덟 단어]는 내 삶의 교과서이다. 나는 힘들 때마다,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모를 때마다 [여덟 단어]를 펼친다.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나서도 병실 침대에서 펼쳐 읽은 나의 인생 책이다.      


독서는 마음의 상처 치료제     


살아가다 보면 몸과 마음의 상처는 수두룩하게 생긴다. 상처가 커서 수술을 해야 할 경우도 있고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치료할 것인가. 방치할 것인가. 나는 내 삶을 잘 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내 마음의 상처를 더 적극적으로 치유하기 위해 정신의학과도 다녔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독서를 하고 산책을 했다. 독서는 무너진 내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바닥에 떨어져 버린 내 자존감과 효능감을 조금씩 채워주었다. 마음에 살이 오르고 속이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한 번에 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내 마음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책을 읽고 또 읽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많이 걷는 동안 서서히 나아졌다.      


아주 깊은 우울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우울과 불안으로 아파봤고 아주 위험한 암은 아니지만 갑상선암 반절제 수술을 하고 암환자로 5년간 추적 진료를 받고 있다. 다행히도 반절제라 갑상선 호르몬약이 아닌 비타민 D와 유산균을 먹고 있다. 이렇게 글로 몇 줄 쓰니 참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일이 일어난 사건들 사이에는 이리저리 흔들렸던 내가 있다. 다행히 이 여정에서 내가 겪은 다양한 일들은 내 삶에 참 좋은 양분이 되었다. 시련이었고 상처를 받았지만 나는 그것을 극복했고 그 덕분에 더 큰 문제의 산을 해결할 능력이 생겼다. 두려웠던 대상이 이제 두렵지 않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 모든 과정에서 내가 멈추지 않고 했던 것은 독서였다. 느리게 또는 빠르게, 한 번만 또는 반복해서, 한 권씩 또는 여러 권씩,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또는 서점에서 사서, 정말 다양하게 읽었다. 2022년에 병휴직을 하지 않았으면, 암에 걸리지 않았으면 이렇게 몰입적인 독서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픔이 없었으면 닿지 않았을 그 세계에 도착하고 거기에서 내가 했던 독서는 가장 좋은 마음의 상처 치료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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