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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인데, 매일 마음이 꺾이면

by 쓰는교사 정쌤

몇 년 전, 2학기 복직을 하면서 4, 5, 6학년 체육 전담을 했다. 첫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어떻게 한 학기 수업을 할지 안내하며 '그릿'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앤젤라 더크워스의 『그릿』의 내용 중 그의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일화를 설명했다.


앤젤라 더크워스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천재가 아니라는 말을 계속 들으면서 자랐다. 그런 그녀가 천재들에게 주어지는 맥아더상을 받게 되었다. '성공은 타고난 재능보다 열정과 끈기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서 받은 상이었다. 그 상을 받은 그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아버지께 자신은 가장 똑똑한 사람은 못 되어도 가장 집념이 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릿에서 중요한 것은 매일 스스로 도전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정신으로 꾸준히 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천재들의 상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항상 강조한 것은 지금은 안 되더라도 조금 더 해보는 도전 정신이었다. 못해도 괜찮으니 계속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잘했을 때는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해 주기도 했다.

6학년 학생들과 체육수업을 하며 한 학기 동안 배운 것들을 정리하는 수업을 하던 날이었다. 체육교과의 안전 영역과 함께 마무리하며 유퀴즈에 나왔던 안세영 선수의 인터뷰를 요약해서 보여주었다.


안세영 선수는 15살에 국가대표 선수가 되면서 첫 국가대표로 나간 대회에서 천위페이 선수를 상대로 예선 탈락하고 왔다. 스스로 '국가대표가 이래도 되나'라는 마음이 들어서 그때부터 3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준비하고 나간 대회에서도 천위페이 선수에게 계속 패배하면서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상대방과의 시합에서 매번 패배하는 쓰라린 결과를 마주하면서 안세영 선수는 쓰러진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마음을 잡고 운동했다. 남들이 하는 운동은 기본이고, 더 혹독한 방법으로 모래사장에서 맨발로 배드민턴공을 받아내는 연습을 계속했다. 중학생 시절 앳된 얼굴의 안세영 선수는 모래사장 위를 바쁘게 뛰어다니는 선수였다. 그 덕분에 안세영 선수는 코트 여기저기를 누비는 빠른 발을 가진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다.

학생들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면서 안세영 선수의 칠전팔기 정신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체육수업이 끝나고도 계속 마음에 새길 말로 '그릿'과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를 전해주었다.

그때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인데 매일 마음이 꺾이면 어떡해요?”

당시 방송반이었던 이 아이는 장난기가 많지만, 방송 멘트를 쓸 때는 대단히 감성적으로 글을 썼다. 이 질문을 받고 이 아이가 더욱 새롭게 보였다. '매일 마음이 꺾이는 것을 아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이야기를 해 줄까를 고민하고 말했다.

“당연히 날마다 마음이 꺾일 수 있지. 선생님도 그래. 힘들면 하던 것들을 하기 힘들어서 못하는 날도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새날이 시작되면 어제 마음을 지우고 새롭게 하려고 하지. 너희들과 수업하면서 너희들이 힘들게 한 날은 선생님도 힘들어. 그래도 다음 수업을 할 때는 또 새롭게 너희들 이쁜 모습을 바라보고 하려고 노력하지. 그러니까 우리 00이가 선생님 힘들게 하는데도 이렇게 또 이뻐하잖아. 선생님의 노력이 느껴지지, 00아?”

“네.”


사실 그 반은 3개 학년 체육수업 중 제일 힘든 반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에서 제일 큰 수확을 얻은 느낌이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준비한 내용을 잘 들으려고 애썼고 그 마음이 전해졌을 때 자신의 속 이야기를 꺼냈다. 나를 항상 시험에 들게 했던 00이 마저 자신을 수업마다 새로운 도화지에서 이쁘게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교사의 노력을 알고 있다니 무척 고마웠다. 이 수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온전히 알지 못한 채 체육수업에 대한 고민이 쓸모없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안전 영역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스포츠 정신에 대해 수업을 한 것이 참 괜찮았다는 생각을 한다. 체육수업이 단순히 몸을 쓰며 운동을 하는 수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에 딱 좋은 수업이었다. 체육수업은 몸을 많이 쓰는 수업이지만 몸을 쓰면서 안 되는 것도 열 번, 스무 번 도전해서 조금씩 되게 하는 것을 통해 끈기와 도전 정신을 배운다. 그릿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교과이다.


혼자 하면 더 잘할 수 있지만 친구들과 팀을 이루어서 우리들의 협력을 조화롭게 이끌어 내는 것을 배운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협동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데 체육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함께 흘리는 땀의 가치도 배우게 된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운동도 준비운동을 잘하고 주의하여 운동하지 않으면 다치게 되어 한동안 체육수업을 벤치에서 들어야 하는 것, 이를 통해 자신의 몸을 아껴 쓰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학생들이 직접 몸으로 익히면서 배우기에 더 많이 기억에 남고 온몸에 경험으로 새겨지리라 생각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우연히 마주한 질문 하나가 나의 수업을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어주는 때가 있다. 그 학생의 질문은 '그릿'에서 더 나아가 '중꺾마'를 가르치기에 너무나 알맞은 것이었다. 그저 교사의 말로 전하는 '그릿'의 이로움이 아닌 학생의 삶에서 질문으로 시작된 '중꺾마' 덕분에 나와 학생들은 넘어져도, 실패해도 중간에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도전하는 정신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조금씩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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