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선명하게 머리에 떠오릅니다. 올해 7월 일본 교토. 푹푹 찌는 여름날에 에어컨을 틀어 안락한 단체 버스를 타고 고베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도쿄의 무더위는 살벌했지만 날씨가 좋을수록 버스 안에서 보는 창밖의 풍경은 참 선명하고 예쁘더군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멀리서 눈에 담기만 하는 더운 날의 창밖 풍경은 희극이었습니다.
일본 출장 3박 4일의 3일째 되는 날이니 슬슬 집에 돌아가고 싶을 때가 됐는데 웬걸, 문득 이렇게도 계속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참 놀라운 일입니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제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머릿속에서 고개를 든 건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갔을 때의 기억. 당시 저는 단체 활동을 싫어했기에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편안하게 최애 예능이나 보고 싶었는데요. 제주도에 예상치 못한 태풍이 불면서 2박 3일이던 수학여행이 하루 늘어나버렸습니다. 곧 집에 가서 쉴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저는 그만 절망에 빠졌죠. 십 대의 저는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집에 가서 혼자 쉬고 싶어!"
이렇게나 나 홀로, 단독, 따로를 좋아하던 제가 삼십 대가 되어 서른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과 3박 4일 움직이는데도 계속 이렇게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다니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단체 생활이 6개월, 7개월 이상 이어져도 답답해지지 않을 것 같다니, 내향인인 제가 바뀌기라도 했을까요?
이윽고 제 생각이 바뀐 이유를 알았습니다. 나이가 드니 단체 생활에서 벗어나도 그다지 재미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았어요. 수학여행을 갔던 십 대의 저는 혼자 챙겨 보던 최애 예능이 저를 가장 즐겁게 해주는 자극이었는데, 이제는 단체 생활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해도 그다지 재미가 없고 큰 재미를 느낄 기력도 휘발되듯 사라졌습니다. 지금 행선지가 고베인 이 버스 안에서 고베가 어떨지 궁금하다며 들뜬 사람도 있겠지만 날씨가 더운데 어디든 똑같이 힘들다며 시큰둥한 사람도 있겠죠. 저는 인생이라는 버스에서 후자를 생각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어딜 가서 무얼 경험해 봤자 고만고만하겠다는 생각. 어찌 보면 '인생은 노잼이 디폴트값이다'를 깨달은 재미없는 어른이 된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재미를 향한 기대가 낮아진 덕분에 옛날보다 단체 생활에 섞여 있어도 탈출 본능을 적게 느끼겠다는 기대는 높아졌습니다.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놀라지 마시길. 높아진 저의 기대는 그때부터 2주가 채 지나기 전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일본 출장을 다녀오고 며칠 후 곱슬머리 그(남자친구, ESTP)와 사람이 많은 모임을 2박 3일 다녀왔는데, 2일이 지나자 사교성이 소진된 저는 완전히 혼이 나가버렸습니다. 삐익- 소리를 내며 목이 제멋대로 돌아가고 연기를 내뿜는 로봇처럼 저는 웃는 표정만 얼굴에 걸어놓고 말도, 행동도 없어진 허수아비가 되어버렸습니다. 왜 이러는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한 결과, 일본 출장은 목적이 있었고 그 후에 간 모임은 목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목적이 없는 다수와의 만남에는 언제나 의문을 품습니다. 인간관계를 계산적으로 본다고 생각할까 봐 누구에게 말하지 못했지만요. 제가 무더운 여름날에 출장으로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간사이국제공항에서 열 명 이상의 일본인을 만나고 추가로 스무 명 가까이 되는 한국인을 만나고 나서도 활기차게 지냈던 이유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통역이라는 제가 쓰임새가 있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번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다르게 뚜렷한 목적 없이 만난 여러 명과 수다를 떨고 그들의 대화에 반응하고 돈을 써서 비싼 음식을 먹는 행위에 어떠한 재미와 의미가 있는지 저는 도통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목적이 없고 역할이 적은 곳에서 허수아비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개뿔, 이때 저는 일기장에 "인원이 많으면 힘들어... 혼자 있고 싶어... 끊었던 담배를 100개비는 피우고 싶어"라고 써놓았더군요.
오은영 박사는 인생에서 부모, 자식 포함해 평생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야 할 사람이 3~4명이면 많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동의하지만 힘든 모임을 겪고 나니 조금 더 단단한 인간관계 면역력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최승자, <올여름의 인생공부>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사람이 된다.
-책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에 등장한 속담
썩지 않으려면 저에게 익숙지 않은 방향으로 무던히 노력할 때도 있어야겠다 싶었습니다. 제 손에서 놓아버리면 아무것도 아니게 될 사람과의 만남도 경험하여 인간관계 면역력을 키워봐야겠더군요. 면역력을 키우지 못하더라도 다른 환경에 떨어지면 글감 하나는 나오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결심을 내린 후 제 취미인 독서를 살려 독서 모임 한 곳과 초등학교 친구가 참여한 여자 모임에 가입했습니다.
여기서 조금 우스운 점 하나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위에서 혼자 있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쩌렁쩌렁 외쳤지만, 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기대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소중한 사람과 있을 때 비로소 존재함을 느끼고 일할 때,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등 여러 사소한 순간에 세상이 열 배는 밝아 보입니다. 마음이 화창해지는 느낌을 아시나요? 어릴 적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꼬리 흔드는 강아지처럼 드러냈더니 몇 번 이용당하고 미움을 받는 바람에 결국 마음에 높은 성을 쌓고 강아지가 아닌 차분한 가면을 쓰게 됐지만요.
이제는 기대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일이 아닌 평범한 만남에서는 순수한 사랑과 진정한 우정을 상상합니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가 "나는 사랑을 찾고 있는 사람이에요. 진정한 사랑을요"라고 말하듯 기대하기 싫은데 진정한 친구를 만나지 않을까 설레며 기대해버립니다. 그리고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뒤돌아서 혼자 눈물을 뚝 흘립니다. 저의 짧은 인생을 돌아봤을 때 진실한 사귐과 친구는 쉽게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우는지, 제가 울면서도 이해가 안 된다니까요?
첫 만남부터 진정한 우정을 찾으려는 행동에 확실히 선을 긋기로 다짐했습니다. 너무 많은 기대는 접고, 오는 사람은 오고 가는 사람은 간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고, 설익은 인간관계에 안절부절못하지 않겠습니다. 저만 놓으면 끝날 인연에게 미움받기 싫어 차분한 사람을 연기했던 저를 벗어던지고 제가 지닌 모습과 매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미움받을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과 만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 인간관계 면역력을 기르려다가 마음이 씁쓸해질 때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괜찮아요. 위에서 말한 오은영 박사의 말처럼제 곁에는 언제나 저를 사랑하는 세 명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