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은 숫자로 일하고, 사회는 통계를 통해 정책을 판단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몇 명인가’부터 묻는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 숫자에조차 포함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공식 문서에 이름이 없고, 조사 대상에서 누락되며, 정부 보고서의 수치 아래, 각주로나 존재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불법체류 외국인, 단기체류 이탈자, 가정폭력 피해로 거주지를 떠난 여성, 비공식 시설에 머무는 장애인, 그리고 무연고 고령자 등이다.
이들은 모두 어떤 제도의 틀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복지 체계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단지 지원을 연결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먼저, 존재를 인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존재가 드러나지 않으면, 정책은 만들어지지 않고, 예산은 배정되지 않으며, 행정은 책임지지 않는다.
얼마 전 내가 상담한 한 60대 여성은 과거 DV 피해로 집을 나온 후 수 년째 친지의 지인 집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녀는 주민등록상 거주지는 여전히 옛 주소에 남아 있었고, 실제 거주지에선 아무런 권리나 서비스도 누릴 수 없었다.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고, 정신적 안정도 취약했지만 제도상으로는 ‘정상적인 거주자’로 분류되어 있었다. 이런 경우, 사회복지사는 ‘문제 없음’이라는 판정을 거스르며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 즉, 없는 문제를 일부러 찾아내는 일이 된다.
이는 단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다. 서류, 증빙, 관계기관 협조, 생활 실태 보고 등
끊임없는 설명과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주 맞닥뜨리는 장벽은 행정의 ‘평균값’ 기준이다. 예를 들어, "전체 외국인 고령자의 요양보험 신청률은 ○○%로 안정적이다", "노숙인 수는 감소 추세에 있다"는 식의 문장은 단순한 통계의 사실이지만, 구조적 소외를 가리는 기능도 함께 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는 사회는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불편하더라도 드러내고 조정하는 노력이 복지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일각에서는 ‘모든 사람을 다 책임질 수는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 역시 틀린 말은 아니다. 복지는 자원과 재정, 법과 제도의 범위 내에서 운용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사람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면 그 사회는 점점 더 약한 사람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래서 때때로 숫자가 아니라 사연을 말하려 한다. 몇 명이 아니라, 그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사회복지사는 통계를 외면해서는 안 되지만, 통계로 가려진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사례가 몇 건이나 되나요?”
나는 그 질문에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 존재합니다”라고 답한다. 그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공공복지의 책임 있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정책은 ‘다수’를 위한 것이지만, 복지는 ‘예외’를 위한 것이다. 예외를 무시하는 사회는 결국 스스로의 안전망을 무너뜨리는 셈이다.
우리는 이름이 없고, 주소가 없고, 기록조차 없는 사람들과도 마주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을 위해 제도를 바꾸지 않더라도, 그들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그 사회야말로 복지를 말할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