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이름 없는 존재들의 존엄

6-1. 주소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내일은 올까

by Eunhye Grace Lee

“주소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행정상으론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 명백함 속에 숨어 있는 단호함이 때론 누군가를 사회로부터 내쫓는 선언처럼 들릴 때가 있다.


일본의 복지제도는 주소지 기준으로 관리되고 시행된다. 주민등록이 없으면 건강보험도, 복지수당도, 공적 서비스 접근도 어려워진다.

하지만 주소를 잃은 사람들—노숙인, 외국인 불법체류자, DV 피해자, 가족 단절자 등—은 그 기준선에 닿지 못한 채 제도 밖을 떠돈다.


오사카 근교 역 인근에서 임시 숙소에서 생활하던 한 50대 남성 B씨의 사례가 떠오른다. 그는 과거 기술실습생 자격으로 입국했다가 불법체류 상태로 남게 된 뒤, 여러 해를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살아왔다. 건강 상태가 악화된 그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갈 곳’도 ‘도움 청할 곳’도 없었다. 지역주민의 신고로 구청을 통해 임시 보호가 이뤄졌고, 나는 포괄지원센터의 일원으로 상담에 참여하게 되었다.


문제는 명확했다. 그는 국적상 외국인이고, 주소도 없으며, 요양보험, 국민건강보험, 연금 등 공적 제도 어디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제도상으로는 “지원 불가”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복지사는 단순한 행정대행자가 아니라 현실적 조정자이자 법적 회색지대의 탐색자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자치단체, NPO, 의료기관과 연계해 임시 숙소와 긴급 진료, 기본적인 생활물품을 확보했고, 법률상 지원 가능성도 검토했다.


하지만 절차는 항상 어렵다. B씨는 구두로 도움을 원한다고 했지만, 자신의 신분 노출에 대한 불안감도 컸다. 법무성과 출입국 관련 부처는 일단 상황을 인지하되, 강제 조치는 최대한 유보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이런 식의 ‘불안정한 동행’은 제도적 불확실성과 인간적 신뢰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율을 요구한다. 공무원은 원칙을 말하고, 현장은 예외를 설득해야 하며, 중간에 선 사회복지사는 그 둘 사이를 계속 뛰어다닌다.


B씨는 말한다.

“여기서 오래 살았는데도 나는 여전히 여기에 속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 말은, 단지 주소의 유무가 아니라 존재의 위치를 묻는 말처럼 들렸다.


주소 없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제외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의 경계에 서서 그 경계가 얼마나 좁고 단단한지를 보여주는 존재다. 그들은 우리의 제도가 얼마나 행정 중심적인지를, 복지 서비스가 얼마나 ‘정상성’을 기준으로 작동하는지를 드러내는 거울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불법체류자까지 우리가 책임져야 하나요?”
그 말은 틀리지 않다. 복지에는 우선순위가 있고,국민이라는 공동체의 범위에는 제한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그 사람이 제도의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그 생존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는 일이다. 법의 적용은 국가가 판단하지만, 그 사이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손을 붙잡는 일은 현장의 몫이다.


B씨는 결국, 자진 귀국을 선택했다. 출입국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귀국 항공편과 의료 정보, 간단한 수속 서류를 준비하는 데 우리는 3주 가까이 걸렸다. 그가 공항으로 떠나는 날, 나는 이렇게 인사했다.

“건강하시고, 어디서든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그 인사는 아무 제도에도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가 존재했던 증거였다.


존엄은 선택이 아니다. 그가 어디에 있든, 어떤 상태에 있든, 그 사람의 삶이 ‘다뤄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사회적 태도의 표현이다.


주소가 없는 사람에게도 내일은 온다. 우리가 그것을 외면하지 않을 때, 복지는 비로소 기능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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