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라는 말은 넓고 추상적이다. 그러나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구체적이다. 그들의 주소, 국적, 연령, 병력, 소득, 체류자격, 언어 능력, 심지어 일본어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지의 여부까지 모든 것이 수치와 조건으로 구성된다.
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나는, 매일 사람을 조건으로 분류하고, 분류된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제도를 찾아야 한다. 그 제도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때로는 사람을 배제하기 위해 작동하기도 한다.
어느 날, 80대 일본인 여성과 70대 베트남계 남성이 부부로 등록된 가정을 방문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살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일본어가 서툰 외국인’으로 분류되었고 개호보험(介護保険) 신청 과정에서도 부인의 진술을 통해 사정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부부를 상담하면서 문득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복지란, 이 사람을 어디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가?’
제도는 이들을 ‘지원 대상자’로 인정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지원 제외자’로 간주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제도 너머에서 사회복지사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이다.
지역포괄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우리는 제도와 사람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간극은 늘 존재한다. 특히 외국인 주민과 관련된 복지 사안은 단순히 언어 문제를 넘어 문화적 거리, 행정 절차, 법적 자격의 문제까지 포괄한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 한계를 체감한다. 언어지원 통역이 부족한 지역, 복지 수급 자격이 불확실한 사람, 긴급한 상황인데도 조치가 지연되는 구조적 병목.
그 앞에서 나는 반복적으로 고민한다. ‘여기서 더는 못 간다’는 선언이 때때로 사람을 포기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복지는 ‘가능한 것’만을 다루는 실천이 아니다. 오히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조율하고, 한 발 더 나아갈 여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감정이 아니라 이해, 설득, 협의, 조정, 제안, 근거 자료의 확보 등 매우 현실적인 요소들의 축적 위에 세워진다.
나는 복지의 본질이 ‘전달’이 아니라 ‘도달’이라고 생각한다.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을 때까지 동행하는 것. 그것이 가능한 한계를 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지가 아니라 단순한 안내에 불과하다.
물론 사회복지사는 만능이 아니다. 모든 사람을, 어디까지나 데려다 줄 수는 없다. 법의 경계, 제도의 한계, 행정의 현실은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는 언제나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그러나 무관심에도 빠지지 않기 위해. 한 발 더 다가가는 것, 그러나 두 발 다 담그지 않는 것. 이 절묘한 거리감이야말로 현장에서의 지속가능한 실천을 가능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다시 떠올린다.
‘우리가 옮길 수 없는 사람에게도 복지는 유효한가?’
나는 그 답을 ‘복지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보다 ‘복지가 도달하려 했느냐’로 바꿔 묻고 싶다.
복지는 완성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어느 방향으로 향할 것인가를 함께 결정하는 공공의 동행이다. 그 끝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길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