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복지 현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설명할 언어를 잃는 광경을 보는 것이다. 특히 행정 절차와 복잡한 서류가 지배하는 이 나라에서는, 언어가 곧 권리의 문이다. 말을 할 수 없거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필요한 권리조차 스스로 주장할 수 없다.
나는 외국인 여성 보호 상담을 맡던 어느 날, 그런 장면을 마주했다. 그녀는 베트남 출신의 20대 여성으로, 일본인 남성과 결혼하여 입국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정폭력, 남편의 실종, 경제적 고립. 체류 자격은 불안정했고, 양육해야 할 갓난아기가 있었다.
그녀는 상담실에 들어서면서부터 초조해 보였다. 작은 손가방을 꼭 움켜쥔 채,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담당 공무원은 정중했지만, 빠른 일본어로 필요한 서류와 절차를 설명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해했다는 확신은 없었다.
"체류 자격 변경 신청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현재 수입은 있습니까?"
"양육 지원을 신청할 의사가 있습니까?"
서류는 일본어로 빼곡했다. 전문 용어가 가득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작게 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통역을 하면서 그녀의 표정과 손끝을 살폈다.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상황을 감당할 수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듯했다. 상담은 점점 형식적인 절차가 되어갔다. 그녀의 감정은 통역되지 않았다. 일본어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그녀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결국 상담이 끝나고, 대기실로 옮겨졌을 때였다. 그녀는 갑자기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국어로, 흐느끼듯 말했다.
"Mẹ ơi..."
'엄마'를 부르는 소리였다. 그 순간, 말은 필요 없었다. 나는 베트남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모국어로 터져 나온 그 한마디에,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외로움, 무력감, 그리고 절박함이 모두 담겨 있었다.
외국인 이주자들을 위한 '다문화공생' 정책을 한국보다 앞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는 언어를 통해 개인을 규정하고 분류한다. 체류 자격 서류, 주민등록 절차, 의료보험 신청, 보육지원 서류... 모두가 언어를 전제로 움직인다. 그러나 인간은 언어 이전에 존재한다. 울음은 문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는 서류심사를 통과하지 않아도, 살아 있는 인간의 증거다.
나는 그녀 옆에 조용히 앉았다. 위로의 말을 꺼낼 필요가 없었다.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 그 울음을 함께 견디는 것. 때로 복지는 그런 순간에서 시작된다.
모국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새겨진 언어, 가장 본능적인 감정의 통로다. 일본어가 서툴더라도, 모국어로 울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방인을 인간으로 존중하는 첫 걸음이다.
그녀는 울다가, 조용히 아기를 안았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 작은 존재에게, 이 세상은 아직 따뜻할까.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이 아이만은, 언어 때문에 존재를 의심받는 일이 없기를.
며칠 뒤,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시청에서 체류 자격 지원 서류를 준비하는 날이었다. 여전히 긴장한 얼굴이었지만, 그녀는 일본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금은... 이해했어요."
그 말에 나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 서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세상과 연결되려는 그 의지가, 어떤 공식 문서보다 강하게 다가왔다.
일본 복지 현장에서 일하면서 나는 자주 생각한다. 복지란 단순한 지원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여기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일이다. 언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당신은 존재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인정해주는 것.
그녀가 모국어로 울었던 순간을 나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모국어는 국경을 넘어선다. 울음은 문화와 제도의 벽을 무너뜨린다. 살아 있다는 것은, 비록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어도, 존재의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누군가가 이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울 때, 그 울음을 함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것이 복지의 시작이고,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