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회는 정중하다. 공공기관의 직원들은 늘 친절한 미소를 띠고, 대화는 조용하고 공손한 어투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 정중함은 때로 이방인에게 높은 장벽이 된다. 정해진 규범과 매뉴얼을 철저히 따르는 일본 사회에서, 언어에 능숙하지 못한 외국인은 자연스럽게 소외된다. 친절하지만 차가운 거리. 그것이 일본에서 이방인이 마주하는 복지 현장의 풍경이다.
나는 시청 복지과에 통역 지원을 나갔다. 그날 상담 대상은 네팔 출신의 젊은 남성이었다. 일본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영어도 서툴렀다. 담당 직원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말했다.
"통역사분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저희끼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거든요."
상담은 쉽지 않았다. 체류 자격 문제, 생활 보호 신청, 의료 지원 여부... 복잡한 행정 용어들은 번역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남성은 긴장한 듯 몸을 웅크리고 손을 모으고 있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할까봐, 틀린 대답을 할까봐, 불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가능한 한 간단한 단어를 골라서 물었다.
"일하고 싶어요?"
그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르바이트... 조금 했어요."
짧은 일본어 속에, 살아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복잡한 문서나 긴 대화보다, 짧고 다정한 질문 하나가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된다는 것을. 정교한 번역보다, "괜찮아요"라는 작은 눈짓 하나가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언어는 중요하다. 하지만 언어 이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본능적인 신호가 있다. 미소, 눈빛, 고개 끄덕임, 조심스러운 손짓. 말로 다 하지 않아도, 인간은 서로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이런 비언어적 다정함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상담을 마치고 서류 작업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그와 작은 농담을 나눴다. 그가 일본 생활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물었더니, 그는 웃으며 말했다.
"벚꽃... 너무 예뻐요."
그 짧은 대답에, 나는 괜히 울컥했다. 이 낯선 나라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마음은 같다는 것. 국적도 언어도 다르지만, 봄을 좋아하는 감정만큼은 닮아 있다는 것.
일본의 복지 시스템은 효율적이지만, 감정에는 서툴다.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상담 속에서는, 한 사람의 두려움이나 기대, 소망 같은 것들이 쉽게 지워진다. 그러나 복지란, 단순한 지원을 넘어 인간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언어 이전의 다정함, 그 침묵 속의 이해야말로 복지의 시작이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통역이란 단순히 단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마음을 놓치지 않는 일, 침묵 속의 신호를 읽어내는 일이다. 상대방이 말을 찾지 못해 주춤할 때, 기다려주는 일. 완벽하지 않은 일본어라도 끝까지 들어주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괜찮다’는 메시지를 눈빛과 몸짓으로 전달하는 일. 당신이 여기 있어도 괜찮고, 당신의 말이 서툴러도 괜찮고, 당신이 지금 떨고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느끼게 해주는 일.
시청 복도에서 작별 인사를 나눌 때, 그는 내게 두 손을 모아 깊숙이 인사했다. 서툰 발음의 일본어로 "아리가토 고자이마스"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인사는 감사의 표현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조금 얻었다'는 신호처럼 느꼈다.
다정함은 언어보다 빠르다. 그리고 때로는 언어보다 진실하다. 국경을 넘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유창한 언어가 아니라, 말없이 건네는 다정한 인정이다. 복지란 그런 다정함이 사회의 가장 깊은 곳까지 스며들게 하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서툰 일본어를 탓하지 않고,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보다 마음을 먼저 읽어내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리고, 언어 이전에 다정함을 건넬 수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