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입국관리국, 이른 아침의 대기실. 텅 빈 벽, 규격화된 의자, 안내문만 가득 붙은 공간은 차가운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그곳에서 나는 한 남자를 만났다. 네팔 출신, 서른다섯. 불법체류자로 일본에서 8년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작은 공장에서 일했다. 등록되지 않은 이름으로, 매일 땀을 흘리며 일을 했지만, 언젠가는 들킬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했고, 사고를 당해도 신고할 수 없었다. 일본 사회의 그림자 속에서 존재를 숨긴 채 버텨온 시간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단속에 걸려, 그는 강제송환 절차를 밟게 되었다.
나는 불법체류 외국인의 보호와 송환 절차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의 요청으로 통역에 나섰다. 그는 입을 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처음 꺼낸 말은 변명이 아니라 사과였다. 불법 체류자라는 낙인이 그의 존재를 죄인으로 규정해버린 듯했다.
"언제, 왜 일본에 오셨습니까?"
담당 직원의 질문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네팔에는 일이 없었습니다. 가족이 먹고살 수 없어서..."
그 말은 통역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 사회는 외국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만, 때로는 그 노동을 제공한 이들의 존재를 부정한다. 정식으로 재류자격을 인정받고 등록된 외국인만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미등록 상태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밀려난다. 오랜 시간, 일본이라는 나라에 노동력을 제공하며 월급을 받고 그 돈으로 생활을 이어왔지만, 그의 체류자격 회복 가능성은 낮았다. 가족 초청도, 난민 인정도 불가능했다.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자진해서 귀국하거나, 강제 송환을 기다리는 것. 나는 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다.
"혹시 일본에 남고 싶은 이유가 있습니까?"
조심스럽게 묻자, 그는 고개를 숙였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에는... 제 아이가 있습니다."
그의 딸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학교에 다니고,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썼다. 그러나 아버지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딸도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담당 직원에게 통역하며, 가슴 깊은 곳이 아릿했다. 행정절차에는 인간의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서류상의 조건이 맞지 않으면, 사람은 쉽게 삭제된다.
그러나 사람은 서류가 아니다. 사랑하고, 일하고, 꿈꾸는 존재다. 그가 건넨 서툰 일본어 속에는, 살아가고자 하는 본능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국적이나 체류자격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간의 절실함이었다.
강제송환 절차는 차갑고 무표정했다. 출국일정이 결정되면, 그는 딸과 이별해야 했다. 일본어로 편지를 남기고, 딸을 안아볼 마지막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그는 작은 종이에 몇 마디 일본어를 적었다.
"건강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 아빠는 항상 널 사랑한다."
삐뚤빼뚤한 글씨였지만, 그 어떤 완벽한 문장보다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복지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적이나 서류로 인간을 재단하지 않고, 서툰 말 속에서도 살아 있는 마음을 읽어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짜 복지가 아닐까.
그를 떠나보내던 날, 나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감사하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짧은 침묵 속에서 이별을 나누었다.
나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 땅 위에서, 존재를 지우지 않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을 기록할 것이다.
복지란, 제도가 포착하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끝까지 붙드는 일이다. 국경을 넘어 살아가는 이들의 흔적을, 언어가 닿지 않는 곳에서도 놓지 않는 것. 그 작은 다짐으로, 나는 오늘도 이 복잡한 일본 사회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