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세 번째 나라, 일본

by Eunhye Grace Lee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요?”
그는 조용히 물었다. 파키스탄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17살의 소년이었다. 부모는 기술연수생으로 일본에 들어왔고, 체류 자격 만료 후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소년은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났지만 일본 국적은 없었다. 부모의 국적인 파키스탄의 언어와 문화도 그에겐 너무 낯설었다.


“일본어밖에 못해요. 일본에 온 이후로 파키스탄엔 가본 적도 없어요.”
그의 말은 단순했지만, 그 안에는 혼란과 단절이 깊이 배어 있었다. 그는 지금도 일본에 ‘임시 체류’ 중인 외국인일 뿐이다. 그리고 곧, 성인이 된다. 나는 일본 사회복지사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아이들을 점점 더 자주 만나게 된다.

‘세 번째 나라’에 머무는 아이들. 부모의 나라에도, 일본 사회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아이들. 그들은 제도 바깥에 놓여 있고, 정체성의 근거조차 희미한 채 살아간다. 학교에서는 일본 아이들과 똑같이 생활하고, 언어도 일본어뿐이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그들에게는 문득 ‘자격’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진학이나 취업, 의료, 복지, 심지어 이동조차 제약이 생긴다.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서류를 통해, 절차를 통해 조용히 던져진다.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 나는 한 명의 사회복지사로서 자주 고민한다. 우리는 제도를 집행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제도의 경계에서 사람을 다시 세우는 사람인가. 그리고 언제나, 그 경계에서 균형을 지켜야 한다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마주한다.


소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학업 성적이 우수했고, 공업계 고등학교에서 기술을 배웠다. 담임 교사는 일본 내 취업을 희망했다. 하지만 그의 체류 자격은 '가족 체류'였고, 노동은 허용되지 않았다. 출입국관리국은 말한다. “원칙적으로 귀국이 우선입니다.” 교육현장은 반대로 말한다. “이미 이 아이는 일본 아이입니다.”


나는 그 두 입장 사이에서 생각했다. 제도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고, 복지는 인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 둘이 충돌할 때, 우리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선택해야 하는가.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으려 애썼다. 그를 동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가 지금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함께 직면했다.
“네가 여기에 계속 머물고 싶다면, 너의 체류 자격은 네가 준비해야 해.”
그 말은 차가워 보일 수 있었지만, 그것이 유일하게 진실된 조언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그래도, 저는 여기서 계속 살고 싶어요. 방법이 있을까요?”
나는 가능한 선택지를 설명했다. 전문학교 진학을 통한 체류 연장, 난민 신청, 인도적 사유에 의한 특별 체류 허가 등.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함께 전했다.


중립적인 시선이란, 판단을 유예하는 것이 아니다. 공정하게 듣고, 균형 있게 보고, 감정과 사실을 분리해 현실을 설명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조차, 한 사람의 삶은 서류로 단순화될 수 없다.
복지란 결국, 제도를 설명하되 인간을 바라보는 일이다. 소년은 나와의 상담이 끝난 뒤, 일본어로 또박또박 인사를 했다.


복지란 때로, 한 사람의 상황을 구제하는 일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현실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선택할 수 있게 돕는 일이다. ‘세 번째 나라’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그들은 종종 일본인도, 외국인도 아닌 채 살아간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 자체는 흔들려서는 안 된다.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말하고 싶다. 우리는 때로 제도 안에서 일하고, 때로 그 바깥의 삶을 마주한다.그리고 그 두 세계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더 차분하게, 더 깊이 있게 사람을 바라보려 한다. 소년의 말처럼.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라는 질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대답은 이것이었다.
"너는, 여기 있다. 지금,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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