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고향이 어디냐고요? 글쎄요, 이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60대 후반의 남성이었고, 중남미의 한 나라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 일본에 들어와 건설 현장에서 일했고, 한때는 합법적인 체류자였다. 그러나 비자 갱신을 놓친 뒤로는, 오랜 세월 ‘존재하지 않는 외국인’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어느새 그는 노인이 되었다.
나는 이 사례를 처음 접했을 때, ‘고령 이주자’라는 단어에 낯선 감정을 느꼈다. 우리 사회는 외국인을 늘 ‘젊고 노동하는 존재’로 상상한다. 그러나 일본 사회도 이미 고령화가 진행되었고, 수십 년을 이 땅에서 살아온 외국인 중에도 이제는 병원과 복지의 도움이 필요한 노인이 생겨났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고국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고, 가족과의 연락도 끊긴 지 오래였다. 언어도, 생활방식도 이미 일본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는 일본의 시민도, 복지 수급 대상도 아니었다. 체류 자격도 없고, 주소지도 없었기에, 그는 어떤 복지 제도에도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나는 구청 복지과의 요청을 받고, 그와 함께 일시 숙소 상담을 시작했다. 담당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행법상 생활보호 대상이 아니며, 임시 의료지원은 NGO를 통해 안내해야 합니다.”
담당자의 말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선은 제도와 사람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나는 복지사로서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의 사정에 감정적으로 기울이기보다는, 현실 속에서 가능한 연결을 찾아야 했다.
복지란, 불가능을 감정적으로 안아주는 일이 아니라, 가능한 곳까지 길을 함께 걷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간단체의 단기 임대지원 프로그램을 연계했고, 의료봉사 네트워크와 연결해 약간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매번 고개를 숙이며 “미안합니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미안해야 할 이유는, 그에게 없었다. 그가 가진 ‘없는 것’의 목록은 길었다. 국적, 비자, 연금, 가족, 주소지, 소득, 신분증. 그러나 그가 보여준 것들 중엔 ‘있는 것’도 분명했다. 인내, 유머, 질서, 감사, 그리고 아주 오랜 삶의 무게. 나는 그것이야말로 존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세요?”
어느 날 조심스럽게 묻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나는 일본이 고향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본에서 늙고, 여기서 죽을 줄 알았죠.”
그 말은 마치 어떤 배신처럼 들렸다. 한 사회에 자신을 바쳤지만, 제도의 밖에서 노년을 맞이한 이방인의 말. 그 말 앞에서, 나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사회복지란, 국적을 묻지 않는다고 하지만, 현실의 제도는 늘 '시민권'과 '체류자격'이라는 벽을 세운다. 중립적인 입장이라 하더라도, 그 벽 앞에서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객관성과 감정 사이에서 복지사는 매번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의 사례는 이상적인 해결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임시 지원을 연결했지만, 근본적인 제도적 해결은 여전히 요원했다. 그는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센터에 나타나 작은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사라졌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오래 살았지만, 저는 끝까지 외국인이었네요. 그래도 누군가 제 이야기를 들어줘서 다행입니다.”
나는 그 편지를 오래 곱씹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단지 국적이나 지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이 마지막까지 ‘존재해도 괜찮은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복지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늙고, 어딘가에 기대게 된다. 그때,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이 부정당하지 않기를. 그의 삶이 그랬듯, 이름이 불리지 않는 곳에서도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세상이 오기를, 나는 지금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