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면 잘릴까 봐 무서웠어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필리핀 출신의 40대 여성. 일본 중소도시의 급식 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10년 넘게 같은 사업장에서 일했지만, 정규직이 아니었고, 계약은 매년 갱신되는 형태였다.
그녀의 문제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업무 중 손목에 통증이 생겼고, 진단 결과는 ‘만성적 반복 동작에 의한 근막통증증후군’. 그러나 고용주는 이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개인의 건강 문제”라며 병가 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재계약을 앞두고 “건강이 안 좋은 분은 부담된다”는 말을 돌려서 들려주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상담을 요청했다. 직접 고용이 아닌 ‘파견’ 형태였기에, 고용관계도 명확하지 않았다. 노무 관리 책임은 누가 지는가? 산재 신청은 파견처에 해야 하는가, 파견사에 해야 하는가? 법적으로는 답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늘 회피와 책임 떠넘기기로 이어졌다.
“아프다고 말하면, 나를 귀찮은 사람으로 볼까봐 두려웠어요.”
그녀의 말은 단지 이 한 직장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 특히 여성은 ‘순응적이고 불평하지 않는 일꾼’으로 기대된다. 목소리를 내면, 계약이 끊기고, 불이익이 돌아온다. 그래서 침묵한다. 그래서 병든다. 그리고 결국, 사라진다.
나는 그녀의 입장을 단순한 피해자의 위치에만 두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일했고, 자신의 몫을 다했고, 지금은 권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그 권리는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제기되어야 하고, 그 과정은 정당하게 제도와 연결되어야 한다.
나는 복지사로서 감정이 앞서는 언어를 경계했다. 억울함은 이해하되, 법적 조건을 정확히 안내했다. 산재 신청 절차, 진단서 준비, 파견사와의 고용 관계 확인. 그녀가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목소리가 ‘기각되지 않도록’ 제도와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위축되어 있었지만, 자신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점점 달라졌다.
“다른 사람들도,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한 이 말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실천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동료들에게도 상담을 권유했고, 소규모 외국인 여성 노동자 모임에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복지란, 단지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기 권리를 이해하고, 표현하며,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것을.
일본의 노동현장은 여전히 ‘무언의 규율’에 지배받는다. 특히 외국인 여성에게는 ‘고분고분함’이 미덕처럼 요구된다. 그러나 복지의 언어는 다르다. 복지는 사람에게 침묵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녀의 산재 신청은 쉽지 않았다. 근무기록이 누락된 부분도 있었고, 중간 관리자의 부정확한 진술로 과정이 길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싸움은 크지 않았지만, 명백했다. “일한 만큼의 책임을, 나도 요구할 수 있다”는 것. 나는 그 과정에서 사회복지사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되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권리를 말할 수 있는 ‘절차적 정의’를 잃지 않도록 돕는 일은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이, 현장에선 가장 어렵지만, 가장 필요한 역할이다.
상담이 마무리되던 날,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무섭지 않아요. 왜냐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그 한마디는, 복지 현장에서 내가 계속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부당함 앞에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사치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말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가 지켜지는 사회야말로, 진짜 복지국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