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돌보다가, 사람한테 다쳤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베트남에서 온 20대 여성 간병인이었다. 일본의 한 고령자요양시설(特養老人ホーム)에서 근무 중, 치매를 앓는 고령 이용자의 공격적 행동으로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 피해 사실을 신고하자, 시설 측은 이렇게 말했다.
“노인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치매라는 병 때문입니다.”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말이 ‘상처받은 당신은 이해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오늘날 일본의 돌봄 노동 현장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 돌아가기 어렵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일본 청년층은 간병업무를 기피하고, 그 빈자리를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이 채워왔다. 그녀도 ‘기술실습생’이라는 제도 안에서 일본에 왔고, 본국에 있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겠다는 다짐으로 이 일을 택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언어의 벽, 문화의 간극, 불규칙한 교대 근무. 그리고 무엇보다, 감정노동의 연속이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의 폭언, 손찌검, 성희롱 등. 그 속에서 그녀는 매일 참았고, 매일 조금씩 무너졌다.
나는 그녀와 상담을 이어가며, 이 문제를 단순한 ‘사고’로 취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물리적 상처는 치유되었지만, ‘돌보는 사람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감각이 사라진 채로는 이 노동은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일, 안 하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도 없어요.”
그녀의 말은 단지 개인적인 고민이 아니었다. 수많은 외국인 간병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묵시적인 강요와 무력감의 구조를 대변하고 있었다.
일본의 복지 제도는 ‘돌봄’의 필요성에 집중하면서도, 돌보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은 여전히 취약하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은 약자의 돌봄을 맡으면서 스스로는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 폭언과 폭행은 시설 내에서 '일상적 위험'으로 간주되며, 신고조차 어려운 분위기에서 감정은 축적된다.
나는 그녀의 경험을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기로 했다. 사회복지사로서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 그녀의 목소리가 제도 안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당한 실천이었다.
우리는 시설 내 감정노동 보호조치의 필요성과 외국인 노동자 대상 교육체계의 미비점을 정리해, 사회복지협의회에 전달했다. 당장 큰 변화가 있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이야기가 ‘사소한 사건’으로 사라지지 않게 하는 일이 먼저 필요한 일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돌보는 사람들, 대부분 말이 없어요. 근데 그 사람들도 내가 옆에 있는 걸 느끼잖아요. 그럼 나도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내가 여기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걸.”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돌봄 노동이란, 말 없는 관계를 오래 견디는 일이다. 그 무게는 보이지 않지만, 그만큼 깊다. 복지란 그런 무게를 가볍게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무게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않게 해야 한다.
그녀는 아직 일본에 머물고 있다. 여전히 간병일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자신을 지킬 방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돌보는 사람도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더 자주, 더 크게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