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근처의 편의점 앞. 퇴근 후인 듯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고 있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나눠 먹으며, 자신들만의 언어로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그날 나는 방문상담을 위해 외근 중이었고, 문득 그들을 바라보다 멈춰 섰다.
그들은 왜 웃고 있었을까. 낮에는 온종일 기계 소리에 묻혀 일하고, 좁은 기숙사에서 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계약을 붙들고 살아가는 이들. 일본 사회의 한켠에서 ‘외국인 노동력’이라는 이름으로만 불리는 그들. 그런데도 그들은 웃고 있었다.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종종 그들과 마주한다. 산재를 입은 뒤 보상받지 못한 이, 갑작스러운 해고로 생계가 끊긴 이, 체류 자격 갱신에 실패해 불안에 떠는 이.
그들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현장 밖에서 만나는 그들은 자주 웃는다. 같은 나라 출신의 동료들과 음식을 나누며, 휴대폰 영상에 웃고, 서로의 어깨를 두드린다. 어떤 이들은 낯선 일본어로 농담을 시도하며, 정확하지 않은 문장이 오히려 유쾌함을 만든다.
나는 그 웃음을 곱씹으며 자문한다. 그 웃음은 ‘긍정’일까, ‘체념’일까. 아니면 그 어떤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는, 단지 지금 이 순간을 견뎌내는 인간적인 방식일까.
복지 현장에서 나는 자주 마주친다.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고도, 병원비가 부담돼 진료를 미루는 사람. 비자가 만료되어 퇴직했지만, 퇴직금을 청구하지 못하는 사람. 그런 현실 속에서도 그들이 웃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어떤 종류의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복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결코 단순한 제도 설명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제도는 객관적이어야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웃는 얼굴 속에 슬픔이 있고, 고된 삶 속에서도 빛나는 유머가 있다.
나는 어느 날, 복지 상담 중 이렇게 말했다.
“정말 힘드실 텐데, 그래도 웃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그러자 상대방은 이렇게 대답했다.
“울면 더 힘드니까요. 웃으면, 조금은 살 수 있잖아요.”
그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그 웃음은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현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나오는,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존엄의 방식이었다.
물론 그 웃음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삶은 여전히 어렵고, 구조는 여전히 비틀려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웃음을 낭만화하거나 오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 웃음 안에 감춰진 피로, 분노, 희망, 체념… 그 복잡한 감정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나는 복지란 단지 지원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를 잃지 않도록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그 웃음이야말로 그들이 자신을 놓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편의점 앞에서 다시 마주친 어느 밤,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마음속으로 작은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들은 나를 잘 몰랐지만, 몇 명은 고개를 숙였고, 어떤 이는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 장면을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삶. 그들의 웃음이 던지는 물음표에 쉽게 마침표를 찍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이 이야기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