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돌봄받지 못한 마음들

4-1. 병원에서도 아프지 못하는 사람들

by Eunhye Grace Lee

“응급실에 왔지만, 진료비가 없어서 그냥 나왔어요.”
그는 허리를 굽힌 채 앉아 있었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40대 남성, 허리 통증이 심해 응급실에 갔지만 불법 체류 상태였고, 보험도 없었다.


병원은 비용 부담을 먼저 설명했고, 그는 아무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돌아왔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몸이 아파도 병들 수 없는 사람들. 제도 바깥에 있다는 이유로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 그들은 존재하지만, 복지의 언어로는 이름을 부르기 어렵다.


그가 처한 상황은 복잡했다. 기술연수생으로 입국해 계약 종료 후에도 귀국하지 못했다. 고국에는 병든 부모와 어린 자녀들이 있었고, 그는 일본에서 보내는 매달 10만 엔의 송금으로 그 가족의 삶을 지탱해왔다. 자신이 아프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는 대신, 진통제로 고통을 참고, 일을 계속했다.


일본의 의료 제도는 보편성을 지향하지만, ‘보험’이라는 구조 안에 있어야 그 보편성이 작동한다. 체류 자격이 없거나, 신분이 불안정한 외국인에게 의료는 늘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부담은 ‘아프지 않기’ 혹은 '아파도 참기'로 해결된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병들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 병이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고통은 길어지고,

삶의 질은 점점 더 낮아진다. 나는 그의 허리 통증이 단순한 신체적 병증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 고통 속에는 육체의 피로뿐 아니라, 병들 자격조차 얻지 못한 이방인의 마음이 들어 있었다.


복지센터에서 긴급 의료지원 제도를 검토했지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괜찮아요. 진짜 아프면, 그땐 돌아가면 되니까요.”
그 말은 체념이자, 자기 방어였고, 어쩌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무료 건강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민간단체와 연결해 보자고. 그는 처음엔 망설였지만, 며칠 뒤 조용히 연락을 주었다. 그리고 의사의 의견서와 함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우리는 구청과 협의해, 일시 의료비 지원 신청을 진행했고, 민간의료비지원기금을 통해 일부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절차는 길었고, 그의 통증은 그보다 더 빨랐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자주 묻고 있었다. 병원은 누구의 공간인가. 제도가 허락한 사람들만이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정말 ‘공공’의 공간일 수 있는가. 사회복지사는 그 경계에서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가.


나는 감정적으로만 접근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동정은 순간의 위안이지만, 제도를 넘지 못하면 해결은 없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현실 안에서 가능한 길’을 찾으려 한다. 그가 병들었다는 사실을 제도 언어로 증명하고, 그 증명이 의미를 갖게 만드는 과정이, 사회복지사의 가장 고된 일이자, 본질적 역할이다.


그는 치료를 받게 되었고, 한 달 뒤 통증이 조금 줄었다는 연락을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내가 진짜 사람 취급받은 것 같았어요. 일본 와서 처음으로요.”

그 말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복지란 결국, 누군가가 ‘사람으로서 병들 수 있는 권리’를 지켜주는 일이다. 그가 아프다고 말할 수 있게 하고, 그 말을 받아주는 일. 그것이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돌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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