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사라진 계약서
그는 말이 없었다. 서른 중반의 스리랑카 출신 남성이었고, 공장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한 손에 붕대를 감은 채, 상담실 문턱을 조심스럽게 넘었다.
그를 소개한 것은 지역 의료 NGO였다. 작업 중 손을 다쳤지만, 보험 처리를 받지 못했고, 해당 공장은 그를 더 이상 고용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계약서는 가지고 계신가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있었던 것 같은데… 사장님이 나중에 가져갔어요.”
일본의 중소 규모 제조업이나 식당, 농장 등에는 여전히 불법 고용이 빈번하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언어 장벽과 정보 부족으로 인해 계약서 없이 일하거나, 고용주에게 모든 권한을 넘긴 채 일하는 사례가 많다.
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비자를 가진 상태였지만, ‘기술 실습생’으로 들어온 뒤 지인의 소개로 공장 일을 시작했다. 당시 고용계약서는 일본어로만 되어 있었고,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서명한 것으로 보였다. 급여는 매달 지급되었지만, 사회보험은 적용되지 않았고, 산재 처리를 요구하자 그날로 해고되었다.
나는 담당 지역 복지센터와 상담을 조율했다. 다친 손은 아직 치료가 필요했고, 생계도 막막했다. 하지만 서류상으로는 그가 ‘해고되었는지조차’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고용주는 계약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고, 그는 말로는 해명할 수 있지만, 증거가 없었다.
이런 상황은 드물지 않다. 일본의 복지 제도는 ‘서류 중심’이다. 계약서, 통장 입금 기록, 근무 일지, 출퇴근 기록… 복지 혜택이나 보호를 받으려면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여야 한다.
그러나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합법적이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의 시간, 노력, 땀은 있었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남지 않았다. 나는 그의 입장에서 그 고용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LINE 메시지, 작업장 사진, 지급된 급여의 현금 메모, 그리고 동료의 증언. 모든 것이 비공식이었지만, 현실 속 그의 노동은 분명 존재했다.
“일을 하고 싶어요. 아프지 않았다면 계속 했을 거예요.”
그는 치료 도중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의 진심이 고용주에 대한 미움보다, 삶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복지제도는 그런 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노동을 했다는 사실은, ‘공식적인 절차와 증명’을 통해서만 효력을 가진다. 그의 손가락에 감긴 붕대보다, 계약서 한 장이 더 중요한 것이다. 사회복지사로서 나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 고용주의 말도, 노동자의 말도, 그대로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중립이라는 말이, 곧 책임을 유보하는 뜻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가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우리는 산재 신청을 위한 의사의 소견서를 준비하고, 구청의 긴급 생활자금 신청을 검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 상담센터를 통해 정식으로 고용주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과정을 시작했다. 시간이 걸릴 것이고, 결과가 확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이제는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이 말은 어떤 면에서는 나에게 더 무겁게 다가왔다.
우리 사회는 노동을 소비하면서도, 그 노동을 감춘 채 외면하는 데 익숙하다. 제도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노동'의 정의에 닿지 못하면, 그 노동은 이름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인간의 노동은 서류 이전에 존재한다. 그가 흘린 땀, 다친 손, 쉬지 않고 반복된 하루하루.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
복지란, 그런 이름 없는 노동을 제도 안으로 데려오는 일이다. 비로소 ‘보이지 않던 사람’을 다시 사회의 일부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나는 그의 상담을 마치고, 조용히 붕대를 감고 있는 그의 손을 보았다. 그의 손은 아직 다 낫지 않았지만, 그 손으로 살아갈 의지는 단단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