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다. 역시 나는 '모 아니면 도'인 것 같다. 매일 한 편씩 글을 쓰기로 작정한 50일이 지나자 다시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졌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는 내 스타일이 아닌 거다. 한 번 맘먹기가 힘들어 그렇지 일단 마음을 정하면 죽기 살기로 하는 편이 차라리 나하고 맞는 성싶다.
거기까지만이면 좋게? 문제는, 그러다 보면 내가 어쩔 수 없이 지쳐 나자빠지고 말 거라는 것. 하긴 어떻게 녹아웃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쉬엄쉬엄 꾸준히 해야 덜 지치고 오래가는 법인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1년간 하루 한 편 쓰기로 나와 약속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여지를 남기지 말고 꼼짝도 못하게 고삐를 죄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외골수인 나는 울며불며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면서라도 글을 쓰게 되었을지 모른다. 약속을 어기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강박 성향을 살살 이용했더라면.
내가 그런 타입인 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나는 포석을 깔았던 거다. 일주일에 두 개쯤 쓰거나 이틀에 한 개꼴로 포스팅을 하겠다고. 그렇게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든 순간 난 나의 저의를 간파하고 있었다. 퇴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토, 일, 월. 글도 안 쓰면서 종일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사흘이 후딱 지나갔다. 처음 잠깐은 코뚜레가 벗겨진 듯 좋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놓치고 있는 듯한 우울감이 밀려올 줄도 모르고. 게으르고 소극적인 내 성격상 강제성이 없으면 쓰지 않을 거라는 것,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럼 그렇지, 당신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고, 뭘 하든 소름이 돋게 규칙적이고 한결같은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수도꼭지 틀면 물이 나오듯이 글도 줄줄 나오는 줄 아는 사람이나 할 소릴!
우울을 벗기 위해서라도 노트북 앞에 꼭 붙어 앉은 어제 아침이었다. 오히려 더 글을 쓸 수가 없는 돌발 사유가 생겨버렸다. 새벽에 깨어 한 줄도 못 쓴 채 모니터만 노려 보기 뭣해 딴 브런치 작가들 글을 슬그머니 들춰 본 게 화근이었다. 이런, 남녀노소 막론하고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비교'신이 강림하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드럽게' 잘 쓰는 사람이 그렇게나 '드럽게' 많을 줄이야. 그만 읽고 멈춰야 했다. 비교는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이나 하는 거라니까.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안 읽었다면 모를까 한 번만 읽고 빠져나갈 순 없는 글이 천지에 널려 있었다.
아, 오늘도 난 못 쓰겠구나.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브런치 사이트에서 도망치듯 나왔을 때 들었던 첫 번째 생각. 백해무익한 자기 암시였다. 그때부터 나는 시간을 죽이며 키보드에 얹어놓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했다가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했다가, 한 시간을 그러고 앉아 있었다. 그럴 바엔 과감히 떨치고 일어나 산책을 하러 가든 밀린 청소를 하든 밑반찬이라도 만들든…, 그랬더라면 좀 좋았을까.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내 편이라서 안전한, 나랑 제일 친한 친구인 딸에게 톡을 날렸다. 원군이 필요했다. 내 글 쓰느라 바빴을 땐 딸애 톡에 대꾸도 안 했으면서 내가 아쉬우니 찾을 사람은 딸뿐이었다.
- 미춰~버리겠다. 글이 넘 안 써져.
- 왜 그러는 건데? 암튼 울 엄마 한동안 열심히 죽기 살기로 할 때 알아봤어. 점심 사줄 테니 회사 근처로 오셈.
오늘은 꼭 쓰고야 말리란 다짐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당장 뛰쳐나갈 일이었다. 무슨 말도 경청해 주는, 참 편안한 의논 상대인 딸이긴 하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었다. 더구나 회사가 있는 도곡동까지는 오가는 데만 두 시간. 그럴 순 없었다. 뭐라도 꼭 하나 포스팅을 해야 한다는 데 어젠 특히나 강박적이었으니까.
- 담에.
짧게 내 뜻을 전하자 딸애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카톡을 보내왔다.
- 잠깐 기다려 엄마. 점심 먹으러 가기 전에 양재천 산책하면서 통화나 하게. 근데 예전엔 얼씨구나 뛰어오더니, 요샌 엄마가 바쁘니까 좀 쓸쓸하네.
'쓸쓸하고 말고. 늘 나를 향했던 앞통수는 안 보이고 점점 멀어져 가는 뒷모습만 바라봐야 하는 거, 얼마나 쓸쓸한 일인데. 그동안 너네에게만 쏠려 있었던 엄마 앞통수가 대체 어디 갔나 그러지 말고 이젠 내 뒤통수도 좀 지켜봐 줘.' 딸에게 전화가 걸려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낙서하듯 썼다 지웠다, 키보드를 눌렀다. 새벽부터 그 시각까지 겨우 하나 건진 문장인 셈이었다.
"뭐가 문젠데 엄마? 글이 왜 안 써지는 것 같은데?"
전화를 걸자마자 문제 해결사나 되는 듯 딸애가 재촉했다.
" 내 글은 올드하고 사람들은 넘 잘 써."
" 에이, 난 또. 잘 쓰는 분이 많으면 좋은 거 아니야? 아주 못 쓰는 플랫폼에다 발 들이고 싶었어?"
" 아니."
" 그럼 됐네 뭐."
" 근데 다들 잘 쓰기만 한 게 아니고 무진장 재밌게 잘 써."
" 예를 들면?"
" 엄마 또래 50 대 작가님 글에…, 시어머니가 새 수저 세트를 쟁여놓기만 해. 헌 것만 쓰고 버릴 줄도 모르고. 근데 남편이 시어머니랑 똑같다는 거야. 거기까진 뭐 여기 우리 집도 한 표 추가요, 그럴 사람 많지. 문제는 그걸 어떻게 표현하냐지. 자, 들어 봐, …남편은 사는 물건도 아깝고, 쓰는 물건도 아깝고, 버릴 물건도 아까워하는 사람이다…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나에게서 또 실실, 웃음이 흘러나오자 딸의 폭소가 동시에 하나로 합해졌다. 폰을 간신히 귀에 붙인 채 배꼽을 쥐며 웃고 있을 딸아이 모습이 훤했다.
쉰이 넘으면 기억력이 급속도로 떨어져 누가 한 말을 정확히 옮기기가 쉽지 않다. 1초 전에 들었던 말도 남에게 전해주려 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러니까 그분이 표현한 문장이 어지간히 인상적이고 재밌지 않았다면 나는 딸에게 결코 전달할 수 없었다.
" 완전 우리 아빠네."
간신히 웃음을 멈추며 딸이 말했다.
" 딱 니 아빠지?"
그러고 나서 우리 모녀는 또다시 킬킬 웃었는데, 조금 후 수화기 너머에서 딸이 정색하는 기미가 느껴졌다.
" 엄마도 재밌는 거 써 봐."
" 사람이 재밌게 생겨먹질 않았는데 어떻게 재밌는 걸 써."
" 똥 얘기 써 봐. 우리 대학 졸업생 커뮤니티 들어가 보면 인기 글, 베스트 글로 뽑히는 건 무조건 똥 얘기라니까. 사람들 넘 열광하고 댓글도 아주 많이 달려."
" 하긴. 우리 가족끼리 가장 친하고 소통이 잘 되는 것 같을 때도 그때잖아? 비밀스러운 얘기 맘 놓고 해도 되는 사이. 똘똘 뭉쳐 같은 편인 느낌 들 때가 똥 얘기할 때 말고 더 있냐?"
" 그니까, 엄마. 난 사람들이 똥 얘기를 그리 좋아하는지 몰랐어. 똥 문학은 진짜 개추(개추천)라니까."
걷다가 회사 동료라도 만났는지, 아, 네, 하더니 딸애가 급히 전화를 끊었다.
개꿀, 개이득, 개추.
'개'가 언제부터 강세 접두사가 됐는지 묻고 싶었지만, 아니, 입도 못 열게 딸이 전화를 서둘러 끊은 게 다행인지도 몰랐다. 그걸 확인하려 했다면, 딸에게 한 소리 들었을 게 뻔했다. 그러니까 엄마 글이 재미없는 거야, 라고.
그나저나 큰일이네. 똥 문학이 개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