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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렇구나 Aug 05. 2020

"똥 문학은 개추야!"

엄마도 똥 얘기 써 봐

이럴 줄 알았다. 역시 나는 '모 아니면 도'인 것 같다. 매일 한 편씩 글을 쓰기로 작정한 50일이 지나자 다시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졌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는 내 스타일이 아닌 거다. 한 번 맘먹기가 힘들어 그렇지 일단 마음을 정하면 죽기 살기로 하는 편이 차라리 나하고 맞는 성싶다.


거기까지만이면 좋게? 문제는, 그러다 보면 내가 어쩔 수 없이 지쳐 나자빠지고 말 거라는 것. 하긴 어떻게 녹아웃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쉬엄쉬엄 꾸준히 해야 덜 지치고 오래가는 법인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1년간 하루 한 편 쓰기로 나와 약속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여지를 남기지 말고 꼼짝도 못하게 고삐를 죄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외골수인 나는 울며불며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면서라도 글을 쓰게 되었을지 모른다. 약속을 어기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강박 성향을 살살 이용했더라면.


내가 그런 타입인 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나는 포석을 깔았던 거다. 일주일에 두 개쯤 쓰거나 이틀에 한 개꼴로 포스팅을 하겠다고. 그렇게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든 순간 난 나의 저의를 간파하고 있었다. 퇴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토, 일, 월. 글 안 쓰면서 종일 했는기억도 안 나는 사흘이 후딱 지나갔다. 처음 잠깐은 코뚜레가 벗겨진 듯 좋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놓치고 있는 듯한 우울감이 밀려올 줄도 모르고. 게으르고 소극적인 내 성격상 강제성이 없으면 쓰지 않을 거라는 것,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럼 그렇지, 당신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고, 뭘 하든 소름이 돋게 규칙적이고 한결같은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수도꼭지 틀면 물이 나오듯이 글도 줄줄 나오는 줄 아는 사람이나 할 소릴!


우울을 벗기 위해서라도 노트북 앞에 꼭 붙어 앉은 어제 아침이었다. 오히려 더 글을 쓸 수가 없는 돌발 사유가 생겨버렸다. 새벽에 깨어 한 줄도 못 쓴 채 모니터만 노려 보기 뭣해 딴 브런치 작가들 글을 슬그머니 들춰 본 게 화근이었다. 이런, 남녀노소 막론하고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비교'신이 강림하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드럽게' 잘 쓰는 사람이 그렇게나 '드럽게' 많을 줄이야. 그만 읽고 멈춰야 했다. 비교는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이나 하는 거라니까.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안 읽었다면 모를까 한 번만 읽고 빠져나갈 순 없는 글이 천지에 널려 있었다.


아, 오늘도 난 못 쓰겠구나.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브런치 사이트에서 도망치듯 나왔을 때 들었던 첫 번째 생각. 백해무익한 자기 암시였다. 그때부터 나는 시간을 죽이며 키보드에 얹어놓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했다가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했다가, 한 시간을 그러고 앉아 있었다. 그럴 바엔 과감히 떨치고 일어나 산책을 하러 가든 밀린 청소를 하든 밑반찬이라도 만들든…, 그랬더라면 좀 좋았을까.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내 편이라서 안전한, 나랑 제일 친한 친구인 딸에게 톡을 날렸다. 원군이 필요했다. 내 글 쓰느라 바빴을 땐 딸애 톡에 대꾸도 안 했으면서 내가 아쉬우니 찾을 사람은 딸뿐이었다.


- 미춰~버리겠다. 글이 넘 안 써져.

- 왜 그러는 건데? 암튼 울 엄마 한동안 열심히 죽기 살기로 할 때 알아봤어. 점심 사줄 테니 회사 근처로 오셈.


오늘은 꼭 쓰고야 말리란 다짐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당장 뛰쳐나갈 일이었다. 무슨 말도 경청해 주는, 참 편안한 의논 상대인 딸이긴 하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었다. 더구나 회사가 있는 도곡동까지는 오가는 데만 두 시간. 그럴 순 없었다. 뭐라도 꼭 하나 포스팅을 해야 한다는 데 어젠 특히나 강박적이었으니까.

- 담에.

짧게 내 뜻을 전하자 딸애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카톡을 보내왔다.

- 잠깐 기다려 엄마. 점심 먹으러 가기 전에 양재천 산책하면서 통화나 하게. 근데 전엔 얼씨구나 뛰어오더니, 요샌 엄마가 바쁘니까 좀 쓸쓸하네.


'쓸쓸하고 말고. 늘 나를 향했던 앞통수는 안 보이고 점점 멀어져 가는 뒷모습만 바라봐야 하는 거, 얼마나 쓸쓸한 일인데. 그동안 너네에게만 쏠려 있었던 엄마 앞통수가 대체 어디 갔나 그러지 말고 이젠 내 뒤통수도 좀 지켜봐 줘.' 딸에게 전화가 걸려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낙서하듯 썼다 지웠다, 키보드를 눌렀다. 새벽부터 그 시각까지 겨우 하나 건진 문장인 셈이었다.


"뭐가 문젠데 엄마? 글이 왜 안 써지는 것 같은데?"

전화를 걸자마자 문제 해결사나 되는 듯 딸애가 촉했다.

" 내 글은 올드하고 사람들은 넘 잘 써."

" 에이, 난 또. 잘 쓰는 분이 많으면 좋은 거 아니야? 아주 못 쓰는 플랫폼에다 발 들이고 싶었어?"

" 아니."

" 그럼 됐네 뭐."

" 근데 다들 잘 쓰기만 한 게 아니고 무진장 재밌게 잘 써."

" 예를 들면?"

" 엄마 또래 50 대 작가님 글에…, 시어머니가 새 수저 세트를 쟁여놓기만 해. 헌 것만 쓰고 버릴 줄도 모르고. 근데 남편이 시어머니랑 똑같다는 거야. 거기까진 뭐 여기 우리 집도 한 표 추가요, 그럴 사람 많지. 문제는 그걸 어떻게 표현하냐지. 자, 들어 봐, …남편은 사는 물건도 아깝고, 쓰는 물건도 아깝고, 버릴 물건도 아까워하는 사람이다…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나에게서 실실, 웃음이 흘러나오자 딸의 폭소가 동시에 하나로 합해졌다. 폰을 간신히 귀에 붙인 채 배꼽을 쥐며 웃고 있을 딸아이 모습이 훤했다.


쉰이 넘으면 기억력이 급속도로 떨어져 누가 한 말을 정확히 옮기기가 쉽지 않다. 1초 전에 들었던 말도 남에게 전해주려 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러니까 그분이 표현한 문장이 어지간히 인상적이고 재밌지 않았다면 나는 딸에게 결코 전달할 수 없었다.


" 완전 우리 아빠네."

간신히 웃음을 멈추며 딸이 말했다.

" 딱 니 아빠지?"

그러고 나서 우리 모녀는 또다시 킬킬 웃었는데, 조금 후 수화기 너머에서 딸이 정색하는 기미가 느껴졌다.

" 엄마도 재밌는 거 써 봐."

" 사람이 재밌게 생겨먹질 않았는데 어떻게 재밌는 걸 써."

" 똥 얘기 써 봐. 우리 대학 졸업생 커뮤니티 들어가 보면 인기 글, 베스트 글로 뽑히는 건 무조건 똥 얘기라니까. 사람들 넘 열광하고 댓글도 아주 많이 달려."

" 하긴. 우리 가족끼리 가장 친하고 소통이 잘 되는 것 같을 때도 그때잖아? 비밀스러운 얘기 맘 놓고 해도 되는 사이. 똘똘 뭉쳐 같은 편인 느낌 들 때가 똥 얘기할 때 말고 더 있냐?"

" 그니까, 엄마. 난 사람들이 똥 얘기를 그리 좋아하는지 몰랐어. 똥 문학은 진짜 개추(개추천)라니까."


걷다가 회사 동료라도 만났는지, 아, 네, 하더니 딸애가 급히 전화를 끊었다.

개꿀, 개이득, 개추.

'개'가 언제부터 강세 접두사가 됐는지 묻고 싶었지만, 아니, 입도 못 열게 딸이 전화를 서둘러 끊은 게 다행인지도 몰랐다. 그걸 확인하려 했다면, 딸에게 한 소리 들었을 게 뻔했다. 그러니까 엄마 글이 재미없는 거야, 라고.


그나저나 큰일이네. 똥 문학이 개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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