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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후. 시우가 쓰고 있던 논문과 매우 유사한 내용의 논문을 이교수가 해외 학술지에 게재했다. 계산됐던 미래가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은 방향을 대폭 수정할 수 밖에 없다. 비슷한 주제로 여러 학자들이 연구하고 누가 먼저 발표하느냐의 경쟁은 어떠한 학문에서든 흔하게 있는 일이다. 최근 이교수가 발표한 논문 주제는 이교수의 관심 연구분야가 아니었다. 미래 계산이 되고부터는 일부러 이교수와 관심이 겹치지 않았던 주제로만 논문을 준비했다. 사이가 멀어지기 전 작성 중인 논문에 대해 피상적으로 이교수에게 지나가 듯 말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이교수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로챘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 과거 계산을 해보려 했지만 되지 않는다. 시우는 분노가 치밀었다. 어떻게 가로챘을까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본다. 자기 밑에서 일하는 석사 과정 조교 중 한 명이랑 이교수 조교랑 매우 친한 사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둘은 학부 때부터 절친한 친구였다. 그 조교를 통해서 아이디어와 연구 내용을 빼냈음이 틀림 없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시우는 의심되는 조교를 교수실로 불렀다.
“이교수님 발표한 논문 봤지? 어떻게 우리가 연구하던 거랑 거의 똑같나?” 시우는 다정한 말투로 물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 그거 보고 엄청 놀랐잖아요. 이진수 교수님이 그쪽으로 관심이 있는 줄 전혀 몰랐었거든요. 교수님도 많이 놀라셨죠?”
“혹시 이교수님 조교가 우리 연구하고 있는 내용을 알고 있었던 거는 아닐까? 똑같아도 너무 똑같아서 말이지.”
조교의 옅은 갈색 눈동자가 살짝 흔들려 보였다. “네? 교수님, 그건 아니에요. 이교수님 조교 중에 한 명이랑 저랑 엄청 친하거든요. 몰랐을 거에요. 그리고 저희가 어떤 연구하고 있지는 별로 얘기 안 하거든요. 조교들이 다른 연구실 논문에 대해서 별로 관심 없어요. 자기 공부하느라 바쁘기도 하고요. 그쪽 조교들이 알 수도 없을뿐더러 알았다고 해도 그럴 사람들은 아니에요. 제가 조교들 두루두루 다 잘 알거든요.”
“맞아. 그러지는 않았을 거야. 대학원생들이 뭐 그렇게까지야 하겠어. 그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희한하단 말이야.”
“우연이 그럴 수도 있죠. 지금 학계에서 가장 뜨고 있는 주제인 거는 사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교수님도 갑자기 관심이 생겼나 보죠. 우리가 증명하려는 방법론과 너무 비슷해서 놀라기는 했는데 그럴 수도 있죠.”
“그래, 이런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기는 하지. 그런데 이교수님이 이쪽 주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걸로 알았었거든. 그래서 더 놀랐어.”
“그러게요. 저도 몰랐어요.” 조교가 말했다.
“그래 알았어.” 시우는 퉁명스럽게 말했고 조교는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조교와 대화를 하고 나서 더 화가 났다. 분명 맞는 것 같은데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조교의 과거를 계산해보려 한다. 계산 되지 않는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당장 달려가 이교수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그런 일이 있은 후 그 조교가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시우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조교를 혼낼 때면 부드러운 태도와 말투를 유지했지만 나무라는 내용은 누가 들어도 매우 호되었다. 그런 혼내는 태도와 내용과의 괴리가 조교의 자존심을 더 상하게 만들었다. 또 단순하고 힘든 일은 그 조교에게 은근히 몰리도록 하였다. 조교는 직감적으로 교수님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교수 논문 때문이라는 사실은 상상도 못했다. 자신이 일하는 것이 교수님 성에 차지 않고 자신의 연구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만 여겼다. 하루하루 스트레스가 너무 컸고 공부에 제대로 집중 할 수도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교도 당연히 시우를 싫어하게 됐다. 학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도교수와 척을 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견디다 못해 조교는 건강 상의 문제가 있다는 핑계를 대고 조교를 그만뒀다. 그만 두는 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조교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돼 편의점과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힘들게 대학원 생활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