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하다, 기대하다 7

by 킥더드림

7
시우는 같은 학과 동료 교수 이진수와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왔다. 이교수는 시우 보다 두 살 위로 수학과 교수 중에 유일한 또래이고 관심 연구 분야도 비슷하다. 그렇다 보니 교수 중에는 이교수와 사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가장 교류가 많다. 식사 주문을 하고 이교수는 화장실을 간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몇 달 동안 시우의 머릿속은 미래 계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틈이 날 때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수학 계산과 과거 계산, 그렇다면 미래 계산은? 아무리 계속 고민해도 알 수가 없다. 이제는 좀 지치기까지 한다. 하기야 생각하고, 고민한다고 해서 그런 능력이 생길 리가 없지 않은가? 수학자가 이런 허황된 생각에 매몰되어있다니 갑자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분명 과거가 계산되는 능력이 있지 않은가?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계속되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서 시우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다. 고민한다고 알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절대 아니다.’ 당분간 미래 계산에 대한 생각은 일절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릿속에 F=MA가 번쩍 떠올랐다. 중학생 이상이면 누구나 아는 바로 그 공식. 우주의 거시세계는 철저히 F=MA에 따라서 운동했고, 운동하고, 운동할 것이다.
“F는 MA. 이 법칙에 따라 세상은 운동할 것이다.” 시우는 읊조리듯 말 했다.
미래 계산의 실마리를 드디어 찾은 것 같다. F=MA가 떠오른 순간 알을 깨고 나와서 미지의 세계를 마주한 작은 새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다 세상은 그 법칙에 따라 운동할 것이다, 그 법칙에 따라 운동할 것이다." 주문을 외우듯 아주 작은 소리로 되뇌었다.
이때 시우 뒤로 쟁반에 음식을 담아 나르는 종업원 한 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마침 이교수가 화장실을 갔다 돌아오는 중이었고 좁은 통로를 지나치다 이교수가 그 종업원과 부딪쳤다. 그러면서 쟁반에 놓인 반찬 몇 가지가 시우에게로 쏟아졌다.
“어머, 어떻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당황한 종업원은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시우는 뒤돌아 봤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종업원과 당황한 표정의 이교수가 보인다. 옷은 온갖 반찬 양념으로 얼룩이 졌다.
“죄송해요. 제가 변상해드릴게요.” 종업원은 허리를 숙여 계속 사과한다.
이 장면을 목격한 식당 사장도 한 걸음에 달려와 사과의 말을 한다.
“죄송합니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휴대폰 보느라 주의를 살피지 못해서 부딪혔습니다. 제가 변상할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이교수가 종업원에게 말했다. “주교수, 미안해. 내가 잘못해서 부딪친 거야. 이 분은 잘못한 게 전혀 없어. 그나저나 옷을 버려서 어쩌나. 내가 변상은 할 텐데 당장 얼룩이 그렇게 심해서 말이야.”
그 순간 시우의 머릿속 회로가 빠르게 회전한다. 이교수의 과거와 미래가 계산됐다. 이교수는 시우가 짧은 기간에 많은 연구 실적을 내면서 일찍 정교수가 된 것을 시기하고 있었다. 시우가 정교수가 됐을 때 겉으로는 누구보다 크게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지만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자신은 부교가 된지도 얼마 안됐는데 후배가 벌써 정교수가 된 것이 여간 못마땅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시기심에 이교수는 시우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종업원과 부딪쳐 음식을 쏟게 했다. 미래 계산 결과에 따르면 멀지 않은 미래에 시우가 연구 중인 아이디어를 이교수가 가로채 먼저 논문을 발표하는 것으로 나왔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미래 계산이 됐다.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다. 미래 계산 결과가 너무 황당하고 당황스럽기만 하다.
‘아니, 이교수님이 이런 사람이었단 말이야? 정말 상상도 못했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반찬을 일부러 엎지르다니. 대학교수씩이나 되가지고 유치하게 말이야. 그리고 내 연구 아이디어를 가로챈단 말이야? 과연 진짜일까? 과거 계산이 정확한 거 보면 미래 계산도 틀림없을 거야.’
두 사람은 평소 서로 갖고 있는 아이디어와 작성 중인 논문에 대해서 많은 견해를 나누는 편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학문적으로 많은 영감을 서로 주고 받는 관계라고 시우는 생각했다. 앞으로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학문적인 아이디어와 견해를 이교수와 나누어서는 안 된다. 정말 진심으로 이교수가 잘 되길 시우는 바랬었다. 그래서 더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기분이 든다. 그 날 이후로 시우는 이교수를 멀리했다.
언제부터인지 이교수는 시우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말수가 많이 줄었고,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해 보이고,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해도 거절할 때가 많았다. 수학자로서 언제나 학문적 열의가 높았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시우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 보았다. 시우는 연구에 의욕이 없을 뿐 별 일은 없다고 말했다. 시우는 퉁명스럽고 싸늘하게 이교수를 대했다. 이교수도 시우의 그런 태도를 느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다. 그렇다고 같은 학교에서 일하고 있으면서 아예 안 보고 살수는 없었다. 서로 거리를 두면서 최소한의 필요한 말만 하면서 지낸다.육 개월 전에 조교수 한 명이 새로 부임했다. 이름은 서윤희이며 스카이 대학 수학과를 졸업했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이 년 정도 교수를 하다가 스카이 대학으로 오게 됐다. 시우의 대학 후배이지만 시우가 졸업을 하고 입학을 했기 때문에 전에부터 알던 사이는 아니다. 정기적으로 갖는 수학과 교수 모임에서 시우와 윤희는 많은 얘기를 하게 됐다. 윤희는 박사 과정 때 시우가 쓴 논문을 처음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 이후로 공부하는 내내 시우의 연구를 통해 많은 영향과 영감을 받았다. 모임 식사 자리에서 윤희는 시우가 자신의 롤 모델이라고 고백하듯 말했다. 윤희의 집은 시우의 집에서 차로 십 분 정도 거리에 있다.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어서 시간이 맞는 날이면 퇴근할 때 함께 차를 타고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시우는 윤희와 꽤 가까워 졌다. 이교수와 그랬던 것처럼 윤희와 학문적으로 소통을 많이 한다. 이교수와 멀어지고는 학교에서 그만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다른 교수들은 연배 차이가 나고 조교들은 시우를 어려워한다. 그래서 학교에 오면 조금 외로운 느낌이 있었다. 그러다가 윤희와 가깝게 지내게 돼서 너무 좋다. 윤희도 배울 점 많은 선배가 곁에 있다는 게 기쁘다.
집에 오면 시우는 이교수에 대해서 지나에게 자주 얘기하는 편이었다. 함께 먹은 점심이나 저녁, 같이 나누었던 대화, 이교수 집안 일. 자질구레한 것까지 말하고는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교수에 대한 얘기가 뚝 끊긴 걸 알아차린 지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왜 이교수님에 대해서 얘기 안 해? 예전에는 얘기 많이 했었잖아.” 지나가 물었다.
“내가 이교수님 얘기 많이 했었나? 요새는 예전만큼 왕래가 별로 없어.”
지나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얘기 엄청 했었지. 왕래가 없다니 무슨 일 있었어?” 시우가 좋아하는 선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무 일도 없었어. 서로 바쁘다 보니까 예전만큼 교류가 적어 진 것 같아. 이교수님, 정교수 되려면 연구에만 매진해도 모자랄 판이거든. 그래서 그런지 요즘 많이 바쁘신 것 같더라고.” 시우는 적당히 둘러댔다.
“그럼 요즘은 학문적으로 소통은 누구랑 하는 거야? 이교수님이랑 얘기하다 보면 영감도 받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른다고 그랬잖아. 그래서 이교수님이랑 그런 대화하는 거 좋아했잖아.”
“몇 달 전에 새로 부임한 서윤희 교수라고 있어. 요즘은 서교수랑 얘기 많이 하는 편이야.”
“새로 부임한 교수가 있어?” 지나는 금시초문이었다.
“응. 내가 자기한테 말 안 했었나?”
“응. 안 했었어. 이름이 서윤희이면 여자겠네?”
시우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응. 여자야. 학부는 우리학교 나왔고 미국에서 박사하고 거기서 좀 일하다가 육 개월 전 즈음에 임용 됐어.”
"육 개월이나 됐는데 그 동안 나한테 한 번도 얘기 안 한 거야?”
“얘기 한 거 같은데 혹시 기억 못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분명히 안 했어. 서윤희라는 이름 자체를 지금 처음 들어 보는 거야. 그런데 서윤희 교수라는 사람은 결혼 했어?"
"결혼 아직 안 했더라고."
결혼을 안 했다는 말에 지나는 자신도 모르게 한 쪽 눈꼬리를 찡긋했다. "그렇구나. 아직 안 했구나. 그런데 유학가면 같은 대학원생들끼리 눈 맞아서 연애 많이 하지 않나? 타국에서 혼자 공부만 하다 보면 많이 외로우니까. 그렇게 만나다가 대부분 결혼하던데. 특히 박사까지 하면 공부가 길어 지니까 더 그럴 것 같은데."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경우가 많긴 하지. 서교수가 박사 학위를 엄청 빨리 받았거든. 이른 나이에. 그래서 그런가? 정확한 건 모르겠네. 어쨌든 결혼 안 했어. 개인적인 얘기는 거의 안 해서 결혼을 왜 안 했는지 까지는 모르겠어."
"혹시 남자들한테 인기 없는 스타일이래서 그런가?"
시우는 잠시 침묵하다 말한다. "아니야. 인기 많았을 거 같은데."
"그래? 그럼 눈이 엄청 높은가 보네."
"글쎄. 여러 가지 면을 볼 때 눈이 높을 만도 해." 시우의 말에 지나는 다시 한 번 반사적으로 눈꼬리를 찡긋했다.
그렇다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눈이 높을 만도 하다. 윤희는 평균 보다 훨씬 큰 키에 날씬한 체형이고 빼어난 미인은 아니어도 갸름한 얼굴형에 뚜렷하고 조화로운 이목구비는 예쁘다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옷 입는 센스도 뛰어난 편이다. 누가 봐도 감각이 좋다고 할 정도이며 뭘 입어도 잘 소화해 내는 체형 또한 한 몫 하고 있다. 전공 분야뿐만 아니라 역사, 예술, 과학 같은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 다방면에 지식이 폭 넓고 교양이 풍부하다.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며 말투나 행동에는 당당함과 자신감이 언제나 배어있다. 그리고 너무 공부만 해서 세속에 때가 전혀 안 묻었다거나 혹은 어디 한 군데 고장이나 보이는 그런 모범생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껏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지나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윤희는 분명 남자들한테 인기가 많은 스타일이다. 새삼 깨닫게 됐다. 그러고 나서부터 시우는 윤희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다른 마음을 품은 건 절대 아니다. 그저 매력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는 딱 그 정도이다. 그날 이후로 시우는 지나에게 윤희와 있었던 일에 대해서 가끔 얘기했고 지나가 먼저 물어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시우가 윤희와 가깝게 지내는 게 지나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이따금 우려하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그 마음을 읽지 못한 건 아니지만 윤희는 동료 교수일 뿐이기 때문에 시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윤희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수 있다고 시우는 생각했다. 시우가 윤희와 아무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지나는 알고 있다. 시우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에 그에 대한 확고한 믿음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이 쓰인다.
"자기도 친한 입사 동기 있잖아. 이름 뭐였더라?" 시우가 물었다.
"정상호." 지나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상호씨. 서교수도 그런 동료일 뿐이야. 심지어 상호씨는 예전에 자기를 좋아했었다며. 그래도 난 자기를 믿으니까 전혀 신경 안 쓰인다고."
"그렇게 얘기하니까 정말 할 말이 없네. 알았어. 나도 신경 안 쓰도록 할게." 맥없이 시우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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