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의 수많은 위성 중에 하나인 유로파는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두꺼운 얼음 층 밑은 물로 가득 차 있다. 최근 TESS 우주망원경으로 발견한 골디락스존의 여러 행성 중 하나인 행성 멜로맴파에는 외계생명체가 살고 있다. 외계 생명체 중에는 과학 문명을 지닌 지적 생명체가 있고 그들은 지구인보다 역사가 수십억 년 오래됐다. 멜로맴파인은 오랜 시간 문명이 단절되는 사건을 여러 번 겪었지만, 어디인가에 숨겨져 있던 그들의 역사와 발전을 기록한 자료가 발견되어 문명을 재건하기를 반복하였다. 몇 차례 문명의 단절로 그들의 과학은 오래된 역사만큼은 발전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지구인 보다 최소한 수억 년 이상 앞서 있다. 멜로맴파인은 생명체가 사는 외계 행성을 찾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39억 년 전 자신들의 행성과 거의 똑같은 환경인 지구를 발견하였다.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 그들은 지구를 구석구석 탐사했으나 생명체를 찾지 못했다. 멜로맴파의 과학자들은 언젠가는 지구에 생명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외계 행성을 찾는 것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지구를 관찰하기로 결정하였다. 유로파의 깊은 물속에 로봇이 거주하는 임시 기지를 건설하여 지구를 관찰했다. 관찰을 시작하고 약 3천만 년이 지나고 지구의 어느 깊은 바다 열수구에서 우연히 RNA가 만들어졌다. 여러 문명을 거치고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을 기다린 성과였다. 어느 순간 RNA는 자신의 유전 정보를 복제하기 시작하였다. 복제에 복제를 거듭하여 단세포 생명체가 태어났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지구의 바다에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뒤덮이게 되었다. 이 무렵 멜로맴파인은 유로파에 거대한 연구 센터를 건립하였다. 과학자들까지 유로파로 이주시켜 본격적으로 지구 생명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과학자들이 가장 놀란 점은 지구 생명체의 진화 방식이 멜로맴파 생명체와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외계 생명체의 생체도 탄소 화합물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유전의 메커니즘까지 비슷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식물과 동물로 분화하여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순환시키는 것도 같았다. 생명체의 모양새, 생식 방식, 에너지 대사 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멜로맴파 생명체처럼 지구 생명체도 우주에서 가장 흔하고 안정적인 원소로 만들어졌고, 최대한 효율적인 선택을 하면서 생존하고, 번식하고, 진화하고 있다. 이런 유사성을 관찰한 멜로맴파 과학자들은 어디인가에 있을 또 다른 외계 생명체도 큰 틀 안에서 닮았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무엇보다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언제 즈음 도구를 사용하고,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수학으로 자연현상을 이해하며 과학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지적 생명체가 탄생하느냐였다. 그런데 지적 생명체의 탄생은 생각보다 그리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수십억 년을 기다렸다. 몸짓이 거대한 동물이 바다와 육지를 점령하고 있는 지구 생태계의 상황으로 분석해 볼 때 단기간 내 지적 생명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다. 어쩌면 이 상태로는 지적 생명체가 출현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멜로맴파 과학자들은 오랜 고심 끝에 처음으로 지구 생태계에 직접 개입하기로 결정하였다. 생태계를 전복시켜 진화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직경 10km 크기의 소행성을 시속 72,000km 속도로 지구와 충돌시켰다. 소행성은 얕은 바다에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엄청나게 강력한 지진이 일어났고 충돌에 의해서 생겨난 암석 파편들은 대기권 밖으로 날아갔다. 그 중에 일부는 멜로맴파인 연구 센터가 있는 목성까지 날아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암석들은 지구 중력에 붙잡혔다. 지상으로 떨어지는 암석은 대기와 마찰을 일으켜 불덩어리가 되어 떨어지기 시작했고 자전을 하는 탓에 그 불덩어리들은 지구 곳곳에 떨어졌다. 이로 인해 지구 전역은 불길에 휩싸이게 됐다. 검은 재와 먼지가 지구 전체를 뒤덮었다. 그로 인해 햇빛이 차단됐다. 지상으로 햇빛이 도달하지 못하자 지구의 온도는 점차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식물은 불에 탔으며, 타지 않은 식물은 광합성을 하지 못하여 죽어갔다. 식물이 사라지자 채식을 하는 덩치 큰 육상 동물이 먹이를 구하지 못해 가장 먼저 죽기 시작하였다. 그다음은 육식 동물 차례였다. 채식동물이 사라지면서 먹잇감이 부족해진 육식 동물도 버틸 수가 없었다. 먹이를 많이 먹어야만 하는 몸집이 큰 동물일수록 생존에 불리했다. 그렇게 75%의 동물이 지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지구인들이 공룡이라고 부르는 동물 중에서도 덩치가 큰 놈들은 멸종하였고, 덩치가 작은 소수의 공룡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생태계 최하위 포식자였던 덩치가 작은 포유류도 살아남았다. 포식자들이 멸종하면서 그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었다. 포유류는 빠르게 번식하고 다양한 개체로 진화해 나갔고, 결국 그들은 지구의 지배종이 되었다. 그렇게 영장류가 나타나고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다.
유로파 연구 센터에서 지구인 인지행동 심리를 연구하는 과학자1, 과학자2, 과학자3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서기우의 삶은 우리가 예상한 것과 매우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과학자1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피지컬 조건이 훌륭하고 운동신경도 아주 뛰어난 편이어서 성공한 운동선수가 될 것으로 보았는데 말이죠.” 과학자2가 말했다.
“맞습니다. 감정적 공감은 매우 낮고 인지적 공감이 매우 높아 경쟁에 유리한 성격적인 기질도 타고 났습니다. 운동선수가 아니면 예술가로도 크게 성공했을 수도 있습니다. 지능까지 높은 편이어서 기술적으로 충분히 훈련만 되면 예술가로도 분명 성공했을 겁니다. 감정적 공감 능력이 부족한 부분은 지능과 이성적 공감 능력으로 충분히 채울 수가 있습니다.” 과학자3이 말했다.
“동의합니다. 분명히 예술적인 재능도 있었으니까요. 타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에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경쟁에서 매우 유리한 성향을 타고 났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르게 살고 있으니 당황스럽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뜻을 따르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과학자1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성향이 높게 타고났는데 말입니다. 아무리 누나의 죽음을 겪었다고 해도 부모의 뜻대로 살다니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건 안락사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과학자2가 말했고 과학자1과 3도 한 목소리로 동의한다. “타고난 기질로 볼 때 다른 사람을 죽이면 죽였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안정적인 환경과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라고 누나의 죽음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동물입니다.” 과학자3이 말했다.
“이미 여러 차례 논의가 되었지만, 서기우뿐만 아니라 김형서의 삶도 의외로 흘러가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김형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기 어려운 성장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납니다.” 과학자1이 말했다.
“그게 정말 이상합니다. 아무리 선천적으로 감정적 공감 능력이 높다 하더라도 성장하면서 관계 안에서 공감하는 감정이 학습되지 않으면 그게 발현이 어려운데 말입니다. 김형서는 그 동안의 우리가 해왔던 연구 결과와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학자2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김형서가 범죄자까지는 아니어도 도덕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도덕적입니다. 아주 사소한 비도덕적 행위도 하지 않을뿐더러 타인에게 작은 상처를 주는 경우도 없습니다. 우리는 김형서에 대한 분석을 다시 해야 합니다.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이어서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발전할 지가 궁금합니다.” 과학자3이 말했다.
“김형서는 똑똑하고 성실한 거에 비해서 그동안 운이 지독히 없는 편이었습니다.” 과학자1이 말했다.
“맞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게 자신이 운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과학자2가 말했다.
“김형서도 시간이 지나면 서기우처럼 재미를 찾아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김형서의 뇌를 다시 스캔한 걸 아실 겁니다. 서기우에 비해 평면적인 인물이라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더 다면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자3이 말했다.
“서기우와 김형서에게 사랑에 빠지는 화학물질을 주입했는데 그 둘은 사랑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것 또한 정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과학자1이 말했다.
“그것도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두 번을 주입했습니다.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는데 반응하지 않는 것이 신기합니다.” 과학자2가 말했다.
과학자3이 잠시 뜸을 들이다 말한다. “처음에는 다른 약물을 잘못 주입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친구라니.. 말이 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합시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 양식을 일정한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착각이었을지 모릅니다.” 과학자1이 말했다.
“카테고리로 분류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카테고리뿐만 아니라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도 작은 차이가 있는데, 그 작은 차이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을 때가 많습니다.” 과학자2가 말했다.
“맞습니다. 작은 차이가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와도 같습니다. 정말 지구인의 마음은 뻔해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굉장히 미스터리합니다.” 과학자2가 말했다.
“그래서 지구인의 연구가 재미있습니다. 지구인은 멜로맴파인보다 훨씬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지구인이 우리보다 유일하게 예술적으로 뛰어난 이유가 바로 그 미스터리함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구인은 수수께끼라는 물로 채워진 넓고 깊은, 푸르고 검은 바다와 같습니다.” 과학자3이 말했다.
과학자1, 과학자2, 과학자3은 서기우와 김형서의 연구가 재미있고 앞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흥분된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