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서의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기우는 더듬거리며 말한다. “U... F... O요?”
“네. UFO요. 요즘은 UFO라고 하지 않고 UAP라고 한대요.”
“맞아요. 요즘은 UAP라고 한다고. 아마 Unidentified Aerial Phenomenon의 약자인 것 같더라고요.”
마치 길을 가다가 친한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반갑게 형서가 말한다. “맞아요. 비행기 탐조등, 풍선, 운석, 인공위성 같은 걸 UFO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비행 물체라고 하지 않고 확인되지 않은 현상이라고 부른다고 해요.”
“그렇군요. 그런데 어디서 봤어요?”
“집 앞에서 봤습니다. 늦은 밤에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봤어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밤이 좋더라고요.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어서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도시의 불빛 탓에 별이 보이지 않고 달만 덩그러니 떠 있는 밤이었어요. 달 주위에는 희미한 구름이 어슴푸레 보였습니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하늘을 한참 보고 있었어요. 그렇게 보고 있는데 새까만 하늘에서 갑자기 작은 빛 하나가 깜빡깜빡하는 거에요. 저게 뭐지? 인공위성인가, 했는데 그 빛이 점점 커지면서 타원형으로 변하고 깜빡이지도 않더니 뫼비우스 띠 모양을 그리면서 하늘을 유유히 날아다녔어요. 제 눈은 그 빛을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머리 위로 날아와서 멈추더니 고도를 낮추더라고요. 그렇게 몇 분 정도 머리 위에서 머물다가 어디론가로 빠르게 사라졌어요. 사라지고 나서 저는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밤하늘을 보다가 집으로 들어갔어요.”
“말 그대로 확인되지 않은 공중 현상이네요. 무엇이었을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빛을 오래 보고 나면 눈에 빛의 잔상이 한동안 남아있기도 하잖아요. 그런 종류의 착시, 환시. 뭐.. 그런 증상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제 제가 많이 피곤하기도 했거든요. 너무 피곤해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어요.”
“그럴 수도 있지만 설명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단순한 착시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요. 혹시 진짜 외계생명체가 타고 온 비행선이 아니었을까요? 외계생명체가 형서 씨를 지켜보다가 들킨 거죠. 하하.” 기우가 소리를 내서 웃는다.
형서도 따라 웃는다. “하하. 그러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럴 리는 없죠. 지구로 비행선을 보내는 외계생명체가 그렇게 허술할 리도 없고요. 그렇다고 쳐도 외계생명체가 80억 인구 중에 저를 지켜볼 이유도 없고, 외계생명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봐요. 우주의 크기가 엄청나니까 확률적으로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다소 흥분을 감추지 못한 말투로 형서는 말한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우주에 지구, 금성, 목성 같은 행성이 지구에 있는 모래 수보다도 훨씬 많다고 하더라고요. 도대체 이 우주는 얼마나 크다는 말이에요. 이렇게 어마하게 큰 우주에 지구에만 생명체가 있을 리가 없다고 봅니다.”
“우주가 생긴지 138억년이 되었다고 하잖아요. 크기뿐만 아니라 시간도 엄청난 거죠. 어떤 행성에서 생명체가 있었다가 지금은 없어졌을 수도 있고, 또 어떤 행성에는 지금은 생명체가 없지만 새로이 생겨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오늘 오전에 TESS 우주망원경으로 외계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외계행성을 새로 발견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저도 그 기사 봤어요. 지구의 모래알보다 행성이 많은데 그런 골디락스 존도 많을 거고 그 중에 분명 외계생명체가 분명히 존재할 거에요.”
“재미있습니다.” 기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뭐가요?”
“형서씨와의 대화가요.”
“그래요? 재미없어서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그나마 저랑 얘기하는 게 재미있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재미있어요.” 형서는 미소를 지으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재미없는 삶을 사는 사람의 재미있다고 하는 말에 기분이 좋다. ”이 카페 자주 오거든요. 커피 맛과 향이 항상 일정해서 좋아요. 찐하고 쌉쌀하고 고소하고 거기다가 표현하기 힘든 풍미가 있어요. 그런데 사귀지는 않지만 만나는 사람과 있을 때는 재미가 없어요?”
“가끔 재미있기도 하죠. 지금처럼 대화가 즐거웠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건 아마 그 친구가 자신의 생각을 잘 얘기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지 않는 다고요?”
“본인의 생각을 그대로 얘기하지 않고 제 생각에 끼워 맞춰서 말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어떤 영화에 대해서 얘기할 때 자기가 느낀 점을 솔직히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를 살펴보고 거기에 맞춰서 말하는 거죠. 나도 그렇게 봤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처음에는 나에게 호감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좋아 보이기도 했는데 그런 게 계속 반복되니까 오히려 매력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분이 그러는 게 저는 이해가 되는데요. 자신은 좋아하고 상대는 그만큼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행동이잖아요. 짝사랑하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오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여자 분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생각이 같고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해서 무조건 좋고, 무조건 호감이 올라가는 건 아닌데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자신과 달라서 오히려 호감이 가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죠.”
“동의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부자연스럽고 서투르게 행동해서 관계를 망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테이블에 놓인 기우의 전화기가 진동한다. 메시지가 오는 알림이다. 메시지 세 개가 연달아 오면서 전화기의 진동이 계속된다. 기우는 전화기를 들어 화면에 뜬 알림을 확인한다. 윤희에게서 온 메시지이고 내용은 확인하지 않는다.
“오늘은 참 운이 좋은 날이에요.” 기우가 말했다.
“왜요?”
“재미없어서 회사를 그만뒀는데 바로 재미있는 일이 생겼으니까요. 형서씨하고 얘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습니다.”
형서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다. “저도 재미있어요.”
“생각해 보면 저는 늘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늘 운이 좋았다는 사람이 왜 자신의 삶을 만족하지 못하죠? 그리고 10년 후에 안락사를 생각하고 있고 말이죠.”
“운은 좋았는데 그 운이 제가 바라는 방향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면 운이 안 좋은 거 아닌가요?”
“관점의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 좋은 학교를 다니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고 제 나이에서 사기 힘든 꽤 비싼 집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죠. 노력보다는 운이 더 따른 결과일 뿐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원한 적이 없고 그저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해요.”
기우는 똑똑하고 성실하지만 삶이 뜻대로 잘 안 풀리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옆에서 볼 때 그들은 참으로 운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 걸까요? 타고난 성향일까요?”
“아마 복합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전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마 뉴스를 보면 나와 저 살인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고는 했습니다. 혹시 살면서 누군가에게 살의를 느껴본 적 있어요?”
뜻밖의 질문에 형서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서 그런 적이 있나 생각해본다. 대화가 끊겼다. 침묵의 틈을 타 기우도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누군가를 지독히 미워한 적은 있었는데 살의를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형서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어간다. “지독히 미워했다는 거와 살의를 느꼈다는 거랑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저는 살의를 느껴본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