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부딪히고 까여봐야 알 수 있는 것들
‘밀당’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은 건 27살 때였다. 두 번 데이트한 남자가 사귀자고 했을 때 망설임 없이 바로 ‘yes’라고 답했다. 일본 자유여행의 일행이었던 남자였고, 현재의 남편이다. 내가 바로 승낙하자, 그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난 이 시점에 사귀자고 하면, 네가 밀당을 할 줄 알았어.” 밀당이라는 전문 용어(?)의 존재를 그때 처음 알았다. 밀고 당기기. 솔직히 그런 식의 머리싸움을 하는 건 귀찮아서 지금도 잘 하지 않는다.
밀당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누군가에게 까이거나 거절당하는 건 싫어한다.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이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할 기미가 보이면,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다. 책쓰기를 처음 할 때도 비슷했다. 4년 전, 혼자서 첫 원고 투고를 할 때 원래는 호기롭게 3군데 출판사에만 원고를 보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느낌상 세 곳 모두에게서 거절당할 것 같았다. 거절당하기 싫어서 3군데를 5군데로 늘렸다. 그러나 다섯 곳의 출판사에 보내도 여전히 까일 위험성이 높아 보였다. 에라, 모르겠다. 더 많이 보내야겠다. 수십 군데 보내면 어디 하나라도 내 원고를 받아주지 않을까. 지금 보내는 게 전부 까이면 다른 곳에다 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5군데를 8군데로 늘렸고, 결국 두려움에 손을 벌벌 떨면서 이 출판사, 저 출판사로 원고를 보내는 상황이 됐다. 더 많은 출판사로 투고하다 보면 이 중에 한 출판사는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한 달 이내에 무조건 출간 계약을 해보는 게 목표였다. 한 군데만 나를 받아주면, 거절당하는 게 아니니까.
결국 원고 투고에 성공해 기획 출간으로 책을 냈고, 이후 나는 책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주로 청소년 도서 위주로 책을 썼고, 성인을 위한 책인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까지 지금까지 6권의 도서를 출간했다. 현재 집필을 끝내고 출간을 위해 교정 중인 원고가 2개 있고(한 권은 브런치 북 <예민한 당신을 위한 대화 생활백서>를 기반으로 한 에세이고, 다른 하나는 곧 출간될 청소년 교양서다), 지난주에 청소년 도서 원고를 하나 더 계약했다. 이번이 9번째 출간 계약이다. 성인 책을 내는 데에는 책 한 권을 낸 초보니까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할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청소년 책은 집필 경험이 쌓였으니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을 받는 일도 종종 생긴다.
지금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즐거운 일이 가득했을 것만 같지만, 회피형 인간이 싫어하는 상황도 맞이했다. 출간에 이르는 과정, 출간을 하고 나서도 쉽지 않은 순간은 찾아온다. 원고 미팅을 하러 나가서 내가 짠 목차나 내용을 전부 뜯어고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분명 인세가 들어와야 할 시기 같은데 통장에 아무런 숫자도 찍히지 않을 때, 내가 책을 낸 사실을 아무도 몰라 책의 판매지수가 형편없을 때... 거절당하는 듯한 느낌에 휩싸이는 순간은 꽤 많았다.
한 번은 책 작업을 하면서 원고 수정할 것이 왔는데 (보통 교정본의 경우, 정식으로 책의 디자인이 얹히기 전에는 한글 파일로 교정본이 오고, 책의 디자인으로 얹히면 pdf 파일로 온다), 파일을 열어보니 수정사항이 250개 정도 적혀 있었다. 파일을 열어본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 원고가 이렇게 형편없었다니! 자책감과 좌절만으로 괴로운 건 아니었다. 200개가 넘는 부분을 일일이 살펴보고 새롭게 내용을 찾아보며 고쳐야 하는 막막함에 눈물이 차올랐다. 실제 그날부터 한 주간 울면서 원고를 고쳤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일도 생긴다. 출판사 분들을 만난 담소를 나누는 자리였다. 편집자분의 직설화법이 날아왔다. “작가님 글은 너무 빽빽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보다 더 많이 팔릴 것 같은데 기대한 것보다는 덜 팔리는 것 같아”. 역시나 소심한 인간은 이런 류의 이야기에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음의 상처를 뒤로 미루고 객관적 정보만 곱씹어 보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나는 정보를 박박 긁어모은 다음, 글에 거의 쏟아붓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글이 빽빽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 편집자분은 정말 악의 없이 솔직하게 말씀하셨고, 나는 이런 식의 직설화법을 좀 좋아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람이라기보다 가르치는 사람처럼 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계속 고쳐가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물론 아직 극복하지 못한 까임은 있다. 나는 얼굴 모르는 독자로부터 비판받는 걸 무서워한다. 인터넷상에서 내 책의 서평을 굳이 찾아내 읽어보며 일희일비하는 고약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청소년 도서나 해당 카테고리의 저자는 애당초 주목을 많이 받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많이 까이지 않지만, 성인을 위한 책은 이런저런 평가에 놓이기 쉽다. 책을 한 권 두 권 세상에 내놓을수록 까이는 일의 빈도는 더 잦아지기 때문에, 집필을 하면서 두려운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출간 후에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다채롭게 비판받을지 떠올리면서 겁에 질려 떨기도 한다.
그러나 안도할만한 사실이 있다. 책을 사랑하는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책이나, 책 쓰는 사람에 큰 관심은 없다. 엄청나게 유명한 작가가 아니고서는 세상은 글 쓰는 사람에게 크나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책이 비판을 받더라도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까임(?) 정도다.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비판도 있지만, 가끔은 합리적인 비판을 만나서 내 글의 개선 방향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책을 한 권 두 권 낼수록 까이는 것에 내성이 조금 더 생기는 면도 있다. 누군가가 내 책을 비판하거나 책이 안 팔리는 것에 대해서도 여전히 두렵지만, 예전보다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건 모두 글을 쓰고 책을 내고 까이면서 쌓인 멘탈과 요령이라 볼 수 있다.
글을 잘 쓰는 이웃분들에게 책 쓰기를 권할 때 많은 분들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제 글과 기획이 아직 책을 낼만한 자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 같아서요”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책을 낼만한 정도’나 ‘주제’, ‘자격’ 같은 걸 처음부터 갖춘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투고를 하고, 책을 집필하는 단계를 밟으면서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책을 내기 위해 수십 시간 앉아있고, 투고를 위한 기획을 해서 까이고, 편집자에게 피드백을 받아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완성형 글로 출판사에서 주목받아, 완벽한 책을 내서 처음부터 흥행하고, 호평이 쏟아진다면 좋겠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0.000001% 정도가 아닐까. (드라마도 이런 스토리라인으로 구성되면 흥행에 참패한다) 투고부터 출간까지는 대다수 몸으로 부딪히고 직접 까여야 얻게 되는 교훈이 많다.
아무렇게나 글을 써서 투고를 하라고 권유하는 건 아니다. 먼저 투고나 공모전 도전 등의 시도 마감 날짜를 정해 놓은 다음, 투고할 만한 내용이 무엇인지, 어떤 책을 기획해야 독자에게 가닿을 수 있는지 치열하게 고민을 하고 출판사에 보내는 것이 좋다. 내 경우에는 첫 투고 전에 내 이름이 박힌 책을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3년 정도 품고 있었다. 그 3년 동안 샘플 원고를 꾸준히 쓰려고 해 봤지만 마감이 없으니 첫머리만 쓰고, 4쪽 이상 글 쓰는 게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6월 1일까지 원고 투고를 해봐야겠다고 스스로 마감 기한을 정했고 그 직전 3주 동안 20쪽 정도 되는 샘플원고와 짧은 분량의 출간 기획서를 전부 완성했다. 마감이 정해져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까이는 일에 너무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누군가 내 글을 거절하거나, 지적한다면, ‘네 글은 글러먹었고 너는 재능도 없고, 영원히 거절당할 것이다’라고 알려주는 신호가 아니다. 개선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신호등 정도로 생각하는 게 낫다. 내 글은 왜 계속 거절당하는 건지, 나는 왜 재능이 없는 건지 슬퍼하는 건 어느 정도 기한까지 하는 게 좋다. 슬픔의 바다에 빠져 익사하기 전에(물론 나도 이런 적이 있다) 머리를 굴리고 원인을 분석해보는 게 여러모로 이롭다. 내가 거절당한 이유가 뭔지, 고칠 점이 무엇인지 찾아보면 글쓰기든 책쓰기든 실력이 개선된다.
당신이 책을 쓰기를 원한다면 내 글을 누가 알아주지 않는가 ‘밀당’ 하기보다는 ‘까이면서 깨닫기’를 권해본다. 내가 쓴 책 한 권, 물성을 느낄 수 있는 그것을 본다는 건 어마어마하게 소중한 경험이다. 내가 책 출간을 했는지 아닌지 아무도 모르고 인기를 끌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안에 담긴 글을 쓰기 위해서 들였던 시간, 노력, 정성 그 모든 건 고스란히 당신 손에 남는다. 저자가 되기를 원했던 누군가가 죽음에 다다를 때 ‘책을 내려고 원고 투고도 했지만 100번 까였어’를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이름 박힌 책을 내려고 했지만 평생 때를 기다리다 시도조차 못했어’가 더 슬프고 후회되지 않을까.
투고한 원고가 거절당했을 때: 서점에 출간된 유사 도서, 경쟁 도서를 살펴본다. 만약 내 책이 운 좋게 출간되더라도 유사 도서 속에서 살아남을 만한 방법이 있는지 차별화할 수 있는 점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게 좋다. 특히 책 쓰기를 할 때에는 독자의 입장에서 어떤 책에 끌리는지 많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 책에 담긴 글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인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독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될지 늘 살펴야 한다. 책은 누군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읽는 것이니까.
편집자의 원고 피드백이 가혹하게 느껴질 때 : 의견 조율이 중요하다. 책을 내는 건 근본적으로 편집자와 기싸움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한 협업 과정이니, 합리적인 비판이나 수정사항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의견을 개진할 것이 있으면 큰 감정을 담지 않고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 편집자가 원고의 첫 번째 독자고 중요한 존재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편집자의 이야기를 너무 확대 해석하거나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면서 도리어 오해가 쌓이기도 하니 이런 점에 주의해야 한다.
고생 끝에 책을 세상에 내놓았으나 아무 주목받지 않고 안 팔릴 때 : 슬픔이 밀려오지만(나도 당연히 이런 슬픔을 자주 느껴봤고 앞으로도 느낄 것이다) 세상에는 팔리는 책보다 안 팔리는 책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좋다. 한 번에 주목받고 성공하는 작가도 있으나 몇 번의 책 출간을 거치면서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 저자도 있다. 한 권 한 권 내다보면 요령이 늘고, 언젠가는 출간을 제안받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 아쉬움과 슬픔이 느껴진다면, 다음 책을 생각해볼 단계다.
내 책에 대한 부정적인 평을 읽거나 들었을 때 : 합리적인 비판은 곱씹어 볼만하다. 날카로운 말속에서 내 글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도 하니까. 일단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오면 내 의도와는 다르게 글이 독자에게 읽히는 경우도 많으니 약간 마음을 내려놓는 자세도 필요하다. 물론 말도 안 되고, 오해와 어이없는 비난으로 점철된 악평도 있다. 사실 이런 비난은 내 책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타인의 결과물을 비난할 마음만 가득한 상대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에는 ‘그래도 남의 결과물을 비난만 하려는 너보다, 열심히 노력해 책 한 권 출간해본 내가 낫다’ 정도의 정신승리가 필요하다.
1. 3월 한 달 동안은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을 쉬고 책쓰기에 대한 글을 발행합니다. 예전에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매거진에 썼던 글 중 책쓰기에 관련된 글 몇 개는 이 곳으로 옮겨봅니다.
2. 얼마 전에 마음을 적어 올린 글이 즉흥적으로 쓴 내용이라 부끄럽고 민망해 얼른 지우려고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발행한 글이고 이미 읽어주신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지우지는 않았어요. 괜히 이상한 걱정을 끼쳐드려 이웃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