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처음 브런치에 가입한 뒤 제7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당선자 발표 화면을 보았다. ‘새로운 작가의 탄생’이라는 커다란 문구.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음 해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꼭 도전해봐야겠다 다짐했었다.
올해에도 이런게 떴음
결심 후에 한 일은 기존의 프로젝트 당선작 분석이었다. 중요한 시험을 볼 때도 기출문제를 먼저 분석하는 게 먼저니까. 기존에 대상 받은 작품들을 분석하면 적절한 전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당면 과제가 있으면 머리로 분석을 먼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다. 내 습성대로(?) 며칠간 기출문제 풀 듯 프로젝트 당선작들을 꾸준히 살펴보았다.
오늘은 그 때 생각해 본 결론을 얘기하려 한다. ‘내 평범한 이야기가 어떻게 책이 될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글을 책으로 기획해야 할까'에 대한 나름의 답일 수도 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는 유명한 작가를 뽑아 출간하는 데 목표를 두는 공모전이 아니다. 주로 신인 저자가 뽑히기 때문에, 출간 후 저자의 지명도에 기대어 출판사가 책을 홍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기획의 참신함이나 매력 포인트를 중점으로 응모작을 살펴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런 상황 아래에서 뽑힌 당선작의 주요한 경향이 있다.
이야기하기 전에 당부드릴 점이 있다. 첫째, 내가 말씀드리는 내용이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을 지름길이거나 전략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당선작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경향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정답, 지름길, 전략 등의 말을 모든 상황에 통용하는 걸 싫어한다) 두 번째로, 브런치북 당선작으로 뽑히는 데 있어 기획이 중요하긴 하겠지만, 당연하게도 일정한 수준의 글솜씨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시나 소설 등의 분야의 브런치북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 출판사들이 앞으로 이 공모전에서시나 소설에 해당하는 작품을예전보다 더 많이 뽑을 거라는 느낌이 들긴 한다. 그렇지만 이런 분야는 내가 분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야기하는 기획의 특징은 주로 에세이나 인문교양서 등을 대상으로 한다.
당선작은 다음의 몇 가지 주요한 특징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명확하고 구체적인 타깃 독자가 존재하는 경우
브런치북 프로젝트 수상작 중 하나인 정지음 작가님의 <젊은 ADHD의 슬픔>은 조금만 읽어봐도 지은이의 글 솜씨와 필력에 감탄이 나오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글을 본격적으로 읽지 않고, 제목이나 타깃 독자만 고려해 봐도 이 기획이 충분히 매력적임을 알 수 있다. 아마 작가님 외에도 성인 ADHD 증상으로 말 못 할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계셨을 것이다. 가족이 ADHD로 판별 받아 이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원하던 분들도 계실 것이다. 이런 분들의 눈길을 먼저끌 만한 주제이기도 하고, 실제 글을 읽으며 정보와 공감, 위안,재미를 함께 얻을 수 있다.
이처럼 나의 이야기, 경험담이 누군가에게는 공감이나 정서적 위안, 구체적 방법 등의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렇게 내 글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이 그대로 타깃 독자가 된다. 명확한 타깃 독자를 가지고 있다면, 책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가령 내가 어떤 심적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를 차근차근 마주하거나 극복한 과정을 이야기해볼 수도 있고, 채식을 시작하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경험자로서 그 방법과 의미를 상세히 알려줄 수도 있다. 이른 은퇴를 준비하는 분에게 은퇴를 하면 어떤 삶이 펼쳐지는지 등을 알려줄 수 있으며, 처음으로 이민을 가서 생활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처음으로 부동산을 구입한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원고를 끌고 가본다면, 새로운 책이 탄생할 수 있다. 다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다룬 책이 이미 출간되어 있는지 미리 살펴보는 게 좋다. 기존에 출간된 도서와 어떻게 차별화된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을지 충분히 고민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2. 육아나 자기 계발, 재테크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엮는 경우
1번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일 수 있다. 육아나 재테크, 자기 계발 등의 주제는 타깃 독자를 명확히 세우기 쉽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다. 브런치북 당선작 중에서도 사회초년생이 재테크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요령을 알려주는 당선작(Toriteller 작가님의 <사회초년생을 위한 재테크 튜토리얼> )도 있었고, 사수가 없는 상황에서 자기 계발을 하며 직업 세계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언급해주는 브런치북(이진선 작가님의 <사수 없이 일하며 성장하는 법>), 실무자에게 긴요한 브랜딩 실무서(박창선 작가님의 <어느 날 대표님이 우리도 브랜딩 좀 해보자고 말했다> 등도 있었다. 이런 책은 사회초년생이나 자기 계발을 원하는 이들, 브랜딩 업무를 맡게 된 실무자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외에도 자신이 독특한 방법으로 재테크를 했거나, 직장에서의 나만의 방법으로 업무 문제를 풀어갔다면 이 역시 모두 책의 소재가 된다. (지금까지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는 본격적인 자기 계발서보다 에세이와 결합해 내 이야기를 기술한 내용을 많이 뽑는 경향이 있기는 했다)
에세이가 아닌 인문서도 이런 분야와 결합하여 흥미롭게 내용을 엮어갈 수 있다. 제 7회 공모전에는 이진민 작가님의 <철학하는 엄마>라는 브런치북 당선작이 있다. 나처럼 육아를 하고는 있으나 '도대체 뭐가 맞는지 마음이 흔들리는 엄마'들에게 도움을 줄 만한 철학적 시선을 담고 있는 브런치북이다. 철학 × 육아의 분야가 결합되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육아를 하는 엄마들이 관심을 보일 수 있기에 철학 이야기라 해도 타깃 독자 역시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비슷한 발상을 해볼 수도 있다. 가령 역사적 내용을 다룬 책은 세상에 충분히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자기 계발이나 인생 성찰을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역사 속 이야기를 엮는다면 그것 역시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 감정이나 심리, 화법,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 역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라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만한 책이 탄생할 수 있는 분야다.(관련 커리어가 있거나 전공을 하신 분들이 아무래도 이런 책을 많이 쓰신다) 이 역시 정보나 사실을 그냥 나열하는 것보다얼마나참신한 주제를 중심축으로 하여 내용을 엮었느냐, 독자에게 어떤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느냐에 따라 책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3.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주제와 관련을 지을 수 있는 경우
작년에 <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라는 책을 보았다. 이 책을 쓰신 작가님은 공기업에서 퇴직하신 후 경비원, 주차관리원, 청소부, 배차원으로 일하신 분이다. 그 일터에서 겪은 현실을 담담히 써 내려 가면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건네는 책이다. 이야기는 단순히 저자분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노인 노동자, 시급 일터에서의 삶이 어떠한지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이처럼 개인의 경험이라 해도 조금 깊게 더 살펴보면 이 경험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나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뿌리 깊게 맞닿아 있는 이야기가 있다. 노동이나 인권, 기후변화, 동물권, 젠더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과 연관된 사회적 이슈가 있다. 잘 살펴보면 작가분의 직업이나 개인적 경험이 이런 사회적 이슈와 맞닿아 있는 브런치북 프로젝트 당선작이 꽤 있다. 이 경우 업무를 수행하거나 관련 경험을 하면서 해당 문제에 대해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있거나 깊은 감정을 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활자로 풀어내면, 개인의 경험을 벗어나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담은 책으로 탄생할 수 있다.
거창한 이야기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가령 기후변화를 염두에 두고 소비에 대한 고민을 했거나, 자영업을 했는데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된 상황으로 어려움에 처한 적이 있다던지, 한국에서 특정 연령대 또는 사회적 소수자로 지내며 겪게 된 고정관념이나 차별 문제를 적어볼 수도 있다. 가족이나 타인의 돌봄을 담당함으로써 맞닥뜨린 우리 사회의 돌봄 노동의 문제를 직접 경험하게 된 이야기 등을 다루는 것도 가능하다. 사회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당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셈이다.
인문학 이야기나 과학 등에 관련된 이야기도 동물권, 젠더 문제, 기후 변화, 인권이나 노동 문제, 감시사회 등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엮어 가면(특히 이런 주제가 독자들의 삶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 의미 있는 책으로 탄생할 수 있다.
4. 개인의 경험, 취미, 직업이 세계를 바라보는 창이 되는 경우
2021년 올해의 책으로 뽑힌 김소영 작가님의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분은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신 적이 있고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신 분이다. 작가님은 어린이의 세계를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어린이라는 존재 뿐 아니라 이를 하나의 창으로 삼아 우리 주변 이웃의 삶,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따스하고 깊이 있게 풀어낸다.
이처럼 하나의 취미나 경험, 직업 세계를 경험하다 보면, 그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지거나 확장되는 경우가 있다. 사소하고 소박한 주제라도 좋다. 식물을 키우거나좌충우돌하며 초보 운전을 하거나, 독서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을 오랫동안 운영한다거나, 다양한 동호회를 두루두루 거쳐봤거나, 연예인덕질을 미친 듯이 해봤거나, 이런 경험이 별 것 아닌 듯 느껴져도 모두 글을 쓰기 위한 자양분이 된다. 언어를 다루는 일도 마찬가지다. 외국어를 번역하거나 시를 꾸준히 쓰거나 읽으면서 언어의 창을 통해 인간의 감정이나 경험, 인간관계, 세상의 모습 등 어떤 분야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이런 이야기 역시 책의 주제로 확장될 수 있다.
일상 속 이야기도 어떤 중심축을 두고 엮느냐에 따라 의미 있는 책이 될 수 있다. 가령 제6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의 수상작인 김버금 작가님의 「당신의 사전」이나, 손화신 작가님의 「어른 안 하겠습니다」와 같은 브런치북의 경우, 각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어린이와 같은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 등을 중심축으로 하여 섬세하게 엮어진 이야기다. 평범한 일상 속 이야기라 해도 주변의 것들을 주의 깊게 관찰을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통로로 삼으면 그것 모두가 책의 소재가 된다.
교양서 역시 마찬가지다. 수학이나 과학, 미술이나 철학, 역사 등의 분야를 통해 새로운 분야나 세상을 살펴보는좋은 책이 탄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책으로 엮을 수 있는 참신한 중심축을 잘 세우는 게 관건이 된다.
이렇게 몇 개의 특징을 중심으로 하여 책의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드렸다. 그렇지만 나처럼 분석 좋아하는 인간의 맹점이 있다. 머리로 하는 분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실제로 인생에는 머리로 하는 분석이나 전략이 가닿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2020년에 긴 분석과 전략 세우기 과정을 거친 결과, 나는 어린 자녀에게 경제교육을 하고픈 부모들을 타깃으로 (자녀교육 x 경제 관련 교양서) 정도의 분야를 결합한 글을 써서 응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선이 안 되면 출판사에 투고해봐야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내 글을 꾸준히 읽어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2020년에 계획한 브런치북을 쓸 시간도 없었고 정신도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책이 될 거라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명화에 관련된 인문교양 에세이인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을 통해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수상을 했다. 내 글쓰기 실력이나 소양이 엄청나게 뛰어나서 당선됐다고 이야기하고픈 게 아니다. 그냥 인생에는 우연이 겹쳐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아주 빈번히 일어나므로, 머리로 하는 분석은 늘 어긋날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다.
게다가 이번 제 10회 브런치북 프로젝트는 40편의 특별상 수상과 출간 기회가 더 있다. 분명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당선작이 나올 것이고, 생각지 못했던 기획의 책도 나올 수 있다. 기발한 기획이 아니라도 놀라운 글솜씨나 새로운 가능성을 통해 책이 될 브런치북 역시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내 책을 출간하는 것의 의미를 말씀드리고 싶다. 책을 출간하고 나면 뜻밖의 독자들이 고마움이나 공감을 건네주시는 경우가 있다. 내 이야기가 책이 되어 나오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거나 행복, 재미를 안겨주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책을 쓰면서 내 세계가 한 발 더 확장되는 걸 느끼기도 한다. 단순한 출간의 기쁨을 떠나 이런 것들은 상당히 뭉클한 경험이다.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내 이야기는 책이 되기에는 무용하다'라고 생각하시지 않으셨으면 한다. 어떻게 엮고, 어떻게 풀어낼지 심사숙고하는 과정을 거치면, 많은 이야기가 충분히 책이 될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뭉클한 경험을 많은 분들이 해보시길 바라며 응원을 보내드린다.
* 윗 글에서 언급된 브런치북들은 내용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사례라 생각되어 언급된 작품들입니다. 더불어 출간된 도서의 제목이 아닌 처음에 만들어진 브런치북의 제목으로 표기했음을 말씀드립니다.
1. 9월에 새롭게 출간될제 에세이(<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을 바탕으로 한 인문교양 에세이입니다)의 제목 투표를 출판사 블로그에서 진행한다고 해요. 화요일(8월 16일)까지 진행된다고 하니까(댓글 남겨주신 분들 중 3분 정도를 선정해서 출간 이후에 책을 주신대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