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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Mar 08. 2022

안녕하세요, 편집자님    

책쓰기, 편집자와의 협업


 도서관 인문실에서 ‘편집자란 무엇인가’(김학원 저, 휴머니스트)라는 책을 발견했다. 출판 편집자들을 위한 교과서라 불릴 만한 책이었다. 흥미롭게도 책 후반부에 ‘편집자가 원하는 저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다양한 편집자들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인 듯싶은데, 그중 ‘a를 말하면 깔끔하게 a로만 받아들이는 저자’라는 응답이 눈길을 끌었다. ‘이런 저자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부분에는 ‘a를 말하면 b, c, d, 까지 과대망상을 하는 저자’가 있었다. (동일한 편집자분이 남긴 답인 듯 싶다)


 웃음이 나왔다. 첫 책 작업을 할 때 나 역시 과대망상 환자였기 때문이다. 합정에서 첫 미팅을 위해 담당 편집자를 만날 때부터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첫 책을 계약한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출판사의 누군가에게 내 글이 평가받는다는 사실에 두근두근했다.  


 초고를 완성해 출판사에 보낸 뒤부터 편집자가 보낸 짧은 피드백 한마디에 일희일비하기 시작했다. ‘편집자가 a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멘트를 보냈는데 사실 그 외의 부분에서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 아닐까? , '이 원고에 고칠 부분이 심각하게 많은데 내가 곤란할까 봐 이야기 못하는 거 아닐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편집자 메일을 기다리다 잠들던 기억이 난다. 머릿속 상상도 폭주했다. 가장 두려운 생각은 ‘출판사가 이러다가 내 원고를 영영 잊어버리고, 나랑 맺은 계약을 취소해버리는 거 아닐까?’였다. 1차 교정본을 보냈는데 한 달 정도 별다른 피드백이 오지 않을 때 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그 시기는 연말이라 출판사가 바쁜 때였다.

  

 어떤 대상이든 주의집중을 하고 몰입해 생각하다 보면 과도한 감정이나 생각, 의심을 품기 쉽다. 그 의심과 감정을 밖으로 뱉지 않으면 더더욱. 지금이나 그 때나 나는 편집자에게 추가 질문이나 요구 사항을 잘 말하지 못하는 저자다. 심지어 메일로 계약하고 연락을 주고받은 한 편집자에게는 책 작업이 끝날 때까지 직급을 물어보지 못했다. 뭐라고 부를지 몰라서, 메일을 보낼 때마다 어색하게 ‘편집자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로 시작했다. 심지어 편집자분의 성향도 나랑 비슷해서 자신의 직급을 메일로 이야기할까 망설이다 말았다고 한다. 나중에 만났을 때에야 이 분의 직급이 차장님인 걸 알았다. (진즉 알았으면 '차장님, 안녕하세요'라고 메일을 시작했을 텐데)


 직급에 대한 건 비교적 사소한 문제지만, 책 출간과 계약에 관한 건 자못 심각하게 느껴지는 문제다. “교정 진행이 어디까지 왔나요?” “계약서의 A 부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요?” 식으로 그냥 물어도 될 걸 첫 책 작업할 때 끙끙 앓으면서 상상에 상상을 거듭했고, 비극적인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편집자의 말을 확대 해석하며 쉐도우 복싱하듯 혼자 괴로워하고는 했다.  






 생각의 전환점은 의외의 시점에 찾아왔다. 내 원고를 담당하던 편집자가 퇴사할 때였다. 한창 교정 작업 중에 편집자의 메일을 받았다. ‘건강 문제로 인해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마무리는 차장님이 해주실 거예요’라는 메시지였다. 심지어 비슷한 사건은 세 번째 책 작업까지 되풀이됐다. 첫 번째 책은 세 번째 교정을 앞두고, 두 번째 책은 초고 보내자마자, 세 번째 책 역시 책의 마무리를 앞두고 담당 편집자들이 퇴사했다. 아니, 출판업계는 왜 이렇게 퇴사율이 높은 거지? 혹시 내 원고가 너무 힘겨워서(?) 편집자들이 다들 손을 털고 어디론가 도망가는 건가? 


 역시나 또다시 비극적인 시뮬레이션을 돌리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대부분의 밥벌이가 그렇듯 이 직업에도 무언가 말 못 할 고충이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남은 교정은 부장이나 차장급의 편집자분들과 마무리하게 되었는데, 이 분들의 고충도 대략 짐작이 갔다. 나 역시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며 일하다 괴로움에 몸 부린 친 기억이 있었으니까.     


 


이후 직장인의 입장에서 편집자라는 직업을 바라보게 되었다. 지나친 환상이나 기대감을 약간은 거두어 냈다. 내가 만난 편집자들은 대체로 책과 책 만드는 일에 대한 애정이 큰 이들이었다.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독서모임을 따로 꾸리는 편집자도 있었고, 책 이야기만 하면 눈빛을 빛내는 편집자도 있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애정과 별개로 편집자들은 직장에서 1년에 몇 권씩 책을 편집해야 하는 이들이었다.  일을 위해 책과 저자를 만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책을 기획해야 하고, 기한을 지켜 편집을 끝마쳐야 하고, 가끔은 까다로운 저자와 협업해야 하고, 책의 디자인이나 표지를 두고 고민해야 하고, 신간 보도 자료도 써야 하고, 할 일이 적지 않아 보였다.  심지어 담당하는 원고가 역시 내 것뿐 아니라 1년에 여러 편 될 것이 뻔했다. 애정과는 별도로 책 판매에 대한 압박감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직장인의 고충을 떠올리면서 편집자와의 협업을 위한 아주 간단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마감 기한을 잘 지키기. 원고에 필요한 그림 파일이나 사진 자료 등이 있으면 가급적 저작권을 사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파일을 넣기.(이건 저자마다 신념과 원칙이 다르겠지만 나는 일단 책 작업을 여러 번 거치며 이런 원칙을 세웠다)  그림 역시 깨지지 않게 용량이 큰 것으로 싣기, 자료 출처를 잘 적어놓기. 편집자 메일이 오면 늦지 않게 답을 확인해 답하기,  웬만하면 근무시간에 연락하기(물론 나는 전화 공포증 소유자라 편집자에게도 전화 연락은 잘하지 않는다. 대부분 메일이나 문자를 선호한다) 편집자의 피드백이 왔을 때 어느 정도는 열린 마음으로 대하기. 가장 중요한 건 이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지키며 초고를 써서 보내기(물론 이 사항은 마음대로 지켜지지 않으므로 초고를 쓴 이후 두 번 정도 점검을 하고 보낸다)  


 마음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어긋나거나 어렵게 풀리는 경우도 생긴다. 원고 콘셉트를 제대로 이해 못 하거나 분량을 넘치게 보내 편집자에게 어려움을 안기는 일도 있었다. 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으며 계약을 하고 글을 써서 원고를 엉뚱한 방향으로 집필하는 일도 있었다.


 작년 말에 나온 <1일 1단어 1분으로 끝내는 경제 공부>라는 책의 경우, ‘청소년 경제 100 단어’라는 가제로 재작년부터 집필하던 원고였다. 계약을 하기 전 편집자분이 보낸 출간 제안서에는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걸 제대로 읽지 못했고, 타깃 독자를 상위권 고등학생 정도로 생각했다. 책의 콘셉트나 타깃 독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추가 질문을 해야 했지만, 앞서 말했듯 질문하는 걸 극도로 민망해하는 나는 무작정 글을 써버렸다. 어려운 경제 용어와 내용으로 가득 찬 초고가 완성되었고, 결과적으로 편집자분의 피드백을 받고 원고를 대대적으로 갈아엎어야 했다. 원고의 수정 과정에서 집필한 나도 고생했지만, 편집자의 맘고생 역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원고를 쓰기 전에 적절한 질문과 협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주로 사회나 경제 관련된 청소년 책을 쓰기에 통계 자료가 들어가는 일이 많아, 자료에 관련된 조율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경제 관련 책을 쓰면서 원고의 내용상 ‘한국의 부모가 자녀 한 명당 지출하는 비용’을 집어넣었던 때가 있었다. 자료를 어떤 출처로부터 가져올지를 두고 편집자 분과 메일을 대여섯 번 정도 주고받았다. 서로 어떤 출처의 자료를 써야 할지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다. 의견이 쉽게 좁혀지지 않았지만, 길고 긴 시간 끝에 합의를 보았다.  


 미팅 때 헛소리를 늘어놓아 편집자를 당황시키는 일도 있었다. 출간 계약은 이미 끝낸 뒤, 첫 미팅을 하던 때였다. 미팅 전날부터 불안감이 샘솟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에세이를 쓸 자신이 없었다. 결국 편집자님과의 미팅 때 빙빙 돌려가며 이상한 이야기를 해댔다. ‘제가 전문가도 아닌데 이런 내용을 써도 될까요? 이 원고가 세상에 나와야 할 정당성이 있을까요?’ ‘이 원고에 셀링 포인트가 있을까요?’(나도 책의 셀링 포인트를 잘 모르지만 당시에는 아무 말이나 해댔다)  식의 질문을 내뱉었다. 실은 글 쓰는 자신감이 바닥에 붙어 있어서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을 때였다. 겁이 나니까 이 소리 저 소리를 해댄 것이다. 집에 와서 이불 킥을 시전한 다음, 나중에 솔직하게 고백했다. 에세이를 쓸 자신이 없어서 헛소리를 남발했다고. 그때 일은 죄송했다고. 다행히도 편집자가 다정하게 사과를 받아주었다.     





 

 갖가지 사건이 있었으나, 책을 출간할 때마다 편집자와의 협업을 통해 배우는 점은 있다. 어떤 책은 작업하면서 분량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독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건 좋지만, 정해진 분량만큼 원고를 풀어가야 함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작업을 통해 정확한 자료와 출처를 찾는 정밀함이 필요함을 배웠다. 어떤 원고를 쓰면서는 독자에게 이야기하듯 글 쓰는 방법의 중요성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편집자들의 태도를 통해 깨닫게 된 점도 많다. 성실한 태도나 기획력에 감탄한 적도 있었고, 책을 사랑하는 마음에 놀란 적도 있었다. 현실적인 출판 업계의 사정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닫게 된 부분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내 성향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사회과 교사였으나 1만큼의 사회적 의식도 지니지 않은 채 글을 쓰던 나였다 (솔직히 말해 현실도피형 인간인 내 관심의 중심은 현실과는 먼 곳에 있어서, 실제 세상의 흐름에 큰 관심이 없었다) 경제에 관한 글을 써도 오로지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 풀어놓는 데에만 집중하는 편이었다. 여러 편집자들과 의사소통하고 책을 쓰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바뀌었다. 사회가 흘러가는 모양에도 조금은 관심을 두게 되었고, 덕분에 내가 쓸 수 있는 글의 주제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글쓰기와 책 쓰기의 차이점은 많다. 그러나 확실한 차이점 중 하나는 이것이다. 글쓰기는 홀로 하는 작업이지만, 책 쓰기는, 특히 기획 출간을 통한 책 쓰기는 철저한 협업이다. 편집자와, 출판사와 의사소통하며 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새로운 방식의 협업을 배우는 일이다. 숨겨져 있던 글의 개선점을 깨닫게 되기도 하고, 나도 몰랐던 내 가능성을 편집자를 통해 깨우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작업은 때로는 힘들지만, 괴롭지만은 않다. 대체로 즐겁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tip. 원고를 기획하고 투고할 때:  편집자는 제1의 독자다. 동시에 책의 연출자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 원고를 책으로 내고 싶다’고 생각할 때 편집자들은 대체로 완성될 책에 대해 여러 가지 구상을 해보고 나온다. 책의 카테고리나 폰트나 표지의 느낌, 전체적인 콘셉트 등을 머리에 담고 있는 경우도 있고, 삽화가 필요하다면 어떤 그림 작가에게 맡길지 미리 생각해오는 분들도 있었다. 투고를 할 때에는 편집자의 연출 의욕을 북돋을만한 글이나 기획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게 좋다. (물론 편집자 개인 취향이나 출판사의 출간 방향마다 이것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무작정 원고를 쓰기보다 시중의 서점에 나와 있는 책들을 많이 살펴보는 게 먼저다.

편집자가 내 원고를 마음에 들어 하더라도 출판사 내부 회의를 거치면서 최종 계약이 불발되는 경우도 많다. 편집자로부터 브런치로 출간 제안 문의가 오거나 투고한 원고를 살펴보겠다는 이야기가 당도해도, 지나치게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원고가 마음에 들면 연락이 매우 빨리 오는 경우도 있긴 있다.) 출간 결정까지 2주 ~ 4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책의 출간이 불발되더라도 나중에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투고 원고에 친절히 피드백해준 편집자는 잘 기억해두자.  

  책을 일단 계약했다 할지라도 어떤 스타일로 책이 나올지 충분히 의견을 나누어 보는 게 좋다. 자칫하다가 저자가 생각지 않았던 분위기로 책이 나올 수 있다. 반대로 편집자가 생각한 콘셉트와 어긋나는 원고를 저자가 써낼 수도 있다. 샘플원고나 유사 도서를 살펴보면서 서로 어떤 스타일의 책을 생각하는지, 타깃 독자나 분위기가 어떠할지 충분히 이야기해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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