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 되던 해, 우리 집은 칼국수 가게를 시작했다. 이전의 햄버거 가게를 팔아치운 뒤 시작한 장사였다. 칼국수와 버섯칼국수 전골을 파는 대학가의 작은 가게였다. 대학가 음식점답게 가격이 저렴했다. 칼국수 한 그릇에 야채가 잔뜩 들어간 계란말이에 밥 한 공기까지 얹어주는 인심 좋은 메뉴 구성이었다. 십 대 시절의 나 역시 방학이나 주말이 되면 가게에 들렀다. 설거지를 하거나 서빙을 돕는 게 내 역할이었다.
내가 열여덟 되던 해, 대학가의 졸업식 날이었다. 아침부터 엄마는 바지런을 떨며 음식 재료를 준비했다. 작년 졸업식 날 매출이 꽤 좋았으니 기대할 만했다. 칼국수 면을 그득히 샀고 계란말이에 쓸 야채도, 전골에 넣을 버섯도 평소보다 많이 구매해 다듬었다. 엄마의 미세한 설렘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날의 가게 장사는 실패였다. 놀라울 정도로 실내가 썰렁했다. 옆의 가게들, 백반집이나 돼지갈비 집에는 손님이 꽤 북적였음에도, 그날 우리 칼국수 가게에 들른 건 고작 대여섯 팀 뿐이었다. 오후 서너 시까지의 매출 총액이 29,000원이었다. 평소와 비교해도 처참한 결과였다.
엄마를 바라봤다. 나의 모친은 속이 상해도 울상 짓거나 화를 내뱉는 사람이 아니었다. 늘 그렇듯 태연한 모습으로 가게를 지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엄마는 낭패감에 휩싸인 얼굴이었다. 조금 화난 얼굴로 재료를 치우더니 가게 문을 닫자고 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십여 년 간 엄마의 장사를 옆에서 지켜봤지만, 저녁 9시 이후가 아닌 오후 서너시에 장사를 접는 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고는 뜬금없이 나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 했다. 그 날 우리는 종로 3가의 서울극장에 향했다. 한창 흥행하던 영화 <타이타닉>을 봤던가. 기억이 정확치 않다. 영화관에서 엄마의 얼굴이 내내 어두웠던 건 기억하지만.
그 날 느지막히 집에 돌아왔다 궁금했다.엄마는 내일 가게 장사를 할까?어쩌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숨 쉬며, 장사 포기 선언을 하지 않을까. 졸업식 날만큼 그다음 날도 대학 가는 썰렁할 게 뻔하니까. -학교의 방학 시즌이었다.- 제아무리 태연한 엄마라 해도 어제의 낭패감을 쉽게 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다음 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모친은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집에서 버스로 40분 거리에 있는 가게로 향했다.말없이 냉장고를 면과 야채를 채운 뒤, 장사를 개시했다.
돌아보면 엄마는 늘 그랬다. 슬픈 결과로 낙담한 다음 날도, 아빠가 밤새 포악을 부려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든 다음 날에도-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수십 년 전 아빠는 가끔씩 포악을 부리는 사람이었다- 장사를 이어갔다. 불평이나 한탄 한 마디 없이. 두툼하게 계란말이를 부치고 야채를 썰고 칼국수 국물을 우려내는 것이 자신의 평생 임무인 것처럼.
당시엔 엄마를 보며 어른이란 으레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인내와 책임감이 어른의 덕목일 수 있겠구나. 열여덟의 내가 짐작했던 바다.
지금은 생각을 달리해본다. 어쩌면 엄마는 알았던 거 아닐까. 어제는 어제이고, 오늘은 오늘이며, 내일은 내일이라는 사실을. 어제의 낙담과 실패가 오늘의 장사를 막을 이유는 되지 않는단 것을. 그즈음의 엄마였다면, 인생 경험으로 자신의 앞날도 어느 정도 예측했을 것이다. 장사를 이토록 열심히 이어가도 서민 갑부가 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눈치챈 상태였을 것이다. - 가끔씩 생의 어떤 비밀을 꿰뚫어 보는 듯, 묘한 태도를 지닌 사람이었으니 자신의 미래도 조금은 짐작했을 것이다 - 그럼에도 나의 모친은 매일 가게 문을 열었다.
엄마의 심경을 짐작하게 된 것은 글쓰기를 하게 된 이후부터다. 흰 여백에 타이핑만 하는 행위임에도, 글쓰기에는 매일의 부침이 존재한다. 어떤 날은 5시간 내내 책상머리를 지키고 있어도 결과물이 서너 줄에 그친다. 오늘 써야 할 글이 아니라 엉뚱한 주제에 꽂혀 머릿속만 헤매다 끝나는 날도 있다. 출간하는 책의 결과가 좋지 않을 거라는 불안에 휩싸여 안절부절못하는 날도, 편집자의 피드백으로 가득 찬 교정지를 보며 막막한 기분에 휩싸이는 날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이 일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진다. 쉬운 보상을 건네주지도, 레벨업이라는 것도 가늠하기 어려운 행위니까.
그러나 노트북을 펼쳐들 때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장사 준비를 하던 엄마. 말없이 당근이며 호박이며 버섯을 다듬던 침착한 얼굴. 삶의 한탄도 슬픔의 기색도 스며들지 않은 얼굴을 기억한다. 일상에의 굴종이나 순응이 아닌, 삶을 수용한 사람의 표정. 그게 엄마의 모습이었다. 활자를 쓰고 다듬을 때마다 생각한다. 어쩌면 엄마의 피가 내게 조금은 왔을지 모르겠다고. 우직하고 느릿하고 조금은 촌스럽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자기 수련이란 단어를 가끔 곱씹어본다. 명상이며 운동이며 산책, 사람들이 자기 수련을 위해 하는 일들. 이런 행위의 공통점이라면 자아를 현재 시제(時制)에 붙들어 놓는 일이란 사실 아닐까.
이제 나는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해 준다'는 표어를 쉽게 믿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오늘 쏟는 정성이 어제의 상처를 완벽히 씻어내줄 거라는 기대도 많이 접었다. 대신 ‘그저 오늘을 살아내라’는 단순한 명령을 곱씹는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별다른 도리 없이 없이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것이 마흔셋, 내가 지금 삶을 마주하는 최상의 선택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오늘을 살게 하는 일이다. 음식에 들어갈 호박이며 당근, 양파를 손질하던 엄마처럼 나 역시 그날 쓸 재료를 머릿속으로 정갈하게 다듬고 헤아려본다. 일종의 개시(開市) 준비다. 매일의 결과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노트북을 펼친다. 애를 써도 모든 게 쓸모없는 행위로 돌아갈 수 있다. 매일의 장사는 늘 그렇듯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으니까. 현재 시제에 나를 붙들어 놓는데 처참히 실패한 채 불안에 온 몸을 내맡기는 날도 있고.
그럼에도 일단 피하지 않고 그날 주어진 여백을 채우는 것이, 아니 적어도 여백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것이 나의 일과이며, 내가 택한 삶의 정공법이다. 오늘 분량의 활자를 채워내야 하므로. 그래서, 오늘도 오늘의 글을 쓴다.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 )
제가 드디어 지난주와 이번주에 원고 마감을 하나씩 끝내고 살짝(!)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브런치에도 인스타에도 글을 쓰고 있지만, 아무래도 저에게는 원고 집필이 일 순위예요. 저자에게도 자기 홍보와 마케팅이 너무나 중요한 이 시대에, 솔직히 '원고가 1순위'라 생각하는 제 태도가 맞는 건가 스스로도 혼란스럽지만 - 솔직히 제 자신이 촌스럽고 무식하다는 생각이 이따금 찾아옵니다 - 그래도 아직은 원고를 제 때 잘 써서 넘기고픈 마음이 커요.
그만큼 원고 마감에 대한 부담도 큰 편이라 마음의 짐을 꽁꽁 싸매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두 개의 숙제를 끝내고 나니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지금이 방학이기도 하고요.
다만 다음 주에는 한 주 연재를 쉬어갈까 합니다. 벌써 이 <책 쓰는 마음> 연재도 12주를 쭉 이어왔어요. 이사 전날이나 원고 마감을 앞둔 시기에도 이 연재를 이어왔지만 이번 주에 이르니 조금 지친 상태여서, 재충전이 한 주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한 주는 쉬고, 다다음 주 2월 15일(목)에 글을 발행하려 합니다. 찾아와 읽어주시는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미리 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 읽는 분들 모두 즐거운 2월 시작하시길요.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