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칭찬을 가장 듣고 싶어 할까. 당연하게도 ‘글 잘 쓴다’는 칭찬 아닐까. 그러나 내 경우엔 ‘글 잘 쓴다’는 칭찬보다 ‘일을 깔끔하게 잘한다’는 칭찬을 더 좋아한다. 글을 쓸 때도 일한다는 감각을 느끼는 걸 선호하고, 영감이나 예술적 감각에 기대기보다 훌륭한 기능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편이다. 글의 기획이나 목적에 맞는 글을 쓰고, 텍스트의 분위기나 강약을 조절하는 데 주력한다. 글쓰기 분야의 숙련된 기술자가 되는 게 내 궁극적인 목표다.
이런 성향은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던 시기와 관련이 깊다. 휴직한 채 해외에서 주부로 5년간 생활하던 때 글쓰기를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구인구직란을 힐긋대던 시기였다. 일을 쉬긴 했지만 해외에 쭉 머물 경우 본업을 관둘 가능성이 높았다. 중동에서 남편이 버는 수입이 적지 않았는데도, ‘만약 일을 관둔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때이기도 했다. '마감 있는 일'과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을 갖고 싶었다.
지금은 알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요구하는 기준으로 나란 인간의 쓸모를 끊임없이 되돌아볼 필요는 없다는 걸. 그러나 당시에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되돌아보면 수입을 얻는 일보다 나만의 업을 찾는 것에 매달렸던 시기였다. (살림과 육아에 서툴렀던 것에도 이유가 있다) 누가 한 달에 50만 원만 주면 어떤 단순 업무도 서슴없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던 때였다.
그리고 첫 책 원고 집필을 시작했을 때, 이 일이 내 성향에 들어맞는 작업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내 궁금해졌다. 이 일을 내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그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검증과 실험을 거듭한다는 마음으로 글 쓰는 일을 이어왔다. 업으로 이 일을 한다면 어떤 자질과 노력이 필요할지 고민도 나름 해왔다. 오늘은 그 고민의 결과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늘 당부하는 것이지만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답은 다를 수 있음을 말씀드린다)
당연한 얘기지만, 글쓰기를 업으로 한다면 구체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글쓰기 수입'이라고 하면 원고 집필로 저자에게 나오는 인세(印稅)를 떠올린다. 인세는 저자에게 주는 저작권료다. 보통 책 한 권 정가의 10%가 저자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첫 책의 경우 그보다 조금 더 낮을 수도 있다). 15000원짜리 책 한 권이 팔리면 1500원이 저자에게 떨어지는 구조다.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내 책 한 권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목돈을 손에 쥐고 그 수입으로 생계유지를 하는 삶을 상상하지만, 확률 높은 일은 아니다. 인세 수익이 그렇게 거대하기는 쉽지 않다. 하루에 수천 종의 책이 출간되나 주목받는 책은 극히 적으니까. 앞서 말한 15000원짜리 책이 2000권 정도 팔린다면 -이것도 운 좋은 일이다 - 300만원 가량(종합소득세 3.3%를 뗀 금액이 들어온다)이 저자의 통장에 들어오는 식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1년에 책 한 권을 낸다고 가정할 경우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부족한 액수다.
그러나 세상에는 누구나 아는 베스트셀러를 내거나 명성 높은 작가뿐 아니라 글쓰기로 업(業)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내 경우에는 다작(多作)을 한다. 책을 쓰는 속도가 빠르고, 한 해에 책 2~3권 정도를 쓰고 출간한다. 그중에 지속적으로 팔리는 책도 몇 권 있고 일도 꾸준히 제안받는 편이다. 덕분에 어느 정도는 안정된 수입을 얻는 편이고. 이 때문에 전업 작가로서의 삶도 이따금 고민해 왔다. 심리적 안정감을 중요시하는 편인 데다, 본업과 글 쓰는 삶이 병행 가능한지 살펴봐야 할 것 같아 복직을 했지만, 지금도 고민은 이어지고 있다.
원고 집필 외에도 글을 쓰는 일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프리랜서 작가로서 인터뷰나 기고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도 많다. 몇 년 전 책 출간으로 인터뷰가 필요해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프리랜서 작가 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온라인에 올릴 책 소개 글을 얻기 위한 작업이었다) 나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쓰는 분이었는데 인터뷰를 위한 대화를 나누고 그분의 작업물을 보며 '이 사람은 전문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이야기를 활자로 펼쳐내는 건 노련함과 스킬이 필요한 작업이다.
요즘에는 글쓰기뿐 아니라 강연, 강의가 작가의 주요한 일이 되기도 한다. 책은 일종의 자격증이나 명함 역할을 하기도 해서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걸 퍼스널 브랜딩이라 이름 붙이는 것 같다) 책을 낸 뒤 글쓰기 모임을 열거나 독서 모임을 여는 이들도 많다. 다만 이런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리는 능력이나 요령이 있는 게 좋다. 결국 강연이나 강의도 누군가가 신청해야 열리기 때문이다. 내 콘텐츠를 누군가에게 알리려면, 내가 품고 있는 이야기 중에서도 타인에게 매력적인 이야기, 주목을 끌만한 요소를 찾아내고 그것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게 좋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 처음에는 독자나 글을 의뢰한 상대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좋다. 물론 타인의 요구에 맞추어 내 글을 쓴다는 게 서글프고 자존심 상하는 일로 다가올 때도 있다. 내적 갈등이 솟아날 수도 있고. 그러나 가끔은 현실적인 고민도 필요하다.
오래전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 - 대략 20여 년 전 신해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에 ‘꿈이 직업이 되었을 때의 고충’을 고민으로 적어 보낸 이가 있었다. 그림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되었으나, 정작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계속 맞추어야 하는 상황에 지친다는 젊은이의 사연이었다. 당시 마왕(=신해철의 별명)의 답이 인상적이었다. 꿈을 직업으로 이루는 데도 단계가 있다는 조언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작품 세계를 밀고 나갈 수 있을 만큼 자리 잡을 때까지는 타인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고 이 요구에 맞추는 단계도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원하는 작품 세계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나, 타인이 원하는 바를 잡아내고, 이를 그림으로 재현하는 과정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답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조심스럽게) 마왕의 이야기에 동의하는 편이다. 나에게 글을 의뢰한 이들의 요구사항을 알아차리고 연구하는 것도, 글쓰기를 막 시작한 사람에게는 필요한 과정일 수 있다. 그 과정에서도 나름 얻는 것이 있고.
일을 함께 하는 사람(원고나 강의 담당자)의 얘기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상대의 부당한 요구나 예의 없는 태도까지 수용하고 굽신거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글에 대한 고집이나 타협 없는 태도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상대와 정중한 관계를 맺고 예의를 갖추는 태도, 의견 조율을 하는 자세 정도는 갖추는 게 좋다. 협업을 한다면 함께 일하는 상대가 일하면서 마주하게 될 고충도 고려할 필요가 있고. 마감 기한을 맞추면서 기본적인 수준이 갖춰진 원고를 넘기는 것이 일하는 예의다.
내가 글을 발행하는 매체의 특성을 알고 그에 맞는 글을 쓸 능력도 때로는 필요하다. 가령 잡지나 간행물에 기고를 한다면 그 잡지에서 어떤 형식의 글을 싣는지, 어떤 특성을 가진 매체인지 먼저 파악하고 연구한 뒤 글을 써보는 게 좋다. 온라인 플랫폼에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고자 하는 플랫폼의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글을 쓰는 연습을 하면 도움이 된다. 지금 글을 올리는 이 공간, 카카오 브런치의 경우 에세이가 대세인 플랫폼이다. 긴 글을 읽기에 적합하므로 전문 분야의 글쓰기도 가능하다.
반면 인스타그램은 이미지에 주력하는 플랫폼이다. 텍스트의 경우 글자 수 제한이 있고 피드 전환이 빠르며 앨범 형식으로 전체 게시물을 보는 구조다. 웹툰이나 사진 이미지, 그림 중심의 콘텐츠가 내 주력 분야일 경우 유리한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인스타에 싣는 텍스트의 경우, 이미지를 올리고 그 아래 내용을 적는 구조이므로, 눈에 바로 보이는 앞의 한 두 문장에 임팩트를 주어 글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지나치게 긴 글은 지양하는 게 좋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인스타에 짧은 글을 쓰는 것에 늘 실패한다)
책을 위한 원고는 또 다른 특성이 있다. 온라인과 다르게 글자의 굵기나 크기 조절, 이미지를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글을 쓸 수 없다. 내 글의 흐름이나 논리적인 연결로 가독성을 높여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고, 가독성과 글의 논리성을 높이기 위해 퇴고를 여러 번 하는 게 좋다.
지인 한 분이 나에게 ‘좋아하는 글쓰기가 일이 되었으니 늘 즐거운 거 아닌가요?’라고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는 것 = 직업적 고충이 0에 수렴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로움과 즐거움만 누리려면 글쓰기는 취미로 하는 게 좋다. 일로 하기 위해서는 외로움이든 괴로움이든 무언가 하나는 감내해야 한다. 삶에는 늘 기회비용이 있다. 내가 어떤 종류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게 좋다. 그리고 즐거움과 행복만 안겨주는 행위가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가꿔주는 건 아니다. 고통을 기꺼이 감내할 만한 일을 찾는 것에 진정한 삶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첫걸음부터 본격적이거나 심각할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글쓰기 세계에 몸을 흠뻑 적시며 기쁨과 고통을 알아보는 건 섣부를 수도 있단 얘기다. 현실을 감안하며 발을 담그고, 다리를 적셔보고, 몸을 더 담가 보는 식으로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도 괜찮다.
p.s. 글쓰기와 수입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다음 글을 참고해보셔도 좋습니다. (두 글이 쓰여진 시점의 차이는 있습니다)
https://brunch.co.kr/@aring/153
https://brunch.co.kr/@aring/186
안녕하세요, 유랑 선생입니다. 오늘은 글쓰기와 업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내려갔는데, '글쓰기를 막 시작한 분들께 이게 도움이 되는 얘기일 수 있을까, 부담되는 얘기 아닐까' 쓰면서 고민이 계속 되었어요. 힘을 드리고자 적었는데 도리어 힘이 빠지는 얘기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싶은 분들께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얘기였으면 좋겠단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다음 글은 1월 25일(목)에 올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